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쓰기의 시학


설계는 창작이다. 없던 것을 만들어 낸다. 거꾸로 말하면 설계가는 있던 것을 똑같이 반복하려 하지 않는다. 새로움의 시도로 설계를 비정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나아가 공공예술로서 조경의 특징과 가치를 탐구하는 실마리로서 첫 번째 세미나에서는 문학, 그중에서도 시에 주목한다. 현대 조경의 시초로 알려진 프레드릭 로우 옴스테드가 19세기 중반 센트럴파크를 만들었을 때, 동시대 뉴욕과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공유했던 시인 월트 휘트먼은 자연으로 도시 경관을 지워버리는 조경술에 크게 실망했다. 설계가와 시인이 바라보는 도시의 일상과 해법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픽춰레스크에서 벗어난 차세대 공원론이 휘트먼과 연동하는 지점은 시인의 관점이 선입견을 넘어 선견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 쓰기는 글을, 조경은 경관을 만든다는 점에서 둘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는 것 같지만 1970년대 이후 글과 경관은 ‘텍스트’라는 개념에서 유력한 접점을 맞는다. 이때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에서 경관은 ‘건축’으로 행동화되기보다 ‘쓰기’와 접속했을 때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데, 가령 조경을 ‘경관쓰기’라고 할만한 실천은 오랜 전통과 다양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 조경 행위에 깃든 문학성은 실천 너머의 가치로도 접근할 수 있다. 법을 집행하는 재판관에게 문학적 상상력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 개념은 조경가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내면의 표현을 독백에 머물게 하지 않고 공공성으로 잇는 시인의 윤리를 경관쓰기로 실현하는 자가 바로 조경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