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표현하기: 메모리얼
손은신 / esson@auri.re.kr
1. 들어가며: 기억 × 예술
제우스의 딸들이시여! 힘차게 부르오니, 우리에게 감미로운 노래를 선사하소서!
... 신들과 가이아가 태초에 어떻게 생겨났는지, 또한 강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면서 너울이 이는 망망대해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또 밝게 빛나는 별들과 그 별들 위의 하늘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려주소서!
또한 이들의 자식들이자 선을 베푸는 자들인 신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재산을 분배하고 직분과 명예를 서로에게 넘겨주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수많은 골짜기로 주름진 올륌포스 산을 처음에 어떻게 차지하게 되었는지 노래하소서!
올륌포스에 사는 무사이 여신들이여, 이런 것들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말씀해 주시고 최초에 그것들로부터 무엇이 생겼는지 말씀해주소서!
- 헤시오도스, 『신통기』, 무사이 여신들에 대한 찬가 중[1]
기억과 예술은 서로 어떤 관련이 있을까? 적어도 고대 그리스인들은 둘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계보를 정리한 『신통기(Theogony)』라는 책이 있다. 기원전 8세기 경 헤시오도스(Hesiodos)가 썼는데, 본래 양치는 목동이었던 그에게 아홉 명의 무사이(뮤즈, Muses) 여신이 나타나 시의 영감을 주고 신들의 이야기를 찬양하라고 명령하는 장면으로 신통기의 긴 서사시가 시작된다.
예술과 학문을 관장하는 무사이, 특히 뮤즈(Muses)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이 아홉명의 여신들은 『신통기』에 따르면 올림포스의 주신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Mnemosyne)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뮤즈가 시인과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예술의 여신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기억하는 학문의 여신이기도 한 이유다. 뮤즈 여신들은 태초에 신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바다와 강과 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모두 기억하기 때문에 헤시오도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고,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기억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각자의 머릿속에 저장된 경험과 학습의 기억은 말과 글로, 이야기로, 그림으로, 연극으로, 음악과 몸짓으로, 기념물과 건축물로, 도시 공간으로 바깥 세상에 꺼내지고 타인에게 전달된다. 우리는 각자의 기억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일에 익숙하다. 일기를 쓰거나, 모여 앉아 수다를 떨며 경험담을 나누는 사소한 일은 물론 각종 예술 활동에도 기억이 담긴다. 개인의 기억은 이렇게 표현되는 과정을 통해 타인에게 공유된다.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다른 사람도 알게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공유되는 영역이 점차 넓어지면서 많은 사람이 알게되면 이것이 집단 기억이 된다.
최근의 대중 매체와 전자 매체는 기억의 공유 범위와 속도를 넓히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신문과 뉴스를 통해 보도된 사건들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 심지어 SNS에 올린 나의 개인적인 글까지도 상황에 따라서는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집단 내에서, 혹은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기억을 공적 기억(public memory)이라 부르는데,[2] 공적 기억이 되는 기준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기억, 공유하는 기억이 되면 공적 기억 또는 사회적 기억이 되는 것이다.
2. 기억, 도시 공간에 표현되다
그렇다면 기억이 도시 공간에서는 어떻게 표현되는 것일까? 아마도 ‘기억 경관’이라는 주제로 지난 몇 년간 학위과정의 연구를 진행해오면서 많이 들었던 몇 가지 질문을 먼저 짚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 기억은 우리 누구나 각자 가지고 있는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것인데, 도시의 공공 공간에서 기억이라는 대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할까?
- 개인의 기억이 아니라 집단의 기억, 또는 공적 기억이나 사회적 기억 같은 것이 정말 실제로 존재하는가? 만약 존재한다고 해도, 어떤 방법으로 집단의 기억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경관에 표현할 수 있는 것인가?
모든 연구자의 연구가 그렇겠지만, 연구는 질문을 발판삼아 시작하고 성장한다.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해 나는 그렇다, 가능하다로 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특별한 방법론이 있다거나 집단 기억을 골라내고 도시 공간에 표현할 수 있는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해서가 아니라,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주변에는 추상적 기억이 물리적으로 표현되고, 표현된 기억에 여러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공감하는 현상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기억이 어떻게 해야 집단적인 기억이 될 수 있는지, 이 기억을 물리적으로 표현하려면 무엇을 고안해야 할지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현상을 이미 우리 주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이를 해석하려면 어떤 개념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틀이 기억(memory)이었던 셈이다.
우리 집, 학교, 직장, 단골 식당, 매일 들르는 카페처럼 삶의 공간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기억들이 녹아있지만, 이 글에서 살펴보려는 대상이자 직접적으로 기억을 재료로 만들어진 공간은 바로 메모리얼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는 무언가를 기념 또는 추모하는 공간이 꽤 많다. 학교나 공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위인의 동상, -주년과 같이 특별한 해를 기념하는 기념비나 표지석, 기념관 건물, 먼저 떠나간 가족과 친구를 기릴 수 있는 묘지나 납골당 등이 그렇다. 새해나 기념일에 정치인들이 많이 찾는 현충원처럼 기억을 통해 의지를 다지게 만드는 특별한 묘지도 있다. 국내에도 해외의 대표적인 메모리얼 사례가 많이 소개되었다. 나치에 학살된 유태인과 유럽인을 추모하는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Holocaust Memorial)이나 뉴욕의 9.11 메모리얼(9.11 Memorial)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도 최근 설계공모가 끝난 416 생명안전공원이나, 설계공모가 준비중인 효창공원 등 대규모 메모리얼의 조성이 진행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메모리얼을 조경과 예술의 접점에 있는 대상으로 생각하고 바라보고자 한다. 예술에서 본 메모리얼과 조경에서 본 메모리얼. 이 두 분야 사이의 접점에 놓인 메모리얼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키 중 하나는 기념비(monument)에서 공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메모리얼의 최근 동향 변화다.
3. 기념비에서 공간으로: 예술 × 메모리얼
최근 메모리얼은 대상 중심이었던 기념비에서 점차 공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여기서 기념비와 메모리얼은 각각 기념(celebration)과 추모(commemoration)의 기능으로 양분된다. 기념비란 통합되고 단일한, 공동의 이상 또는 가치를 상징하는 오브제다. 즉, 모두가 기념할 만한 대상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지는 조형물이 기념비(monument)인 것이다. 이에 비해 메모리얼은 애도와 추모의 기능이 더 강하고, 기념보다는 죽음이나 상실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조성된다.[3]
여러 선행 연구에서 이 두 개념을 구분하기 시작한 이유는, 오늘날 메모리얼이 과거 기념비의 성격과 다르며 혹은 달라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동상과 기념물, 표지석이나 비석과 같은 기념비(monument)의 성격에서 벗어난 메모리얼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연구에서 이 변화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는 철학적 또는 사상적 변화다. 현대에는 통합되고 단일한 가치를 상징하는 기념비, 그리고 기념비가 상징하는 기념비성이이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다수의 시민 혹은 대중이 함께 추모하는 기능의 메모리얼이 오히려 현대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기념비는 오직 통합된 의식과 문화가 존재하는 시대에서만 가능”[4]하다는 지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지난 약 80년의 기간동안 기념비는 절대적으로 통합된 국가의 의식이나 문화, 심지어 단일화된 역사도 존재하지 않고 점차 다양화되는 동시대의 변화에 미학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메모리얼에서 기능적 측면의 재구성이 일어났다.[5]
두 번째 변화는 형태의 변화로, 수직적으로 세워지는 기념물 혹은 기념비가 점차 수평적인 ‘공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조각상 마니아(statue mania)에서 메모리얼 마니아(memorial mania)로 변화하고 있다.[6] 이러한 변화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미술 사조의 변화, 특히 20세기 후반의 공공미술과 대지예술의 등장이 영향을 미쳤다. 미술관 밖으로 나와 도시 맥락속으로 들어간 공공미술은 대상으로서의 예술에 더 이상 주목하지 않았고, 미술 행위가 벌어지는 도시 공간에 주목했다. 장소 특정적 미술(Site-specific Art)과 같은 공공미술 실천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다.[7]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계 엘리트들은 조각상 중심의 기념물이 구식 예술이라는 권태감을 가지고 있었다.[8] 한편 이 시기 함께 대두된 대지예술(land art) 분야는 형태에서 탈피해 오브제보다는 대지의 맥락을 중시했고, 자연과 대지의 힘을 중요한 주제로 부각시켰다. 시공간 변화, 방문자의 활동과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장소성,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 유사한 숭고미 등이 메모리얼 공간에서 나타나는 대지예술의 특성이다.[9] 공공미술과 대지예술 분야의 전문가들은 도시 공간에서 공공 기념물을 만드는 주요 주체 중 하나였기 때문에, 메모리얼의 형태가 오브제에서 공간으로 점차 변화하는 양상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또한 공공미술과 대지예술은 메모리얼을 기억의 터로 구현하는 역할을 했다. 대부분의 경우 메모리얼이 만들어지기 전 실제 공간에 남아있는 관련 기억의 흔적은 별로 많지 않다. 참사나 재난의 실제 장소인 경우, 어떤 사건이 최근에 일어났고 그 흔적과 잔해가 아직 남아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메모리얼의 터에도 남아있는 기억의 흔적이란 별로 없다. 어떤 장소는 별다른 흔적 없이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를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정도인 경우도 많고, 아무 연관성이 없는데도 입지가 지니는 상징성 때문에 메모리얼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9.11 메모리얼이 실제 테러의 장소성과 연계되어 만들어졌다면,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터는 실제로 아우슈비츠 같은 박해 및 학살과는 관계가 없다. 안산의 416 생명안전공원에는 분향소가 있었고 단원고와 가깝다는, 말로 설명이 가능한 수준의 장소성이 있다면, 아직 계획 단계에 있는 효창공원은 본래 장소성과 관련 없이 독립운동가의 유해와 기념물이 안장되면서 공간의 특성이 만들어진 격이다.
[그림 1]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독일 베를린
(출처: usatoday.com)
[그림 2] 9.11 메모리얼, 미국 뉴욕
(출처: 911memorial.org)
[그림 3] 416 생명안전공원 공모 당선작, 안산
(출처:이손건축+기오헌+안팎+임여진+마크와시우타 컨소시엄(2021) 설계설명서, p.21)
[그림 4] 효창공원 계획안 조감도, 서울
(출처:hyochangpark.com)
흔적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공간에서 추상적 기억을 물리적으로 구현하고, 추모의 감정을 경험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상상력과 예술성이다. 기억이 가진 이야기를 공간에 구현하는 창조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서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이 2,711개의 물결치는 콘크리트 블록을 격자로 배치하면서 이름없이 죽어간 유태인과 유럽인의 무덤이라고 상정하고 그 사이를 걸어가며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구상했던 것을 짤막한 사례로 들 수 있다. 이외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작업하고 설계한 메모리얼에는 상상력과 예술성이 반영되어 있다. 예술은 상상력과 영감을 발판삼아 기억의 터를 만들어낸다.
4. 메모리얼, 치유와 일상의 공간으로: 조경 × 메모리얼
메모리얼이 조각상에서 공간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공간 설계를 담당하는 건축과 조경이 메모리얼의 영역에도 편입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대 메모리얼의 주요 사례로 꼽히는 워싱턴의 베트남 참전용사 메모리얼(Vietnam Veterans Memorial)이나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뉴욕의 9.11 메모리얼 모두 건축가와 조경가의 설계작이다. 공간에서 기억의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는 시퀀스를 만들어내고, 방문자가 기억을 경험하며 추모도 병행할 수 있는 공간 구조와 동선을 구성하는 데 강점을 지닌 전문가가 바로 건축가와 조경가다.
특히 조경가의 강점은 메모리얼 공원(park)에서 잘 나타난다. 자연은 메모리얼 공원에서 여러 의미를 가진 요소로 추모의 기능을 강화한다. 예컨대 2006년 9.11 메모리얼 공모전에서 최종 8개 안에 올랐던 설계안 중 하나인 ‘빛의 정원(Garden on Lights)’(피에르 데이비드Pierre David, 션 코리엘Sean Corriel, 제시카 크메토빅Jessica Kmetovic 설계)에서 자연은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요소로 설계되었는데, 메모리얼을 찾아와 애도하는 사람들이 자연의 변화를 보며 인간의 삶에 대해 고찰하고 위안과 안도의 감정을 형성할 수 있도록 이끈다.[10]
자연 요소는 희생자 또는 이들의 무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작년 8월, 이탈리아 건축가 안젤로 레나(Angelo Renna)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위해 밀라노의 산시로(San Siro) 축구 경기장을 개조한 ‘삶을 위한 기념비(Monumento per la Vita)’라는 이름의 추모 공간을 제안했다. 특히 경기장 지붕을 덮고 있는 철제 구조물을 제거하고 관중석에 35,000그루의 사이프러스 나무를 심은 설계안이 인상적인데, 35,000이라는 나무의 숫자는 이탈리아에서 당시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망한 사람의 수를 나타낸다. 사이프러스 나무는 이탈리아에서 묘지와 종교 공간에 사용되는 신성한 나무로 불멸, 그리고 죽음 이후의 삶을 상징한다고 한다.[11] 최근 416 생명안전공원 국제 설계경기에서도 최종 5개 안에 오른 설계안 중 리소건축+플로라앤파우나+서브디비전+권정현 컨소시엄 설계안에서는 한 그루의 노란색 은행나무를 한 명의 희생자에 각각 대응했다. 나무에 실제 단원고 희생자 250명의 이름을 각각 대치하는 방식인데, 추모공간을 채워나가는 나무 한 그루가 실제로 공원에 봉안되는 희생자에 직접 대응하도록 구성한 것이다. 어린 묘목 은행나무에는 성장하면서 기억이 담기고, 가을이 오면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세월호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도록 유도한다.[12]
[그림 5] 삶을 위한 기념비, 이탈리아 밀라노, 안젤로 레나 설계
(출처: World Architecture Community, “Angelo Renna proposes to transform Milan's San Siro stadium into a memorial for Covid-19 victims,” 2020.7.22. )
[그림 6] 416 생명안전공원 설계안 5등작 모델
(출처: 리소건축+플로라앤파우나+서브디비전+권정현 컨소시엄(2021) 416 생명안전공원 설계설명서)
자연 이외에 또다른 조경의 역할은 도시 공간 안에서 ‘일상성’과 관련된 부분이다. 예컨대 앞서 잠시 짚어본 안산 416 생명안전공원의 설계공모 지침서를 살펴보면, 공원에서 세월호 참사의 기억에만 치중하는 것을 지양하고 있다. 오히려 공간의 가장 주요한 기능은 공원의 일상과 참사에 대한 사회적 기억의 공존이었다.[13] 왜 이러한 일상과 기억의 공존이 필요한가? 이는 메모리얼 공원이 도시 공공 공간에 섞여 들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을 보내며 방문하는 공원에 봉안 시설이 어떻게 함께 놓일 수 있을까? 일상성은 도시 공공 공간에 만들어지는 메모리얼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20세기의 가장 끔찍한 기억이라 할 수 있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 희생자를 추모하는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서도 이러한 일상성이 있다. 메모리얼 내부로 걸어 들어가면 높아지는 콘크리트 블록 사이에서 하늘과 빛만이 보이고 바깥의 도시 풍경과 소리가 점차 사라져 홀로 있는 것과 같은 압도감과 추모의 감정을 경험하지만, 메모리얼 가장자리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편안하게 산책하는 사람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14] 심지어 유태인의 무덤을 상징한다고 하는 콘크리트 블록 위에 올라가는 어린 아이들도 있다!
[그림 7]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콘크리트 블록 위를 뛰어다니는 사람들
(출처: BBC, “Holocaust: How Should you behave at a Holocaust Memorial?” 2017.1.20.)
[그림 8]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콘크리트 블록 위에 앉아 쉬는 시민들
(출처: BBC, “Pink defends Holocaust memorial photo afther criticism” 2019.7.15.)
이처럼 추모 공간에 자연과 일상성이 결합된 메모리얼 공원은 치유의 역할을 한다. 이 치유의 방법은 ‘충분히 슬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죽음이나 상실을 마주했을 때, 충분한 아픔의 시간을 보내며 위로하는 애도(mourning)의 과정을 거치면 상실은 슬픔으로 남는다. 하지만 애도를 완수하지 못한 상실은 계속해서 열린 상처처럼 남아 트라우마까지도 일으킬 수 있는 멜랑콜리(melancholy)의 상태가 된다.[15] 인간은 멜랑콜리의 상태에 빠져 트라우마를 겪지 않도록 회복되기 위해 애도 과정을 완수해야 하지만, 메모리얼 공간의 특징은 인간과 조금 다르다. 메모리얼은 계속해서 기억의 파편을 간직하며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마치 회복되지 않은 상처 같이 상실을 계속해서 표현하는 멜랑콜리의 공간인데 반해, 이 공간을 방문한 사람들은 충분한 애도를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상실을 경험한 이들은 조금씩 애도의 시간을 보내며 상실의 상처를 조금씩 아물어가게 되고, 이를 경험하지 않은 이들이라 하더라도 공간의 경험을 통해 아픔의 기억을 함께 나눠가지며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5. 토론으로 나아가며
여러 메모리얼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기억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추모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다 보면, 마치 그 메모리얼이 해당 기억을 표현하는 적합한 해법인 것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각기 놓인 상황과 맥락, 배경과 이해 관계자가 다르기 떄문에, 어떤 유형의 기억은 어떤 메모리얼로 조성해야 한다는 공식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사회적으로 아무리 중요한 기억이라 하더라도 그 기억을 담은 공간을 조성하는 일은 전혀 쉽지 않으며, 오히려 메모리얼의 조성 과정이야말로 기억 논쟁이 많이 일어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서로 다른 이해 집단 간 논쟁이 벌어지고, 같은 기억을 공유하면서도 이에 대한 생각은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이 있다면, 이러한 기억의 갈등이 어느 정도는 메모리얼에서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결과물로 반영되어 표현된다는 점이다. 논쟁이 있었던 부분은 축소되거나, 변화하거나, 협의를 거쳐 타협점에 이른다. 기억에 특별한 사회적 의미가 부여되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의 기억에 ‘생명’과 ‘안전’이라는 가치가 부여된 416 생명안전공원이 그런 경우다. 이런 특징은 메모리얼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억과 관련된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갈등과 논쟁의 결과로 기억에는 어떤 의미가 부여되었고, 이 기억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었는가? 메모리얼은 물론, 기억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표현된 결과물을 접할 때 우리가 반드시 고민해보아야 할 지점이 여기에 있다. 기억은 합의되고 단일하게 통일된 역사와는 다르다. 삶을 살아가며 직접 부딪쳐 경험하는 각 주체가 가진 기억은 서로 공유되며, 영향을 주고 받아 변화한다. 이것이 바로 기억의 특별한 지점이다.
[1] 헤시오도스 저, 김원익 역(2003) 신통기: 그리스 신들의 계보, 민음사, p.25.
[2] Matthew Houdek and Kendall R. Phillips(2017), “Public Memory,” Oxford Research Encyclopedia of Communication, pp.1-2.
[3] Arthur Danto(1985) “The Vietnam Veterans Memorial,” The Nation 31, p.152; 문은미(2008) “현대 메모리얼의 개념 표현 특성에 관한 연구,” 기초조형학연구 9(6), p.200.
[4] Josep L. Sert, Fernand Leger and Sigfried Giedion(1968) “Nine Points on Monumentality,” Architecture Culture, (originally published 1943), p.29.
[5] James E. Young(2016) The Stage of Memory: Reflections on Memorial Art, Loss, and the Spaces Between, Amherst: University of Massachusetts Press, p.14.
[6] Erika Doss(2010) Memorial Mania: Public Feeling in America, Chicaho; Lond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7] Miwon Kwon(2002) One Place After Another: Site-specific Art and Locational Identity, Cambridge, Mass: MIT Press, 권미원 지음, 김인규ㆍ우정아ㆍ이영욱 옮김(2013) 장소 특정적 미술, 서울: 현실문화연구.
[8] Erika Doss(2010) Memorial Mania: Public Feeling in America, Chicaho; Lond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p.28-30.
[9] 임현진ㆍ이승민ㆍ김한배(2011) “현대 메모리얼의 대지예술적 특성 연구,” 한국조경학회 추계학술대회 논문집, p.23.
[10] James E. Young(2016) The Stage of Memory: Reflections on Memorial Art, Loss, and the Spaces Between, Amherst: University of Massachusetts Press, p.60.
[11] ArchiPanic, “Sansiro 2.0: Angelo Renna re-imagines Milan’s iconic stadium as a memorial to the victims of COVID-19,” 2020. 7. 18.
[12] 리소건축+플로라앤파우나+서브디비전+권정현 컨소시엄(2021) 416 생명안전공원 패널 및 설계설명서.
[13]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416안산시민연대(2019) 416 생명안전공원 국제설계공모 시민 지침서.
[14] 백종옥(2018)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도시의 풍경에 스며든 10가지 기념조형물, 서울: 반비, pp.69-70.
[15] 이러한 애도와 멜랑콜리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프로이트의 이론인데, 프로이트가 현대 멜랑콜리론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음을 고려해볼 때 매우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Sigmund Freud(1917) "Trauer und Melancholie" [Mourning and Melancholia]. Internationale Zeitschrift für Ärztliche Psychoanalyse [International Journal for Medical Psychoanalysis] (in German). Leipzig and Vienna: Hugo Heller 4(6), pp.288–301 [Retrieved August 12,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