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와의-도시-만들기
박소영 / parksoyeong@snu.ac.kr 우리는 도시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인간이든 인간이 아닌 또 다른 존재든, 이는 참이다. 인류의 55%, 대한민국 인구의 92%가 도시에 거주한다는 통계는 도시의 지구적 위상을 보여준다. [1] 그러나 이 숫자는 동시에 도시 바깥에 아직 ‘남은 공간’—통계 속 인류의 45%와 대한민국 인구의 8%가 거주하는 영역—이 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하지만 통계상 도시란 인구 밀도를 기준으로 한 행정적 분류일 뿐이다. 사실상 도시는 지구를 지배한다. 도시는 마치 블랙홀처럼 농촌, 산지, 해양을 포함한 지구 전역의 자원을 빨아들이고 또 폐기물을 내뱉는다. 산간벽지에 사는 존재들조차 도시에 의한, 도시를 위한 경제 활동의 영향권 안에 있다. 라면 팜유를 위해 아마존 나무가 잘리고, 매연이 피어오르는 가운데 빙하가 녹아내리는 상황에서 도시의 바깥이란 정말 존재할까? 행성적 도시화 속에서 도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그 자체다. [2] 도시라는 세계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인간 너머(more-thanhuman)로 확장하는 인문학, 특히 환경사, 인문지리학, 다종인류학, 과학기술사회학(STS)은 도시가 ‘인간적인 것’과
  • ULC 7
  • 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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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되(돌리)기
권소희 /  thgmlrnjs@snu.ac.kr 어려서부터 유독 비를 좋아했다. 많은 어린이들이 그렇듯 우산이 무겁다는 핑계로 비를 맞으며 집에 오는 길을 즐겼고 보도블럭 세로벽에 간간히 붙어 있는 달팽이를 찾는 것이 그 시절 비 오는 날의 보물찾기였다. 달팽이는 빠르지 않다. 도망가지도 내게 위협적이지도 않았던 달팽이를 쪼그려 앉아 보고 있으면 생각보다 긴 시간이 흘러 있었다. 내가 비오는 날 기억하는 아스팔트 위 무언가는 달팽이뿐이지만, 생각해보면 지렁이처럼 당시 내가 포착하지 못한 누군가들도 그 곳에 있었다. 그 시절에만 먹을 수 있는 계절과일을 먹는 것이 계절을 향유하는 한 방법이라면, 한 시절에 유독 더 잘 등장하는 여름 달팽이와 매미, 가을 잠자리 같은 계절동물들과 인사하는 것 또한 계절을 향유하는 한 방식일테다. 많이 덥고 또 비가 많이 왔던 지난 여름 서울환경연합에서 진행하는 활동에 참가했다. 지렁이를 구조하는 일은 단순했다. 길을 걷다 지렁이를 발견하면 주위에 지렁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찾아 부드러운 흙 위로 살살 옮기면 되는 것이었다. 지렁이의 구조 못지않게 인상적인 것은 그다음의 활동이었다. 지렁이를 ‘돌보는’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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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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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_도깨비바늘처럼
도시는 온갖 생물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이 책은 그러한 현실의 당연함과 다양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의 눈으로, 인간 아닌 존재들을 그리며.   보도블록 틈에 자란 풀, 공원의 관목에 깃든 새, 담장 위를 거니는 고양이는 인간이 지은 도시를 인간이 꾀하지 않은 방식으로 쓴다. 그런 탓에 도시에 사는 비인간(non-human) 생물은 예상과 통제를 벗어나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존재로 여겨지곤 한다. 그들은 정말로 인간이라는 중심의 주변을 기웃거리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침입자일까? 도시에서 인간이 비인간과 마주쳤을 때 떠올리는 예외성과 불편한 느낌은 무엇을 뜻할까? 그런 상황을 일으키는 공존과 상충을, 그 현장으로서 도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늘날 도시는 더 이상 자연을 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에 자연을 들임으로써 많은 문제가 해결되리라 기대한다. 도시와 자연을 접합하려는 생각이 만연한 지금, 인간의 계획과 무관하게 도시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비인간 생물의 문제는 말하자면 ‘어두운 등잔 밑’에 있다. 도시라는 방을 자연이라는 등불로 밝힐 때 가장 어두운 부분은 등잔 바로 아래의 그늘이다. 이곳은 광원으로부터 가장 가까우며,
  • ULC 7
  • 202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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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쓰는-역사
임한솔 / hsollim@hanmail.net     말과 글의 차이   깊어가는 밤, 빈틈없이 오가는 대화를 들으며 문득 생각했다. 비평이라는 게 멀지 않구나. 오가는 말들을 받아 적기만 해도 꽤나 괜찮은 글이 되겠다 싶었다. 비평이 드문 분야라는데 능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있다니. 없는 것은 비평적 사고와 대화가 아니었다. 글이었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좋은 말, 나아가 좋은 생각이 좋은 글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말의 세계와 글의 세계는 때로는 평행우주 같다. 서로가 존재 이유이면서 서로 무관하게 흐르는 평행우주처럼, 말과 글은 생각과 행동의 분기점들을 거치며 점점 더 멀어지기도 한다. 그런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열쇳말은 시간이다. 말하기와 듣기는 동시에 일어나지만 쓰기와 읽기는 시간차를 두고 일어난다.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지만 써낸 글은 퇴고가 가능하다. 말은 기억에 의존하지만 글은 기록 그 자체다. 여기서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마셜 맥루언의 통찰을 떠올려 보자. 매체적 차이는 표현의 방식, 나아가 생각의 방식을 다르게 한다. 말은 발화 당시의 상황과 정서에 밀접하고 반복과 연상을 활용하게 하지만 글은 개인의 내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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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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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의-유엘씨
박영석 / yareut@gmail.com     ‘데이터_유엘씨프레스’ 폴더를 열었다. 가장 오래된 폴더 ‘190928 도시경관매거진_ULC_ys_01’ 속 기획서는 ‘온라인 매거진 - 도시를 읽고 쓰는 새로운 공간’으로 시작해서 ‘콘셉트: 가볍고 빠르게, 그러나 진지하고 정확하게 공유하는 도시 경관의 지식과 정보’로 끝이 난다. 4년 전, 이 조촐한 유인물을 임한솔 에디터와 신명진 에디터에게 들이민 장면이 눈에 선하다. 이 무렵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학술활동 지원 공모를 준비하면서 구상을 구체화했다. 계획서에는 ‘현대 도시 및 조경 관련 이슈를 재구성한 에세이를 작성하여, 홈페이지 및 SNS를 통해 대중에게 공유함으로써 도시경관 연구자의 새로운 연구결과 출판 형식의 실험’을 하겠다고 적었다. 국내 유사 사례는 전무했기에 주로 해외 사례를 참조했는데, 오프라인 출판물로는 『랜드스크립트(Landscript)』와 『팜플렛(Pamphlet)』 [1] , 온라인 출판물로는 ‘Landscape theory’와 ‘COLONIAL KOREA’를 계획서에 첨부했었다. [2]   2020년 1월 31일, 13명의 필진과 스텝이 힘을 모아 『ULC 0: 새로운 시작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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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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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호를-열며
유엘씨프레스 / ulcpress@naver.com     유엘씨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나? 이제 햇수로는 4년(2020~2023), 책수로는 10권(1·2·3·4·5·6·A·B·C·D)이 찬다. 통상적으로 2년과 3권이 고비라는 독립출판으로서는 나름대로 잘 버틴 셈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유엘씨는 이제부터 무엇을 할까? 유엘씨는 다양한 글을 그러모았던 1~3호, 동종의 글을 청탁해 받은 4~6호, 프로젝트 성과물에 해당하는 A~C호를 지나 열 번째 책인 D호를 출판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한 것을 살피고 앞으로 할 것을 가늠한다. ‘열’이라는 숫자를 기회 삼아 안팎으로 피드백을 청하고 시야를 넓힐 연장선과 징검다리를 놓는다. 회고와 점검의 차원에서 나아가 우리는 이 책을 ‘도시경관’이라는 주제와 ‘출판’이라는 행위 사이의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해 유엘씨 바깥에 펼쳐진 대지를 가늠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D호의 본문은 네 섹션으로 구성했다. 첫째, 'editors'에서는 편집진이 그동안의 성과를 짚고 책을 만들며 나누었던 안팎의 이야기를 돌아본다. 작업을 통해 이룬 것과 놓친 것을 스스로 짚음으로써 결과물 사이로 흘러나가는 생각을 붙잡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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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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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코로나,-그리고-3년
3 Years into Post-COVID19 Preparations 신명진 / mjin.shine@gmail.com 2019년 말, 코로나가 터졌다. 2022년 말,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한 지 약 3년이 흘렀다. 우리는 3년 동안 무엇을 준비했고, 어떤 것을 해왔는가? 지난 3년간의 기약 없는 준비는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이었을까?   ​ 이제는 더 이상 말하기도 지겨운 코로나19 팬데믹의 한 해가 또 다시 저 물어져 간다. 전세계적 위기상황으로부터 완벽히 벗어나기란 요원한 상황임에도, 카타르 월드컵의 양떼 같은 관중석과 연말연시를 축하하며 실내외 빼곡히 모여든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코로나 역시 한풀 꺾인 트렌드가 아닌가 싶다. 물론 공중보건적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 를 기준으로, 최근 몇 일 사이 일일 확진자가 7만여 명 언저리를 지키며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적 현황을 봐도 코로나가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그럼에도 우린 공공연하게 마스크를 벗기 소원하고 하루라도 빨리 ‘원상복귀’를 바라고 있다. (물론 공식적인 사회생활을 마스크 끼고 시작한 요즘 초등학생들은 마스크를 편하게 여긴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부분은 사회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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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14
  • 91
경관-시민참여의-어제와-오늘
박영석 / yareut@gmail.com   ​ 도시 오픈스페이스는 도시민이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건조 환경으로서, 이를 계획하고 조성하는 과정은 지역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이다. 오픈스페이스는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대중의 문화적 교류가 발생하는 어메니티 환경으로서 삶의 질을 높이는 대표적인 공공 공간이며,[1] 2020년 3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팬데믹이 발효된 이래, 인간의 안전하고 쾌적한 삶을 위한 중요한 공간으로 부상하고 있다.[2] 또한 오픈스페이스 조성은 지역의 경제·사회·문화·환경 분야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3] 지역 이해관계자들 간 공감대 형성 및 합의를 통한 절차적 합리성을 공고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공공의 재원을 이용하여 조성된 이후에는 도시기반시설로서 영구히 유지 관리되기에 공리주의 관점에서 최대 다수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이처럼 도시 오픈스페이스는 대중을 위해 물리적으로 건조된 공공 공간이지만, 이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욕망과 도시사회학적 가치를 바탕으로 직조되는 문화적 산물이기 때문에 시민참여라는 과정을 반드시 수반할 필요가 있다.   물리적 공간의 건설 관점에서 오픈스페이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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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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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의-환대,-유니버설-디자인
임한솔 / hsollim@hanmail.net     보이지 않는다는 것   “The very Korean.” 타국에서 만난 백인 여행자가 내게 했던 말이다. 우리말로 하면 ‘딱 한국사람’ 내지 ‘전형적 한국인’ 정도가 될까. 그 여행자는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의 여러 국가를 다녀본 경험이 있으니, 아마도 그 말에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아닌’이라는 뜻이 숨겨져 있었을 테다. 그는 나로부터 다른 아시아인이 아닌 한국인스러운, 한국인다운 무언가를 보고 꽤나 자신있게 그런 표현을 쓴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궁금하다. 과연 무엇일까. 내게 스며있고 묻어나는 한국이란. 무엇이 됐든 스스로 발견하기는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든다.   지난 9월 1일 열렸던 GUT 현장에서 미칼 자르제키(Michal Zarzeki)가 한국인 패널들에게 물었다. “호텔에서 이곳으로 오다 보니 외부공간이 장애인 친화적이지 않다고 느꼈어요. 휠체어를 타고 길을 건너는 사람도 못봤고요. 이런 상황을 혹시 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서 장애인이 거리에 잘 안보이는 건지, 장애인이 많지 않아서 문제가 되지 않는 건지 궁금하네요. 혹시 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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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14
  • 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