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2021년 11월 10일, 오후 7시~9시
- 장소: ZOOM
- 발제: 박영석
- 토론: 문정석, 송재영
- 지원: 신명진, 임한솔
- 기록: 박정은
1부
박영석 < 도시, 함께 실천하기 > 발제. (클릭 → 발제문으로 이동)
문정석 네. 안녕하세요. 저는 문정석이라고 합니다. 조경에 관련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자리인데 저는 조경의 친구,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사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은 박영석 소장님과의 개인적인 인연에 의해서 참여하긴 했는데, 다만 저희 사무실은 건축물 설계뿐만 아니라 리서치 관련된 프로젝트, 공간기획이나 사전기획 같은 일들도 관심을 가지고 진행을 하다 보니 그런 경험들이 이어져서 본 사업에서 연극적인 놀이를 관찰하고 그것을 공간언어로 변환하는 일종의 ‘translator’로서의 역할에 참여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토론문을 공개를 해드렸는데 사실 꽤 딱딱하게 쓴 것이어서 읽어보시면 도대체 무슨 소리야 이런 생각이 드실 거예요. 어쨌든 글은 그렇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글보다 조금 더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을 말할 수 있으니 같이 비교해서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목을 보시면 ‘규칙과 위반의 기획’이 앞에 있고, ‘예술적 상호작용을 통한 공공공간 조성의 시도들’이라는 부제가 그 뒤 있습니다. 우선 전제를 깔아야 하는 것들 중의 하나는, 건축이나 조경에서 공간과 현상에 대한 논리적 관찰과 분석을 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이 학교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데, 특히나 아카데믹한 태도는 논리적 정합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명료하게 고정된 대상에 대한 분석과 관찰에 상대적으로 많이 의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를 둘러싼 세계나 우리가 관찰하고 분석하는 주된 대상들이 어떤 규칙을 갖고 있지 않은 동적인 흐름, 역동적인 상황들로 전환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분석과 관찰의 방식들이 포착하지 못하는 것들이 늘어나게 됐고, 정태적 분석이 더 이상 모든 것에 유효한 방식이 아니게 됐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실 어려운데, 가장 쉽게 제가 이 얘기를 비유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조금 생각을 해보다가 제가 최근에 쓰는 비유들로 설명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아마 포토샵을 다 쓰실 거예요. 이미지 편집 툴 중에서는 포토샵이 가장 대표적이니까 이 프로그램으로 예를 들자면, 이미지 편집 툴들의 전형적인 명령어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layer’라고 하는 명령어, 켜와 층을 만드는 거죠. 그다음에 ‘distort’라는 명령어도 있을 겁니다. 이것은 뭔가 이렇게 찌그러뜨려 왜곡시키는 명령어입니다. ‘scale’, 크기를 바꾸는 것. 그 밖에 ‘filter’, ‘pixelate’, ‘overlay’, ‘invert’, ‘blur’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것 등. 이미지 프로그램은 이런 명령어들이 공통으로 있는데 저는 동적인 것들을 파악하고 창조적으로 해석하는데 필요한 분석의 도구들이 이런 명령어와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현상이 다층적으로 켜가 포개진 것으로 보고 그것을 하나하나 구분해서 바라보는 것, 바로 ‘layering’이죠. 또 어떤 것들을 좌푯값으로 추상화시켜 조작하는 것, ‘distort’랑 관련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것들이 겹쳐진 형상을 들여다보는 것을 ‘overlay’라고 부릅니다. 마지막으로 요즘에 공간 디자인 전략에서 제일 많이 사용되는 말입니다만, 공간과 사물의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방식으로 현상을 제어하는 방법을 ‘blurring’이라고 합니다. 언급한 것 모두 이렇게 이미지 편집에서 쓰는 명령어들인데 현상의 복잡성이나 역동성을 이해하거나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생겨난 전략들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미지 툴의 명령어가 현대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복잡한 세상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관점과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보면, 놀이터 만들기에서 연극적 상황에 사람들을 참여시켜 어떤 상황들의 관찰과 발견을 기대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보내드린 텍스트를 보면, 상호작용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 ‘예술적’이라는 말이 붙으면 굉장히 모호한 말이 됩니다. 이런 추상적인 말을 현실세계로 가지고 와서 이해해야 하는데, 제 나름대로는 지각할 수 있는 세계와 그사이에 상호관계에서 생기는 풍부한 의미들, 탈주선들을 예술적 상호작용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를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예술적 상호작용에 대한 시도들, 사람의 행태나 행위를 공간화시키거나 매개하여 다른 의미로 전환하려는 생각들이 제법 많았는데 그중 제가 첫 번째로 예를 든 것은 라빌레트 공원입니다. 조경전공자분들은 굉장히 잘 아실 텐데 건축에서도 굉장히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건축가 베르나르 츄미 Bernard Tschumi 가 설계를 했는데, 그 공원의 설계와 맞물려 츄미는 ‘건축과 해체 Architecture and Disjunction’라는 책을 통해 사건개념이라는 말을 제시합니다. 그는 이 말을 설명하면서 행위가 없다면 공간은 존재하지 않고 이벤트와 프로그램이 없어도 건축은, 조경은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선언을 합니다. 행동이 복합적으로 얽히면 그것을 사건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사건은 신체의 움직임을, 그것도 일탈적인 움직임을 기반으로 하고 사건을 통해 우리는 공간과 우리의 몸이 관계를 맺는 방식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며 또 마치 폭력처럼 공간과 우리 몸이 격렬하고 급진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이야기하죠.
라빌레트 공원도 기존의 전통적인 디자인적 접근과는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어떤 사물들을 갑자기 중첩하거나 전혀 다른 이질적 요소들을 삽입하여 충돌시키는 방법으로 공원을 디자인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사람이 만드는 내러티브도, 공간요소들이 만드는 돌발상황도 모두 사건의 범주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츄미뿐만 아니라 역사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미셸 드 세르토도 행위의 역동성과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세르토는 걷기라는 행동을 말하기와 비슷하다고 비유하면서 우리가 걷기를 통해 도시를 훑을 때, 계획가 또는 디자이너가 만든 공간의 질서를 개인적인 것으로 변질시킨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우리는 걸음으로서 공간의 텍스트를 새로 쓴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알듯 모를듯한 개념적이지만 여전히 매우 흥미롭습니다. 세르토가 우리나라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대한 비평 때문인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초창기 홍상수 감독의 영화작업을 설명하거나 비평할 때 세르토가 자주 언급되곤 했습니다. 기억나는 것 중의 하나는 홍상수 감독이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방법입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처음에 아무런 시나리오의 방향성 없이 술집을 드나들며 타인들이 그곳에서 행동하는 방식들, 취해서 하는 말들의 패턴과 이야기를 수집한다고 합니다. 서로 아무 연관성이 없는 이런 말과 행동의 파편 같은 기록을 모으다가 시나리오를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이 기록의 조각들을 벽에다 붙이고 그것을 꾸준히 바라보는데 서로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는 그런 기록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연관성을 가지고 이어지는 순간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사건들의 파편을 이을 수 있는 작은 아이디어와 단서를 발견하게 되면 그때부터 영화 시나리오가 시작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 안의 역동적 측면을 드러낸다는 관점에서 드 세르토의 보행발화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는 2천년대 초반, 우리나라 도시계획, 어번디자인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라울 분쇼텐 Raoul Bunschoten과 그가 이끄는 그룹 ‘Chora’ 의 책 ‘Urban Flotsam’입니다. ‘flotsam’은 도시의 부산물들, 잡동사니처럼 하찮은 것들이란 의미인데 이 책에는 사람들이 공간에 개입하는 행동을 몇 가지 도식으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간과 현상의 다양한 층위에 감춰진 관계성을 이해하여 수립된 시나리오를 통해 공간을 큐레이팅하는 시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몇 가지 도식은 EOTM 프로세스라고 알려져 있는데, E는 사람들이 무엇을 없애고 공간을 만드는 행동(Erase)을, O는 Origination으로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시점을, T는 Transformation으로 시작과 끝이 있는 지속적인 변화, M은 migration으로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시도들도 결국은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적상황을 포착하고 이해하는 방법들일 것입니다.
장황하게 이런 사례들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mom 편한 놀이터 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 여러분들이 관련된 풍부한 사례와 텍스트들을 찾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진행했던 일이 단지 조금 독특한 놀이터를 만들어보기 위한 방법론적 접근이라기보다는 현실의 복잡다단한 역동성을 이해하기 위한 공통의 고민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다음에 mom 편한 놀이터, 아까 소장님이 소개해드린 프로젝트로 넘어오면 뒤에 송재영 대표님도 소개하시겠지만, 아이들의 참여를 통해 대상공간에서 예술적인 놀이, 놀이 워크숍을 진행하고, 그 관찰결과를 바탕으로 아이들이 공간과 상호작용하는 상황들을 모델링하고 개념화하여 공간으로 전환하는 기획방식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입니다. 놀이의 행동방식은 놀이규칙을 정하고 그것을 모두가 지키기로 합의하면서 시작하지만, 사실 그렇게만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진행하다 보면 각자의 역할 안에서 각종 변수가 생기면서 어떤 식으로든 규칙을 위반하게 되는데 거기서부터 놀이는 재미있어지잖아요. 놀이의 흥미가 그렇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저는 놀이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이 어떻게 연극적인 상황들 안에서 자기 역할을 수행을 하거나 규칙을 위반하는지, 그리고 결국은 그 안에서 공간을 어떻게 인지하고 본능적인 또는 전략적 판단을 통해 공간을 변형시켜나가는지 상호작용의 과정들을 분석하여 공간 위에 맵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대했던 것은 앞에서 거창하게 전제와 사례를 소개해드린 것처럼 기존 공간계획에서 이제껏 배제되어 온 아이디어들을 통해 놀이공간을 구축할 수 있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전제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근대적인 공간담론에서는 역동적인 사항들을 가급적 배제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고정적이지 않아 계속 변수를 늘려가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이렇게 관찰을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일정하게 놓치는 부분들이 항상 존재합니다. 그것을 발견하고 하나의 층위로 명명하여 공간화될 수 있는 벡터로 담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다만 문제는 이 프로젝트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예산으로 추진되어야 했던 실제 프로젝트라는 점입니다. 그렇게 경제적으로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부분들 때문에 송재영 대표님이 했던 굉장히 재미난 놀이 프로그램이나 제가 그것을 공간화시켜 맵핑을 한 자료들 안에 분명 굉장히 많은 가능성이 담겨 있을지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이것 또한 근대적인 상황, 계량적으로 공간화되어야 하는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하니까 그 과정에서 누락된 부분이 많지 않나 하는, 그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공공공간 조성에서 예술적인 기획과 활동의 가치로 제 말씀을 마무리하자면 관계 디자인이라는 말을 최근에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서 쓰기 시작을 했습니다. 도시재생 분야에서도 쓰고 조경에서도 쓰고 건축에서도 쓰곤 하는데 기본적인 뜻은 굉장히 쉽습니다. 갈등과 충돌을 없애지 않고 공공의 영역으로 불러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치열하게 싸우고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의견을 조율하고 합의를 맺어 그 과정을 디자인으로 전환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워크숍의 정신과 방식입니다. 앞에서 박영석 소장님이 설명해 주신 것처럼 공공의 관계에 대한 이해관계를 풀어내는 방법이 워크숍인데, 대부분 실제 진행되는 합의과정을 보면 일차적으로는 제가 ‘trade off’라고 적어놓은 주고받기의 방식이 적용됩니다. 하지만 내가 뭘 내놓을 때, 상대방도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 trade off 방식의 워크숍은 그 과정이 아무리 매끄러워도 사실 그렇게 흘러가는 순간 그다지 창의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저 계산적인 행동이고, 본래 워크숍의 의도, 즉 이해관계를 매개하는 과정에서 제3의 방식으로 대안을 찾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특히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공간문제를 이야기할 때 워낙 갈등과 충돌이 빈번하다 보니 일차적 주고받기의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진행되는데, 이럴 때일수록 연극적인 상황, 예술적인 개입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황극을 수행하는 것과 대화의 방식을 통해 우리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관계 디자인이 가능하다면 trade-off 같은 소모적인 의사소통의 한계를 뛰어넘어 공공의 감정과 이해에 같이 몰입하고 공감에 도달할 수 있는 상황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예술적인 행위의 참여를 통해 감정과 이해를 교류할 수 있다면 기계적 중립을 찾는 의사소통이 아닌, 예술적 창의력이 담긴 제3의 대안을 모으고 공감을 바탕으로 충돌을 조정하며, 연대의식을 발전시키는 방식, 그래서 집단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들을 모두 놓치지 않는 관계의 디자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가능성을 여전히 논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두서 없이 말씀드렸지만 어쨌든 관련된 시도와 다양한 텍스트, 콘텍스트를 여러분들이 찾아보고 유사한 고민에 공감하거나 이런 재미난 방식들이 있었다는 걸 이해하시면 굉장히 좋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 얘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박영석 문정석 소장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일정에 쪼들리고 바빠서, 이렇게 깊이 있고 훌륭한 작업인 줄 몰랐네요. 문정석 소장님께서는 저희 모든 결과물들을 토대로 참관도 하시면서 최종적으로 공간 종합 가이드를 작성해 주셨는데요. 한편, 실제로 아이들과 함께 땀 흘리고 호흡하면서 상호작용하셨던 놀이 리더분들 중에서 송재영 극단 조각바람 대표님을 모셨습니다. 지난 프로젝트에 대한 단상들을 토론문으로 한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송재영 네. 지금 문 소장님이랑 우리 발제해 주시는 박영석 소장님 얘기 들으면서 되게 많은 것들을 좀 생각하게 됐고 그때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 납니다. 지금 온몸에서 땀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저는 말을 유려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저의 텍스트 안에서 살펴볼 것들, 특히 좀 가볍게 읽어보시면서도 그 안에 저희가 어떻게 놀이를 바라보고 있는가를 같이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에 글을 좀 다듬어봤습니다. 먼저 미리 알아두고 같이 읽어보시면 좋을 부분들이 좀 있어요. 여기서 제가 지금 언급하고 있는 놀이는 일상의 놀이뿐만 아니라 어떤 상상과 변형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연극적 놀이도 포함합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그냥 아이들 일상의 놀이 이외에도 상상과 수많은 변형들이 이루어지면서 공간을 비틀어내고 또 그 공간 안을 재창조하는 수많은 활동과 사고의 과정이 이 놀이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조금 생각해 주시면서 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도시, 함께 실천하기’에 대한 토론문. 놀이가 창조하는 공간성. 놀이의 유상성. 함께 상상해 보시면 좋겠어요. 놀이는 어떤 대가나 보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종일 그네를 타고 철봉에 매달리고 놀이기구 위에서 머문 시간 동안 놀이의 행위자인 나는 무엇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건 없습니다. 그저 내 몸은 지치고 옷은 처음 놀이를 시작했을 때와 달리 더러워졌고 신발도 닳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놀이는 노동에 비하면 참 쓸모없는 행위이죠. 그런데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정해진 기간 안에 공공공간을 변화시켜야 하는 과업에서 놀이가 중심이 되는 워크숍으로 공간을 새롭게 조망한다는 계획은 얼마나 무모한 일입니까? 카이와(caillois)는 놀이의 무상성인 놀이가 갖고있는 본래의 가치를 가장 많이 떨어뜨린다고 지적합니다. 위처럼 행위를 통해 어떤 것을 만들어내거나 도출해야 한다는 결과 중심적 관점과 사고는 놀이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시죠. 그네를 추진하기 위해 다양하게 분산하는 힘과 균형. 철봉에 매달릴 때 계속 써야 하는 몸의 지속성과 끈기. 또 기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이는 새로운 시상과 발견은 굉장히 많은 상징과 은유를 만들어냅니다.
이를 이해하는 세 명의 연극 놀이 리더 저와, 저와 같이 했던 두 명의 동료가 놀이터라는 공공공간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였고 이들은 공간의 주 사용자가 어린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놀이터라고 하는 그 공간을 처음 들었을 때 역시나 어린이를 배제하기는 어렵죠. 아마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공간의 주 사용자는 어린이입니다만, 이따 밑에 다시 설명을 곁들일 부분이 있는데요. 어린이뿐만 아니라 이 공공공간이라는 개념이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걸 좀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리더들은 어린이들이 놀이의 전문가라는 점을 바탕에 두고 다양한 놀이의 속성 가운데 행위의 예술성에 주목했습니다. 몸을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감각적 상태 그 후에 행동하면서 발견되는 사고의 지점 또 이것들을 총체적으로 모아서 활동이 끝나고 난 뒤 느꼈던 경험을 공유하는 대화의 과정을 계속 순환하면서 과정 자체에 주목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실행했습니다. 전체 과정에서 워크숍에 참여하는 어린이들은 놀이 안에서 자유롭게 공간을 탐색하고 재인식하고 공간이 품은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새롭게 공간을 해석해 보고 또 자기만의 관점으로 놀이터를 창조하면서 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굉장히 풍성하고 다채롭게 제시해 줬습니다. 다시 질문해봅니다. 진짜 놀이는 어떤 대가나 보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제목 그대로 해체하고 재구성했고 창조하는 과정을 같이 해왔습니다. mom 편한 놀이터는 이 프로젝트는 저희에게도 굉장히 좀 실험적이고 도전적이었어요. 실제 답사했던 놀이터의 모습은 생각보다 처참했습니다. 아마 놀이터를 최초로 설계하는 과정에 참여하셨던 분들은 전문가일 테고 이 전문가들이 아이들이 노는 곳 옆에 놓인 벤치에서 흡연하는 모습, 또 널브러진 술병과 쓰레기들이 방치된 모습을 처음부터 그리지는 않았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놀이터라는 공간은 주된 사용자가 어린이라고 생각하지만 말 그대로 공공공간이기에 유아, 청소년, 노인 등 다양한 연령층이 각자 목표와 욕구에 맞게 공간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놀이터를 최초 설계했을 때를 상상할 수밖에 없었고요. 저희 리더들은 그래서 앞서 발제자가 설명해 주신 대로 현재 위치와 주변의 환경 이용자들의 행태를 사전 답사를 통해 면밀히 살펴보았습니다.
저희가 사전 답사의 기간은 길지 않았고요. 지방이 아주 먼 경우에는 당일 오전에 좀 일찍 가서 살펴보기도 했고 그렇게 거리가 멀지 않았던 서울을 중심으로 멀지 않았던 경우에는 전날에 가서 답사를 하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답사의 과정을 바탕으로 참여자들과 놀이터를 새롭게 구성하기 위한 방법과 디자인들을 보완하기 위해서 놀이터의 다양한 공간을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대상지마다 새롭게 계획하고 실행했습니다. 이는 정말 필수적이었고 어쩔 수 없다고도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는 게 놀이터마다 구조하고 형태가 정말 다 다르게 있었고요. 대상 놀이터 주변이 굉장히 독특하고 고유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생각은 현재의 놀이터를 해체하고 재구성을 통해서 창조해 보는 방식이 주가 되는 프로그램의 뼈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프로그램 안에서 참여자들은 기존에 잘 알고 있는 놀이에서부터 공간 중심의 새로운 놀이를 경험하면서 워크숍이 거듭될수록 놀이터를 새롭게 재탄생시켰습니다. 놀이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아까 저희 사진 자료에서 나왔던 것처럼 놀이터 디자인 과정에서 기존 놀이기구나 조합 놀이대 외에 벤치, 나무, 수도꼭지, 조형물 등을 새로 재배치하고 또는 짚라인, 수족관, 끝도 없이 계속되는 미끄럼틀, 와이파이존, 쓰레기통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것들이 실현 가능하다고 여기 계시는 분들은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렇지만 저희하고 같이 참여했던 어린이들은 하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함께 놀면서 끝없이 상상하고 실험하며 계속해서 놀이터를 변모시켰습니다.
그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최선의 아이디어를 찾아 의견을 끝없이 덧대는 예술가의 모습과 다름없었습니다. 아까 문정석 소장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부분이 되게 재밌었는데요. 걸으면서 공간에 대한 개념을 새로 쓴다고 했던 그 개념이 저희가 했던 작업과 좀 일맥상통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계 그 너머에 유감스럽게도 사업 진행 당시 기획자와 연구자들이 주최 측에 여러 차례 제안했습니다. 대상지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이들이 실제 설계와 시공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매우 유의미하다고 보았지만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아마 참여형 워크숍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맹점이라고 발제자께서도 한번 얘기해 주신 걸 제가 다시 되짚었습니다. 설계자와 실행자의 분리는 유기적인 연계 과정을 증발시켰고 어린이들의 목소리는 놀이터의 신설계 또는 재설계에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강조했던 과정이 각자 필요에 의해서 이것들을 취사 선택하다 보니까 놀이를 통해 공간을 새롭게 창조하려고 했던 시도는 자연스럽게 한계가 정해지게 되었고 참여한 어린이들은 창조자에서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공간 조성을 위한 참여형 워크숍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뚜렷한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계라는 벽은 그 너머를 엿보게 합니다. 실패가 다음을 준비하게 하듯 놀이 워크숍은 마른 사막의 첫 물줄기를 대는 작업이라고 제가 조금 거창하게 글을 써왔는데요.
신선한 시도였고 저희 역시도 굉장히 새로웠던 작업이었습니다. 놀이의 예술성은 공간을 새롭게 조망하는, 파괴하는 가능성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놀이가 하나의 예술이라고 할 때 놀이를 통해 무엇을 살펴보고 싶은지 놀이 속에서 어떤 도전과 실험을 이어가고자 하는지 문정석 소장님이 아까 아주 좋은 지적해 주셨는데요. 놀이가 갖고 있는 예술적 측면이 현실에 뿌리 내리도록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살펴보는 것이 다음에 이어질 이런 예술이 결합된 참여형 워크숍 프로그램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이 프로그램 이후에 변화된 놀이터를 가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어떠한 변화가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mom 편한 놀이터 프로그램에 실제 어린이 작가가 놀이터 디자인을 했다면 어떤 공간이 탄생했을까. 또 놀이터를 시공하는 과정에서 어린이 자문단이 참여했다면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하는 그런 호기심이 글을 쓰면서 좀 많이 생겼습니다. 놀이와 조경이 예술성이라고 하는 공통의 분모를 바탕에 두고 시작한 작업은 무모했지만 용감했고 또 실험적이면서도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는 점은 모두 같이 확인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걸음을 응원할 필요가 있다. 첫걸음은 그다음을 예견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작업을 하면서 아무래도 우연한 기회에 참여하게 되었고 발제자께서 놀이에 대한 어떤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참여할 수 있었던 그런 행운이 있었고요. 무엇보다 이제 저희가 앞으로 또 뒤에 부분에서 토론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겠지만 참여형 워크숍 특히 예술이 결합된 참여형 워크숍 가운데서도 어떤 대상이 이 워크숍의 주인공인가. 지금 저희가 mom 편한 놀이터 같은 경우에는 역시 어린이가 주된 대상이었기 때문에 이 어린이들과는 참여형 워크숍의 경우에 국한해서 이러한 한계점이 있지만, 또 다른 방식의 참여자들과의 작업은 또 다른 한계를 만들어낼 거고 그것들은 언제나 어려움을 또는 곤란함을 겪게 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체의 프로젝트는 매우 유의미했고 또 어떤 면이 또 유의미했던지는 또 토론을 통해서 계속 발견하고 또 그 한계점도 같이 살펴보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상입니다.
박영석 감사합니다. 송재영 대표님 토론을 들으니 당시 흙먼지 날리며 뛰어 놀던 놀이터로 훌쩍 떠나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두 분의 토론문 잘 들었고요. 이야기 나눌 것이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저희가 1부는 여기서 마무리를 하고요. 잠시 휴식을 취하고 8시 10분부터 자유로운 토론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질문하실 분들은 채팅창을 통해서 자유롭게 질문 주시면 그것을 토대로 토론을 확장해 보겠습니다.
지금부터 잠시 10분간 휴식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부
박영석 저희 토론에 앞서서 먼저 몇 가지 전제를 안내 드릴까 합니다. 먼저 저희가 ‘공공예술로서의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세미나를 진행 중인데 여기서 말하는 조경은 공공을 위한 외부 공간 조성을 다 일컬어 조경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오늘 다루고 있는 워크숍의 경우에는 스토리텔링 장치를 포함한 연극 놀이 기법 또는 함께 모여서 상호 작용을 통해 결과들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으로서의 방법론을 워크숍으로 통칭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토론에 앞서서 제가 먼저 좀 가벼운 얘기부터 시작을 하자면요. 코로나 19의 팬데믹 상황이 벌써 2년째 돼 가고 있는데요. 저희가 이 프로젝트를 2018년부터 2019년에 진행했었거든요. 그래서 그게 너무 다행이다. 코로나가 없을 때 수행했던 이 경험들이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참 많은 아이들의 에피소드들이 생각나는데 거의 대게는 아이들이 처음에 올 때 다들 좀 쭈뼛쭈뼛하면서, 스마트폰을 엄청 보면서, 게임도 하면서 걸어오고 하다가 저희가 프로그램 시작 전에 모두 거두고 이름표를 붙여줄 때 ‘나중에 줄 거죠’, ‘쉬는 시간에 쓸 수 있죠’ 이런 얘기를 합니다. 거두고 난 다음부터 저희와 놀기 시작하면 나중에 스마트폰 안 보더라고요. 그리고 또 한 아이가 혼잣말하는 걸 들었는데 ‘스마트폰보다 재밌네’ 이런 얘기를 듣고 가슴 속으로 굉장히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당시 프로젝트에서 저희가 추구했던 것은 이런 워크숍 과정을 통해서 어른들이 멋진 놀이터를 지어주고 싶었던 것인데, 실은 아이들은 그 당시에 어떤 이벤트, 프로그램이자 놀이 활동하는 시간 그 자체를 굉장히 즐기고 또 행복해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가 보고서나 또는 종합 가이드에 담지는 않았지만 롤링 페이퍼를 남겼었는데요. 거기에도 늘 아이들이 한결같이 쓰는 말은 ‘누구누구 예뻐요.’, ‘누구 선생님 잘생겼어요.’인데요. 그중에 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내년에도 올 거죠.’, ‘몇 학년 몇 반에 꼭 와주세요.’ 이런 말들이 너무 기억에 남습니다.
놀이터라는 공간이 줄 수 있는 힘, 그리고 놀이터라는 공간이나 놀이 활동이 줄 수 있는 역동이라는 것은 사실 놀이터를 연구하고 있는 연구자나 놀이터를 조성하는 데 힘쓰는 설계자나 디자이너 또 놀이 활동을 추진하는 퍼포먼스를 기획하시는 선생님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에게 놀이 자체는 앞서 송재영 대표님께서 말씀해 주신바 유상성, 무상성을 떠나서 그저 그 놀이 활동 자체가, 학교 공부나 학원 수업에서 쏟는 에너지와는 달리, 자신을 찾아가는 굉장히 유효한 의미와 작용 또는 경험의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앞서 문정석 소장님께서도 말씀해 주신 ‘역동(dynamics)’ 이 내용이 제가 알기로 연극 분야, 연극 놀이 분야에서도 굉장히 중요하게 쓰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두 분께 질문을 먼저 하나 드리고 싶은데요. 이 역동이라는 말이 공간을 계획하는 관점에서는 ‘이해관계자나 기관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욕망이나 상관관계’ 등을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소 정태적이고 어떻게 보면 절대적인 요소들의 일방적인 묶음이었던 걸로 저는 이해를 했거든요. 그런데 반면에 예술적 퍼포먼스의 관점에서는 ‘역동이 있다. 역동적이다’라고 하는 말은 퍼포먼스를 하는 데 있어서 플레이어들 간에 어떤 교감이나 상호 작용이나 이런 것들로 인해서 보다 동태적이고 또 다소 상대적인 개념으로 느껴졌습니다. 역동이라는 말이 쓰여지는 바들이 서로 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희의 놀이 워크숍 과정에서 두 선생님께서 발견하신 역동은 어떤 것들이 있으셨는지 먼저 문정석 소장님께 한번 질문을 드려봐도 괜찮을까요.
문정석 네. 역동이라는 표현을 굉장히 여러 곳에다가 집어넣어서 의미들을 얘기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제가 아까 mom 편한 프로젝트의 한계에 대해서 말씀드렸지만, 실무 프로젝트에서, 현실세계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서는 역동적인 상황을 아주 싫어하죠. 왜 그럴까 항상 생각하게 되는데 어쨌든 현실에서 진행되는 일에서 역동적이라는 의미는 불안이라는 뜻과 거의 동의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불안한 것. 어떻게 보면 불안하다는 것은 일의 모습이나 진행되는 상황들을 미리 결정하려고 하는 시도들, 즉 일을 시작하기 전 대략 이게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어떤 형상을 가질지를 미리 그려지지 않으면 우리는 굉장히 불안해하잖아요. 아마 여기서 들으시는 분 중에 학생분들이 있다면 지금 제가 말씀드릴 상황을 경험하실 일이 있을 텐데, 학생 때 건축이나 조경전공 학생들은 졸업작품을 제출해야 졸업을 할 수 있잖아요. 제 경우, 졸업작품을 할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얘기가 졸작은 학생 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예측 가능한 것,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거야 이런 말이었습니다. 그것이 작품이건 논문이건, 아마 연극도 마찬가지겠죠. 아무튼, 그 이후로도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 거를 하는 것이 중요해’ 이런 얘기를 굉장히 자주, 그리고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고 그냥 마지막이니까 그런가 보다 했는데, 세상에 나오니까 유독 우리들이, 물론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판단을 지연하고 결과를 조금 더 기다리는 태도, 다음에 정의 내릴 수 있을 때까지 조금 시간을 연장해보는 방식에 대해서 굉장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더군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역동이라는 말은 사실 굉장히 좋은 말인데 현실세계에서 역동은 그런 식으로 변질이 되더라는 그런 것들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연극적 방식의 놀이 워크숍을 관찰하면서 굉장히 고민스러웠던 지점들도 연극적인 상황들에 아이들이 적응해가면서 조금씩 룰을 만들고 또 깨고 하면서 전개된 다양한 상황의 상호작용들을 제가 100%까지는 아니어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놀이공간이라고 하는 프로젝트의 주제를 이미 상정해 두긴 했지만, 사실 놀이에 관한 거의 모든 것들을 다시 정의 내려야 되는 과정이 필요했다는 점입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놀이터는 굉장히 근대적이잖아요. 놀이터 하면 이미 우리가 답을 내릴 수 있을 만큼 형상이 이미 정해져 있는데 철봉, 그네, 정글짐 이런 것을 보며 근대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 굉장히 측정 가능한 것들을 측정 가능한 범위 안에서 계량화될 수 있는 행동으로 옮겨진 굉장히 정확한 도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벤치나 놀이기구나 운동장, 놀이터의 어떤 모양이나 그 범위를 결정짓는 판단, 이런 것들에 대해 우리는 정태적인, 고정적인 것에 대한 이미지를 이미 가지고 흘러가는데, 과연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런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역동적인 것들에 대한 포커싱을 익숙한 방법으로 쉽게 해석하고 정의내리지 않으려고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정해진 일정으로 인해 그러지 못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박영석 네. 감사합니다. 또 한편으로 송재영 대표님께도 같은 질문을 드릴 텐데요. 토론문에서 인용해 주신 카이와 같은 경우, 놀이의 4대 요소 중에 일링크스라는 요소는 놀이가 주는 놀이 활동이 주는 불안감이나 모험심, 이런 것들을 굉장히 중요하게도 여기시더라고요. 그런 측면에서 또 송 대표님이 지난 저희 놀이 워크숍을 진행하시면서 경험하셨던, 목격하셨던 놀이 활동의 역동들은 어떤 것이 있었고 또 그것이 저희 워크숍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송재영 문정석 소장님 말씀해 주신 굉장히 흥미롭네요. 역동과 불안이 연결되는. 아무래도 이제 무언가를 설계하고 그것들을 그려나가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역동이라는 게 굉장히 불안하시겠구나라는 공감이 되게 됐고요 저희 같은 경우에는 이제 역동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죠. 아무래도 너희와 참여자 또는 참여자와 참여자 또는 참여자와 공간이 맺는 관계 또는 참여자 사이에서도 어떤 연령의 차이, 성별의 차이, 역동을 드러나게 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결합이 되면서 어떻게 이것들이 연결될 거냐 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놓고 저희들은 이제 활동을 하는 예술가다 보니까 역동이라는 말 자체에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끼고 역동이 발생하지 않으면 사실 저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아무리 끌고 가려고 해도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에 봉착하게 되죠.
아까 제가 좀 글을 도발적으로 쓰긴 했는데 어떤 놀이의 유상성 무상성 좀 흥미를 유발하려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좀 단어를 쓰긴 했는데요. 자연스럽게 아이가 있다면 또는 아이가 없더라도 본인이 아이였을 때를 좀 상상해 보시면 사실 혼자서도 굉장히 끊임없이 집중하면서 놀이를 하고 그 놀이 안에서 스스로 역동을 발생시키죠. 그림자의 자기 손을 대보면서 강아지를 만드는 아이들의 모습. 태양 앞에 문을 닫았다가 까꿍하는 모습들 이런 것들은 사실 저희들은 다 일종의 역동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놀이 워크숍 하면서 저희가 굉장히 신경 썼던 부분은 사실은 참여자와 참여자의 관계보다는 참여자와 공간이 맺는 어떤 관계성에서 발견되는 역동이었거든요.
그래서 가령 조합 놀이대가 아무리 멋지고 잘 꾸며져 있다 하더라도 참여자가 매력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 어떠한 문제가 있어서 이게 역동이 발생하지 않는가. 또는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서 그냥 돌멩이만 가지고도 스스로 비석 치기를 하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재미와 즐거움을 스스로 계속 발전시켜 나아가는 형태는 ‘기구나 어떤 벤치나 놀이터라고 하는 공간에 늘 들어가는 포멀한 형태의 구조물들이 의미가 있는가?’ 그런 질문들을 수도 없이 이제 하면서 이 워크숍을 계속 진행했는데요. 문정석 소장님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역동이라고 하는 것들을 다시 재정의해서 살펴볼 필요는 있겠지만 연극과 놀이 또 예술 교육을 하는 저와 저희 동료들이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공간이 주는 어떤 놀이와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참여자들이 어린이들이죠. 무엇을 느끼고 상상하고 있는가를 통해서 계속 역동을 발생시키려고 했었고 그러다 보니까 조금은 평면적이지는 않았던 것들이 이제 탄생을 하면서 결국에는 이걸 시공하시려고 하는 분들에게는 도대체 끝도 없이 이어지는 미끄럼틀을 어떻게 만들라는 거야 이렇게 갈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결국에는 이 아이디어로부터 발전이 되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관점과 사고가 이렇구나.’ 그래서 그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담아낼 거냐까지 가는데 조금 저희끼리는 좀 합의하고 아마 발제자님께서도 그런 지점들에 대해서 저희가 계속 논의하고 토론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요약하자면 결국에는 놀이터라고 하는 공간이 공공공간이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자기들과 어떤 놀이하러 온다고 하더라도 어른들이 좀 개입되어 있다거나 그 주변의 환경이 놀이와는 좀 거리가 멀다고 느끼면 놀이가 발생 되지 않는다는 문제 그래서 놀이터가 아닌 다른 곳으로 조금 더 흥미가 이동한다는 부분들을 저희가 좀 발견했고요. 그다음에 가장 현대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지금의 문제. 아이들이 놀 줄 몰라서 놀이하는 방법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놀이터를 찾지 않아요. 놀이하는 방법을 알려주니까 놀이터 안에서 엄청난 역동이 생기고 또 거기 안에서 놀이터를 또 새롭게 조망하는 아이들의 모습들을 좀 볼 수 있어서 그런 측면에서의 역동들이 좀 작업하면서 좀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정석 역동을 다루는 계획적인 방법도 저처럼 건축이나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이 다루는 전형적인 방식이 있는데 고정적인 것을 통해 예측불가능함을 파악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들은 소리를 조절할 때 음향기기의 이퀄라이저를 조절해본 적이 있을 거예요. 굉장히 스위치가 많잖아요. 처음에는 이렇게 저렇게 만지면서 소리를 바꿔보다가 결국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다루는지 보면 줄을 일정하게 맞춰놓고 조금씩 조금씩 바꿉니다. 즉 처음에는 기준 없이 마구잡이로 조절하다가 결국은 일정한 패턴을 만들면서 상태를 조절하게 되는데, 사실 계획적으로 역동을 파악하는 방법도 약간 그것과 비슷합니다. 아까 송재영 대표님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들이 공간에서 그런 식으로 놀 때, 제가 주목하는 것은 아이들이 어떤 것을 경계의 기준을 어디로 삼아 어떻게 공간을 넘나드는지 또는 지형지물이 없을 때 기준점을 어떤 것으로 정해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꾸 뭔가 기준을 정하려고 하죠. 어떤 학자들은 그것이 원시 때부터 내려온 본능적 행동이라고 말하기도 하죠. 사람은 원시 적부터 사냥 등의 이유로 야생에 노출되어 있을 때, 자기를 은폐시키고 최대한의 시야를 확보하는 방법을 찾다 보니 그런 기준점을 중심으로 자기를 위치시킬 때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입니다.
앞서 이퀄라이저에서도 예를 들었지만, 사실은 재미없고 뻔한 분석입니다.
역동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계측하기 위해 뭔가 기준이 되는 고정된 지점이나 선을 이미 그어놓고 그것에서부터 얼마만큼 벗어났느냐에 대한 수치를 통해 역동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 저 역시 이번 프로젝트에서 관찰하고 분석한 내용을 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썼던 다이어그램을 통해 그런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자료를 아까 영석 소장님이 색깔 칠해져 있는 그림으로 잠깐 보여주셨는데 그런 것들이 한계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계획에서 역동을 파악하는 전형적인 방식이 있다는 걸 소개를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송재영 네. 문정석 소장님이 말씀해 주신 것 중에 저희도 같이 고민했던 지점인 것 같아요. 아무리 저희가 놀이를 중심으로 어린이들의 어떤 관점과 사고를 담아내야지 하더라도 이게 결과물을 내야 하는 어떤 프로세스에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저희 역시도 스스로를 의심하죠. 이게 역동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모드로 최선을 다하지만 문정석 소장님이나 실제 시공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이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거지’ 사실 조금 강하게 말씀드리면 좀 터무니없는 일일 수도 있거든요.
가능하지 않은 일들에 대한 것들을 지금 실험해 보고 워크숍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과 예산이 그냥 소요될 뿐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게 잘 봐주시고 또 바라봐주시는 그 모습들. 그리고 역시나 저희도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그 딜레마에 빠지게 됐을 때 ‘이게 쉽지 않구나’ 이게 어린이들이 만들어내는 어린이의 세계를 아무리 어른들이 존중한다고 하지만 그 세계가 결국에는 어떠한 결과로 나온다고 했을 때 이 안에서의 우리만의 어떤 역시나 뭔가 선을 그어놓고 이 라인을 넘지 않게 조절해줘야 되는 건 아닐까라는 그런 질문들을 저희들도 계속 가지고 작업을 했던 경험이 생각이 나서 문정석 소장님 말씀에 되게 많이 동의가 되었다는 부분들을 좀 말씀드리고 싶어서 손을 들었습니다.
박영석 진행자로서 굉장히 흐뭇합니다. 두 토론자께서 주고받는 이야기가 굉장히 두텁고 굉장히 의미가 있고 재밌습니다.
늘 워크숍 결과물 중에 아이들이 꼭 빠지지 않고 했던 것들을 다시 살펴보면 짚라인, 끝도 없이 계속되는 미끄럼틀 거의 도면을 끝까지 다 채우죠. 그리고 와이파이존, 자기들만 알 수 있는 비밀 기지, PC방 같은 것들을 꼭 넣더라고요. 거의 매 워크숍마다 한 팀 이상씩은 꼭 그랬는데 그런 것들을 보면 아이들이 원하는 어떤 공간적인 쓰임, 기능적인 부분으로서의 놀이 공간을 사회적으로 다르게 해석할 여지도 충분히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조금 더 진전시키면 저희가 사전 놀이 워크숍을 진행했던 놀이터들은 모두 조성이 완료되었습니다. 결과물로서 놓고 보면 놀이터는 결국 조합 놀이대 또는 놀이 시설 중심의, 앞서 문정석 소장님께서 말씀해 주신 근대적인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의 실험적이고 이상을 추구하던 놀이 워크숍을 통해서 조금 다른 또는 좀 더 아이들에게 가까운, 좋아하는, 선호하는 놀이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결과물이 또다시 기존의 놀이터 시설물 중심의 놀이터로 재생산될 수밖에 없었던 게 마음이 좀 아팠습니다.
문정석 물주가 대기업이라서 그래요
박영석 물주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웃음) 사회공헌 활동이다 보니 좀 번듯한 사진도 필요하셨을 거고 지역의 명망가분들이 오시는 자리가 또 필요했었을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대승적으로 이해하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질적으로 나은 공간 또는 질적으로 조금 다른 공간들을 만들어 갔으면 또 오늘날의 우리나라의 놀이터 공간에 대한 좀 새로운 문화적인 실험이나 또는 다시금 곱씹어볼 만한 소재가 될 수도 있었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질문을 좀 더 확장해 볼게요.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저희가 공공공간을 이제 조성하는 과정에 어떤 한 부분들을 담당했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저희가 예술적인 상호 작용을 이제 함께 조금 교차시켜보려고 했었는데요. 이런 것들의 의미 또 의의가 어떤 게 있었을까요. 겪으신바, 경험하셨던바 느끼신 바들을 한번 좀 청해 듣고 싶습니다. 어떤 분이 먼저 발표해 주실까요.
송재영 제가 먼저 해보겠습니다. 사실 아까 문정석 소장님이 보여주셨던 자료에서도 보셨다시피 이런 예술적인 시도를 바탕으로 공공공간이나 어떤 공간 또 어떤 건축물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려고 했던 시도들은 사실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그게 표면화되지는 않았지만 사실 많은 작은 곳에서는 마을 커뮤니티라든지 이런 사업들 안에서 계속 공간들을 만들어내려고 하고 또 그런 시도 안에서 주로 미술 작가나 아니면 건축가들이 많이 참여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는데요. 발제자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이 과정과 결과를 놓고 봤을 때 과정 자체는 언제나 유의미하려고 노력했을 겁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그런데 이게 결과가 도출되었을 때는 예술적인 어떤 면모를 찾기가 어려워지면서 앞서 했던 그 예술가 또는 어떤 예술적인 면모가 곁들여졌던 워크숍들이 증발하게 되거든요. 근데 공공공간이라고 했을 때 저희가 이 예술적인 상호 작용이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만들어지고까지는 사실 예측하기가 좀 어렵다라는 문제가 제일 저는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게 중간중간에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대기업 또는 스폰서 또는 주체, 주관자 또는 기획자로 이어지는 일련의 어떤 라인이 동그라미 라인이 아니라 굉장히 수직적인 라인으로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예술가들이나 예술 과정이 곁들여졌던 워크숍 안에서는 중간중간이 비게 되거든요. 그래서 그런 문제점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고요. 요즘에 생기는 그런 어린이 박물관 같은 데 가보시면 어린이들이 조성한 공간이라고 표시를 해놓고 어린이들이 만들어낸 디자인이 그대로 잘 반영돼있는 곳도 있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역시나 부분적이고 전체로 놓았을 때 아이들의 목소리가 좀 담겨 있습니다 일 뿐 어떤 예술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서 공공공간이 조성되었는가에 대한 부분은 여전히 저는 의문이 있고요. 하지만 실험은 실험대로 유의미하고 그 결과는 결과대로 분리되는 이 상황을 저 스스로는 조금 비관적으로 보고는 있는데 결국에는 이 자본이라고 하는 것들이 들어오면서부터 쉽지 않은 일인 거죠. 그리고 그렇지만 여전히 이런 시도들에 대해서는 응원할 필요가 있다는 좀 원론적인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고 마지막으로 좀 첨언하자면 mom 편한 놀이터 워크숍 같은 경우에는 공공공간이라고 하는 놀이터 안에서 예술적인 상호 작용은 굉장히 뛰어나게 그 과정 안에서는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저희가 방문했던 공간 안에서의 아이들의 놀이 이런 것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다르게 가져갔다는 것, 공간을 어떻게 바라볼 거냐를 우리가 제안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예술이라고 하는 것들을 경험하면서 보이지 않았던 철봉을 보게 되고 보이지 않았던 나무를 보게 되고 그러면서 그 공간을 자기들이 스스로 좀 뛰어 들어가 보고 도전해보고 실험해 보는 어떤 장소를 활용해 보았다는 측면으로 볼 때는 굉장히 많은 예술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었고 또 연극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들이 이 공공공간을 만들어내는 과정 안에 참여한다면 조금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개인적인 의견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문정석 네. 저도 예술적 상호작용을 통한 공공공간의 의미 이런 것들에 대해서 원론적인 얘기를 드릴 수밖에 없기는 한데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예술의 쓸모라는 말만큼 이상한 말이 없는데 또 역으로 예술적인 활동은 계속 왜 이것이 유용한지에 대한 쓸모를 끊임없이 밝혀야 되는 숙명 같은 것이 있습니다. 쓸모를 논하는 것이 좀 웃기지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역할을 하니까 이런 게 필요하다는 얘기를 어떻게든 할 수밖에 없죠. 생활예술이라는 말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그 반대편에서 어떤 종류의 예술적인 행위들은 너무 초월적인 위치로 가서 소통이 안 되거나 또 너무 내재적으로 흘러가서 눈에 보이지가 않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사이를 오가며 운동하긴 하지만요. 송재영 대표님과 박영석 소장님이 기획하고 실행한 내용, 아이들과 함께 능동적으로 공간을 플레이하는 걸 보면서 일상과 생활에 결합된 형태의 예술이 굉장히 유용하게 많은 창의성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가능성이랄까 그런 것들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제 토론문 앞부분에 다른 사례들이나 텍스트를 인용한 것도 사람의 행위가 그만큼 끊임없는 관찰을 필요로 하는 굉장히 좋은 창조의 원천이어서 그렇습니다. 이것이 단지 아카데믹한 이슈만은 아닌 것 같고요. 여전히 많은 사람이 계속 현장에 답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역동성이 주는 불안에도 구하고 그 안에 발을 내리려고 하는 것도 그만큼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송재영 문정석 소장님 말씀 들으면서 제가 조금 궁금해졌던 점은 이 공공공간을 예술적인 어떤 워크숍을 통해서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이 관계자들이 왜 그렇게 원할까에 대한 질문이 있거든요. 이게 그냥 짓는 것도 괜찮은데 그냥 지어도 괜찮은데 그냥 본인들의 욕구에 의해서 지어도 괜찮을 텐데 저는 오히려 같이 관련되어 있는 분들이 어떤 예술적인 언어들이 좀 들어와서 이것들이 좀 건축적인 측면에서 뭔가 ‘우리가 그냥 짓지 않았어.’, ‘우리는 무언가를 좀 영향을 많이 담아내려고 노력했어.’, 그게 누군가의 목소리든 누군가의 어떤 의견이든 또는 이들이 제안했던 어떤 아이디어들을 사실 공청회도 하고 되게 많은 것들을 사실 하잖아요. 근데 왜 비단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할까. 이들은 왜 예술적인 부분들에 개입을 원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조금 궁금해졌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되게 제가 문정석 소장님 아까 써주셨던 글이랑 말씀해 주신 말들이 저한테 조금 되게 많은 생각에 어떤 더미들을 준 것 같아가지고 생각난 김에 말씀을 좀 드렸습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소장님
문정석 기본적으로 뭔가 눈에 보이는 물건을 만드는 직업은 기본적으로 일종의 페티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유물론자라는 근사한 표현으로 얘기하기도 하지만 사물에 갇힌 직업이다 보니 건물이나 공간 같은 살아있지 않은 물질에 더 가까운 것에 인격을 부여하려고 합니다. 저는 조경도 약간은 그런 측면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쨌든 무생물에 인격을 부여하려고 하는 이상한 나쁜 버릇이 있지요. 약간 농담이긴 한데 예술적인 부분에 집착하는 것도 사물에 일종의 영혼을 집어넣고 싶은 바램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박영석 정체성 같은 거요. 또는 장소성.
문정석 어떤 사람들은 그냥 건물, 물건인데 살아있는 어떤 것에 자꾸 비유하고 싶어 합니다. 가장 익숙한 쉬운 표현으로는 내가 디자인한 어떤 것을 내 새끼나 내 자식이라 표현하곤 하죠. 살아 움직이는 것들에 대한 본능적인 허기짐, 결핍이 있는 거죠. 송재영 대표님이 말씀하신, 사람들은 왜 그런 예술적인 것들을 ‘overlay’ 하는 걸 원할까, 왜 자꾸 그런 걸 끌어오려고 할까에 대한 이유가 저도 가끔 궁금하게 생각될 때가 있는데 유물에 중독된 그런 직업이나 바램 때문에 더욱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송재영 저는 문정석 소장님의 그런 시선이 굉장히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부분이라서 말씀을 드렸고요. 그냥 조금 더 말씀을 드리자면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신만의 예술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는데 문정석 소장님께서 역시 건축가이면서 어떤 예술적인 관점과 눈을 가지고 계셔서 이것들을 읽어내실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 않은 분들이라면 아마 문정석 소장님처럼 이렇게 뭔가 깊이 있는 어떤 대화들을 저희가 나눌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측면에서 말씀을 한번 드리고 싶어서 제가 문 소장님 말씀에 조금 꼬리를 달았습니다.
박영석 네. 돌이켜 보면 이 프로젝트는 문정석 소장님과 송재영 대표님 같은 분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면 결코 진행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두 분 덕분에 지금 저희가 이렇게 다시 한번 의미를 찾아가는 시간들, 소중한 시간들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사전에 드렸던 공통 질문들이 아직 몇 가지가 남아 있긴 한데요. 이 질문들이 종합된 내용이 객석에서 전달되었습니다.
제가 질문을 읽어드릴게요.
[흥미롭고 많은 자극이 되는 발제와 토론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연출되지 않은 희곡 역시 하나의 예술 작품이듯이 제게는 세 분께서 진행하셨던 작업 역시 생명력이 있는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발제자와 토론자께서 이 프로젝트의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말씀해 주셨는데 그 가능성과 한계를 엮는 제약을 풀어버리는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령 시공을 염두에 두지 않은 가상의 공간 프로젝트 혹은 퍼포먼스 프로젝트였다면 어떻게 달랐을까요. 혹은 설계에서 시공까지를 완전히 보장받은 프로젝트였다면 어떻게 달랐거나 차후 과정이 진행되었을까요. 세 분의 다음 협업 프로젝트를 보고픈 마음을 담아 질문을 드립니다.]
아주 멋진 질문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정석 소장님.
문정석 네. 어떻게 보면 시공을 염두에 두지 않은 가상공간에서의 프로젝트는 굉장히 매력적이죠. 온전히 실천하고 거기서 발견한 것들을 최대한 손실 없이 공간화시키는 방법으로 그런 가상적인 방식, 요즘에 가상공간 구현에 대한 충분히 툴이 있으니까요. 그렇긴 한데 저는 사실 요즘에 이야기되는 가상세계, 메타버스 이런 것이 별로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여러분들도 ‘메타버스’에 대해 얘기하면 가상공간에 대해 머릿 속에 이미 떠오르는 것이 있잖아요. 이미 그 공간조차도 굉장히 규격화, 형식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가상이라는 막연한 공간에 대해 그냥 우리가 이미 살고있는 도시처럼 만들어 버리는 방법으로 너무 손쉽게 전환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만약에 가상에서 그런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면 현실에서도 그럴 수 있겠죠.
송재영 네. 문정석 소장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요. 문 소장님 말씀 나누면서 자꾸 머리를 쥐어뜯게 되는 게 되게 비슷한 면도 참 많고 제가 눈 소장님보다는 내공이 확실히 부족하지만 조금 고민을 해보는 부분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만약에 이런 작업이 이루어졌다면 협조조차 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이제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작업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어떠한 제약을 가지고 저는 작업하거든요. 그리고 이 시간과 공간이 없다면 관객들을 만날 수가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연극이라고 이걸 생각해 보았을 때. 또 가상의 공간에서 누구를 만날지도 의문이고요. 저희가 생각하는 방식은 면대면. 사람과 사람이 직접 닿고 만나고 연결되는 작업 안에서의 의미를 발생시킨다고 생각해요. 특히 그게 또 예술이 해야 하는 몫이고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서 말씀 주셨던 가상공간 프로젝트와 퍼포먼스의 형태로 이 mom 편한 놀이터가 진행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에는 조금 회의적인 면이 있고요. 하지만 두 번째 질문에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설계하고 시공까지 완전히 보장받은 프로젝트였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가 지금 가장 큰 한계라고 집어내고 있는 부분은 설계에서 시공까지 완전히 보장받진 않더라도 앞선 단계에 참여했던 분들의 목소리와 의견이 좀 담기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던 건데요. 이렇게 말씀 질문해 주신 선생님처럼 완벽하게 보장받은 프로젝트였다고 한다면 좀 부족하지만, 그 안에서 많은 의미들을 찾아내지 않았을까. 오히려 정해진 어떤 금액이라든지 예산이라든지 정해진 공간이라고 하더라도 이 안에서의 의미를 우리가 찾을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어떤 프로젝트이지 않았을까. 도전해볼 만한. 저에게도 역시. 그런 생각이 듭니다.
< 마무리 >
박영석 네. 감사합니다. 시간이 벌써 또 8시 50분을 향해가고 있네요. 저희가 사실 질문들이 몇 가지 남아 있긴 한데 시간 관계상 마지막으로 각 토론자분들께 다시 돌이켜 보았을 때 놀이 워크숍을 돌이켜 보았을 때 앞으로 공공공간을 조성할 때 이러한 예술적 제스처들을 가미할 수 있는 또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방식으로 했으면 하는지 바라시는 점, 또는 어떤 점들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고 제시하는 부분이 있으면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듣고 저희가 오늘 자리를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준비가 되신 분께서 먼저 시작해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문정석 네. 박영석 소장님이 질문을 더 하셨으면 저의 지식의 곳간이 바닥날 뻔했습니다. 토론문 마지막에 제가 쓴 부분을 언급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실제로 갈등과 자기 이해관계에 따른 이권이 충돌하는 일들이나 집단지성을 필요로 하는 일들은 굉장히 많이 있죠. 그 안에서 서로가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창조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때로는 워크숍과 같은 열린 대화의 형태를 취하기도 합니다. 등가로 서로의 이해를 교환하는 대화로는 딱히 창의적 해결방법을 기대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창조적으로 상황을 매개하고 역동성을 창출하는 역할로서 예술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참여가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또 예술의 유용성에 대한 그런 지평의 확장이 앞으로 굉장히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송재영 네. 오늘 토론 질문들이 어려워서 저도 많이 바닥이 났기 때문에. 저는 일단 문정석 소장님이 말씀해 주신 말씀에 조금 첨언하는 정도로 마무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첫 번째는 염두에 두어야 하는 부분은 역시나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 기능적으로 사용되면 분명히 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지금 저희가 이게 조경 또는 건축, 이걸 아우르는 어떤 공간이라고 하는 것들과 연결되는 작업을 국한해서 좀 말씀을 드리자면 예술이 결국에는 어떤 영역을 담당하게 되는 부분이 있고 이 영역들이 다양하게 영향을 주고받아야 하는 부분들 근데 아까 말씀하신 어떤 1 대 1의 방식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기는 좀 어렵다는 부분에 저도 동의하고요. 다만 어떤 방식이 될지는 좀 저도 의문인데 그런 것들을 좀 꿈꿔보긴 합니다. 놀이터에 대한 저희가 작업을 했으니까 놀이터에 관련돼있는 다양한 어떤 집단 지성들 여기도 모니터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그 놀이터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누군가를 초대한다든지, 이 놀이터 주변에 가장 오래 살았던 누군가를 초대한다든지 결국에는 다양한 히스토리와 주변의 상황들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분들이 같이 매개가 되었을 때 그 결과물을 넘어서서 그 과정 자체에서 무언가 발견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그 과정이 흥미로웠다면 결과에도 어떠한 일정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 예술적인 제스처가 이러한 방식이 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좀 담아보게 됩니다.
박영석: 두 선생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최근에 다른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어떤 단지의 놀이터에서 놀다가 해당 아파트 동대표께서 그 아이들을 재산 손괴로 경찰에 신고하는 뉴스가 있었죠. 놀이 활동, 놀이 공간에 대한 기성세대의 유연한 의식이 아직 널리 자리 잡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송재영 대표님께서 쓰신 글 중에 이런 말이 또 다시 와 닿습니다. ‘정해진 기간 안에 공공공간을 변화시켜야 하는 과업에서 놀이가 중심이 되는 워크숍으로 공간을 새롭게 조망한다는 계획은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 맞습니다. 굉장히 무모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마지막 단락에서는 ‘마른 사막의 첫 물줄기를 대는 작업이다’ 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또 문정석 소장님께서 말씀해 주신 여러 가지 기존의 사례와 맥락에서부터 뽑아낼 수 있는 예술적인 가치와 공간과의 연결 지점들도 앞으로 새로운 의미들을 찾아가는 데 중요한 소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의 이야기는 여기서 잠시 매듭을 짓지만 앞으로 공공공간과 예술성, 놀이성 등을 위시한, 우리가 함께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 나가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와 의미들을 다시 한번 찾아가는 그런 시간들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오늘 두 선생님들 모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와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또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 나눠주신 참가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지난 날, 1년간 진행됐던 프로젝트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해드리는 자리가 되어서 굉장히 뿌듯하기도 하고 또 여느 토론 자리에 비해 기분이 남다릅니다. 오늘 저녁에는 맥주를 많이 사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다들 수고 많으셨고요. 감사합니다.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