도시, 상상하고 기록하기

유영이 / arch.yooyy@gmail.com





1.

독일어의 공간(Raum)이라는 말은 “자리를 만들어낸다, 비워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다, 떠나다, 치우다” 등의 여러 가지를 의미하는 동사 ‘raeumen’에서 유래했다. 게르만족에게 공간은 아주 오래된 표현으로, 거주 장소를 얻기 위한 황무지 개간과 계발 행위에서부터 그렇게 획득한 거주 장소 자체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를 내포한다.[1]

독일어 Raum이 가지는 이러한 의미는 공간이 단순한 땅과 평지 등 물리적 영역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공간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활동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즉 이미 공간의 어원 안에 인간을 주체로 한 구성적인 개념이 자리한다. 공간은 지칭할 수 있는 단순한 명사가 아닌 인간의 행위로 비로소 재조합되는 과정, 즉 동사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말 공간(空間)의 한자어 풀이처럼 빈 사이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은 인간의 신체를 통한 지각과 경험을 통해 생성된다.

공간과 유사한 이유에서 조경 분야에서 경관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어 왔다. 경관법에 나타난 경관의 의미 –자연, 인공 요소 및 주민의 생활상(生活相) 등으로 이루어진 일단(一團)의 지역환경적 특징–는 물리적 환경과 보이는 것 이상의 영역을 포괄한다. 그러나 경관법이 제정되고 경관 평가 등 대상화하는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경관은 여전히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말하는 경관에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반응하며 행동하는 관계항이 녹아있다. 도면과 계획서 너머 도시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상은 어떻게 기록하고 범주화할 수 있을까. 도시에서 마주하는 우리의 일상과 경관은 어떠한 관계를 맺는가. 그 대안을 논의하기 위해 도시를 체감하고 인지하는 행위, 도시를 기억하는 지난 논의에 이어 도시를 기록하고 상상하여 입체화하는 시도를 제안한다. 도면과 계획서로 진행되는 도시계획과 조경 설계의 언어 이외에 진정한 경관을 담아내는 또 다른 언어, 즉 방법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2.

우리는 도시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경관/도시/공간을 인지하는 행위자agent 탐구가 중요하다. 경관이 철저한 타자가 될 수 있는지는 앞서 언급한 공간Raum을 생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는 존재, 즉 행위자와 대상의 관계를 논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독일 조각가 힐데브란트(Adolf Von Hildebrand)는 관찰자와 예술적 경험인 대상물 사이의 공간적 관계에 집중하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공간 체험에 주목했다. 특히 ’하나의 해석(one reading)’이나 하나의 시점이 아닌 연속된 여러 시점(das nacheinander)을 관찰하는 동적 시각(kinetic vision)을 통해 강조했다.[2]

또한 17세기 후반부터 과학, 철학적 논리를 바탕으로 전개된 공간 개념의 변화는 주체와 분리된 대상으로서의 공간을 규정하는 절대적 공간(Absolute Space)을 시작으로, 공간과 지각 주체와의 관계에 집중하는 상대적 공간(Relative Space)으로 나아가며 대립 구조를 이어왔다. 그러나 급속히 발전하는 사회의 흐름에 발맞추어 절대적,상대적 공간론의 양립은 공간을 구성하는 다자적, 입체적 시공간을 필수적 요소로 포함했다. 공간사회학, 지리학에서 제기된 관계적 공간(Relational Space) 개념은 적극적인 지각 주체의 상호개입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에 가장 적합한 공간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모더니즘의 이성 중심의 사고에서 감성 중심의 사고로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공간을 인지하는 방법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공간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려는 시도에서 벗어나 인간이 행동하고 감정을 교류하는 대상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주체와 객체라는 이분법적 구조 사이 절대적, 상대적 공간의 존재 이상으로 공간과 관련 인간의 활동에 주목한다. 즉 공간을 객체로만 인지하고 분석하는 인간의 행위를 넘어 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통해 끊임없이 생산되고 변형되는 살아있는 것으로 거듭난다.

독일의 사회학자 마르티나 뢰브는 공간이 행위자에 의한 다층적 구성행위의 결과라고 본다. 그녀는 공간은 물체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물체는 공간에 영향은 주지 않는 절대적 공간 개념, 변하지 않는 주체와 객체가 존재함으로써 공간이 형성되는 조건부적인 상대적 공간과는 달리 관계적 배치(relational (An)Ordnung) 과정으로서의 공간을 제시한다.[3] 객체(대상)를 사회적 재화와 사람으로 구분하며 대상으로서의 물체와 사람, 또한 주체로서의 사람에 의한 동시 발생 과정과 신체 감각의 지각 활동을 인식이라 이해한다.[4] 즉 뢰브는 공간에서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며, 더 적극적으로 다자간 상호관계라는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공간의 조건을 설정한다.

또한 공간 인지를 공간화(Spacing)과 종합작용(syntheselesting)의 두 단계로 나누어 주체와 객체 사이에서 형성되는 공간과 주체의 경험적, 사회적, 상황적 맥락을 통해 드러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관계적 공간은 공간이 형성되고 있는 그 순간에도 공간 구조와 행위자의 여타 요소에 의해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따라서 공간 인지는 여러 방향과 깊이로 이루어지는 동시적이고 다층적인 과정이다. 인지 주체인 ‘나’를 포함한 대상과의 순서 지정ordering과 움직임을 통해 공간을 설정하고, 다양한 요소의 조합으로 비로소 공간으로 인지된다. 그러므로 공간은 보편적이지 않으며,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주체일지라도 항상 다른 공간을 창조할 수 있다.[5]

Paul Cézanne, The Basket of Apples © Art Institute of Chicago


3.

메를로-퐁티는 ‘사물 사이의 상호 작용’으로서의 일상적인 활동에서의 종합적인 지각을 통해 형성되는 공간에 주목했다.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 세계와의 관계에 집중하는 그는 자신의 철학을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의 작업과 일치시킨다. 절대적인 존재가 아닌 이상 인간은 동시에 시야에 포함된 모든 대상을 동일한 층위로 인지할 수 없다. 세잔은 이러한 한계를 인지하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실제 인지하는 세계(perceptional experience)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위해 그는 정해진 시점을 엄청난 규칙으로 삼았던 고전주의 작가들과 달리 과학적 원근법을 탈피하고 그림 속에 여러 시점을 조합하였다.

그러나 세잔의 작품이 다시점(多視點)을 품고 있는 이유를 알기 전에,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 입장에서는 낯선 느낌이 든다.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대상(자연)을 하나의 유기체로 엮어냄으로써 어딘가 불편한 조합이 놓여있는 듯하다. 조각조각 다른 깊이의 공간이 엮여 전체를 재현(to recapture)한 결과물(작품)은 마치 다양한 두께의 천을 엮어놓은 조각보같이 울퉁불퉁한 공간감으로 다가온다.

다양한 공간감을 담았으나 이는 포토샵의 머지(merge)기능처럼 접합을 위해 약간의 왜곡을 반영하여 연결해 놓은 모습과 같다. 그러므로 관객은 세잔이 담아내고자 한 자연 이전에 작품을 통해 고르지 못한 공간적 표면의 결과물을 마주한다. 세잔이 추구하고자 한 실제 세상을 담는 방식을 이해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의 머릿속 한 부분은 열심히 그림 속 세계를 이해하고자 분주하게 움직인다. 작품을 인식하기 위해 관객은 스스로 울퉁불퉁한 그림 속 공간을 조합하여 균등한 공간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실제 세잔이 마주한 대상을 공간 안에서 상상함으로써 세잔이 담아내고자 했던 공간의 부피, 즉 공간감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 세잔은 울퉁불퉁한 공간의 여러 부피를 조각보처럼 연결해내었으며, 결국 이를 하나의 공간으로 인지하는 것은 작품을 마주하는 관객에게 주어진 역할인 셈이다.

따라서 세잔의 작품은 작품 안으로의 초대라기보다는 작품을 매개체로 하여 관객에서 공간감을 인지할 단서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작품을 감상하는 주체는 고르지 못한 공간감을 정돈한 이후 세잔이 재현해 낸 공간을 다양한 맥락에서 해석할 필요가 없다. 관찰자의 일상적인 경험, 주변인 등 상황보다는 인지하는 공간 그 자체를 담아내고자 한 세잔의 그림은 바라보는 이를 일차적 관계자의 자리에 한정시킨다. 세잔의 작품은 조금씩 뒤틀려 있는 조각을 모아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 인지하는 퍼즐 게임으로 인지된다. 세잔의 그림으로 초대된 모든 이들은 대부분 하나의 비슷한 장면, 즉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Julie Mehretu, The Black City © Julie Mehretu



4.

에티오피아 출신의 미국인 추상 예술가 줄리 머레투(Julie Mehretu, 1970~)는 건축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도시 공간을 표현한다. 그녀는 공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건축 도면과 추상적인 드로잉을 적층하여 작업을 진행한다. 직접적인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투시도 기법의 건축 입면에서부터 건축도시를 인지하는 과정, 도시인의 일상, 도시에서 벌어지는 각종 논쟁 등 일상적인 맥락을 각종 도형을 캔버스 위에 매핑해나간다.

머레투의 그림 안에는 점을 찍어 선택할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머레투가 유년기를 보낸 디트로이트를 대상으로 한 작품 Black City를 보면, 건축적 드로잉 위에 흩뿌려진 각종 도형과 선이 오히려 눈이 멈출 곳을 안내하기보다 눈이 멈추는 것을 방해하고 오히려 계속 그림을 읽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녀의 그림은 도시 안에서 벌어진 수많은 움직임을 기록한 역동적인 선이 존재한다. 이는 관찰자에게 머무름의 시점이 아닌 경로를 추적하는 길, 즉 시선(視線)으로 작동한다.

관찰자의 시선처럼 작품 속 각각의 공간들을 계속해서 움직인다. 특히 건축물 드로잉 위로 층층이 싸인 각종 기호는 마치 도시 공간 위에서 발생한 시공간적 사건들을 상징하며 각기 다른 조합과 해석을 통해 계속해서 긴장감을 지닌다. 그녀의 작품은 절대적 공간(과거/미래, 허구/현실, 주관적/객관적)과 연결된 이원론적 개념을 폭발시키며, 지도에 있는 공간을 상대적이고 개방적, 유동적이며 본질적으로 역동적인 공간으로 형성시킨다.[6]

이는 실제 도시에서 발생하는 가속하는 혼종 경관들, 주체와 객체가 일대일로 대응할 수 없는 수많은 행위자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한 장소에서 형성되는 수많은 공간이 여러 맥락에서 어떠한 모습과 느낌으로 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머레투 작품의 특징인 레이어 기법을 통해서 더욱 명확히 구현된다. 시간과 공간을 적층시킨 작품에는 물리적 공간 구조의 지형적 경관을 넘어 일상에서 벌어지는 도시의 상황적 맥락까지 포함된 사회적 경관이 함께 그려진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과거와 현재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예술과 건축의 역사, 대중문화, 문화적 다양성, 이주, 사회적 갈등 등 그녀의 다양한 관심사가 공간의 요소로 함께 재현된다.[7]

그녀의 작품 안에는 경계선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공간은 거의 투과성을 보여주며 임의로 적층된 각종 도형은 우연한 교차를 통해 조직, 연대감, 적대감 등의 다양한 양상을 직조한다. 또한 너무 깔끔하게 가지치기 된 공간 경험을 거부하며 이동과 무관한 상태로서의 공간, 정신과 신체가 정지할 수 있는 공간을 거부한다.[8] 이는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의 공간이 형성되고 인지되는 우연적 상황과 유사하다. 모두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하는 도시에서 공간 인지란 매우 선택적이고 우연한 상황에서 복수의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경험된다. 따라서 공간은 계속해서 다른 깊이를 창출한다. 정적인 대상과 주체 사이의 단순한 관계를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움직이며 변화하는 대상의 시공간을 설정함으로써 유동적인 관계적 공간을 형성해 나간다.

공간의 총체적 경험을 강조한 팔라스마의 말처럼, 건축의 요소는 시각적 구성단위나 형태가 아니라, 기억과 상호작용하는 조우, 기억과 마주하는 대치로서, 건축의 경험은 기본적으로 정적인 상태보다는 동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건축적 공간은 물리적 공간인 동시에 삶이 반영된 공간이며, 삶이 반영된 공간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형태와 측정 가능성의 경계를 넘어선다.[9] 머레투의 작품에 나타난 공간은 공간을 지각하는 주체에게 일상을 기반으로 한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과정을 요구한다.

데카르트적 공간 전략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지도는 투사된 공간에 대해 공간 인지 주체를 전지적 구경꾼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머레투의 그림은 단순히 바라보는 작용을 통해 쉽게 인지될 수 있으며 하나의 결론으로 확정되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 속 '움직임-공간'은 '많은 종류의 공간, 많은 종류의 역동성, 많은 종류의 존재, 많은 종류의 상상력'을 통합하여, 이러한 공간들 각각을 긴장으로 잡고 결코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10] 공간을 인지하고자 하는 주체가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잠재적 공간 요소를 선택하고 종합화해나가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머레투가 관객들이 자신의 작품을 읽고 해석(decipher)했으면 좋겠다고 언급[11]한 점이 흥미롭다. 그녀는 공간/인지자, 작품/관찰자를 이분화하는 것이 아닌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도록 자극한다. 관찰자는 역동적이고 다중적이며 입체적인 복합적인 풍경을 만들면서, 이러한 공간들은 과거와 현재를 마주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대립에서 나오는 미래는 어떻게 보일지도 예측한다. 관객은 그녀의 작품 속의 풍부한 아이콘그래피를 재해석하고 습득함으로써 새로운 서술적 공간을 만들며 새로운 ‘현실’을 구성해나간다.[12]

관객은 머레투의 작품이 그려내는 유동적 공간 안에 거주하게 된다. 작품과의 거리를 조정하고, 작품 안 다양한 레이어와 요소들을 선택하며 각기 다른 공간이 끊임없이 형성된다. 비로소 고정 시점을 탈피한 행위자는 공간의 산책자가 된다. 여러 깊이(단계)를 갖는 지점을 이동하며 시선을 거니는 관객은 주체와 객체 그리고 관계의 해석 안에서 계속해서 다른 맥락을 엮어낸다.



‌5.

‌“예술이란 어떤 대상물에서 시각적인 것을 해방함으로써 발전되며, 다시 예술은 또 다른 시각으로 대상물을 보도록 가르쳤다"[13]
독일 건축가 아우구스트 엔델

우리가 도시를 보고 이해한다는 것은 도시를 인식하기 위한 기호를 설정하고 구조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예술의 재현 방식이 당대의 공간 개념을 반영하며 동시에 우리의 공간 인지 방식을 제안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메를로-퐁티가 세잔의 그림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에 대해 논했듯 예술 작품을 통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공간을 우리가 어떻게 인지하는지 읽어볼 수 있다.

실제 대상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추상미술은 공간을 비롯한 시대 정신을 다양한 양상으로 반영해왔다. 특히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곧 예술이라는 파울 클레의 말처럼 실제 대상물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형이상학적인 대상을 표현하는 것이 곧 예술이라는 점에서 추상미술과 공간 개념의 접점이 흥미롭다. 조경의 방법론을 예술과의 접점을 통해 만나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대상화의 새로운 가능성에 기인한다.

실제 우리가 인지하는 공간을 회화나 다른 매체로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까. 전시 분야에서는 건축이나 도시 안에서의 경험을 전시장 안에서 구현할 방법을 모색한다. 도시는 사진이나 스케치로서 평면적 프레임 안에 갇혀 전시장 안에 들어서거나 엄청난 스케일로 축소된 모형이 아닌 이상 그 공간감을 관객에게 체감시킬 수도 동일한 스케일로 보일 수도 없다. 그러나 도시를 예술로 포용, 전개, 승화시켜 다른 언어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도면에 담기지 않는 도시의 살아있음이 나타난다. 도시를 경험하는 행위자, 경관의 주체로서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모색해본다.‌









[1] Schroer, Markus, 『공간, 장소, 경계』, 정인모 외 역, 에코리브르, 2010, pp.29-30
[2] Van de Ven, Cornelis, 『건축의 공간 개념』, 고성룡 역, 씨아이알, 2019, p.128
[3] 이현재, 다양한 공간 개념과 공간 읽기의 가능성, 시대와 철학 제23권 4호, 통권61호, 2012, p.224
[4] Löw, Martina. “The Constitution of Space: The Structuration of Spaces Through the Simultaneity of Effect and Perception, 『European Journal of Social Theory』, 2008, p.38
[5] Ibid., p.43
[6] Lungberg,C, “Cartographies of the Future: Julie Mehretu's Dynamic Charting of Fluid Spaces”, 『The Cartographic Journal Vol.46』, 2009, p.313
[7] Ibid., p.308
[8] Thrift, Nigel, “공간”, Doering, Jorg · Thielmann, Tristan 엮음 『공간적 전회』, 심산, 1998, pp.459-466
[9] Pallasmaa, Juhani, 『The Eyes of Skin, 건축과 감각』, 김훈 역, 서울: 시공문화사, 2012, p.92
[10] Lungberg,C, op.cit., pp.310-311
[11] Tate Talks. “Julie Mehretu: American Artist Lecture Series”, 2016.8.18. http://youtu.be/UEEe5_oEnoU
[12] Lungberg,C, op.cit., p.309
[13] Van de Ven, Cornelis, op.cit.p.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