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 표현하기: 메모리얼 >에 대한 토론문 #1
권영란 /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원
들어가며
20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후세에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1] 그 결과 ‘무형의 기억’을 ‘유형의 유산’의 형태로 변형하여 상속하는 것이 공동체 기억(Collective Memory)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2] 비슷한 시기 아유슈비츠 비르케나우(Auschwitz Birkenau)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최근 건축공간연구원에서 수행한 “네거티브 헤리티지 보전·활용을 위한 의사결정체계 기초 연구(2021)”에서는 네거티브 헤리티지가 비교적 가까운 시대에 만들어졌으며, 해당 유산과 관련된 사건을 기억하는 당사자와 이해 관계자가 동시대에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하지만, 네거티브 헤리티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해당 유산과 관련된 사건’과 ‘사건에 대한 대중들의 기억’이라는 점은 유산을 둘러싼 이해 관계자들의 국가, 성별, 종교 또는 정치적 견해 등에 따라 네거티브 헤리티지, 또는 일반적인 문화유산으로 유산의 성격이 결정된다는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23개 중 하나인 군함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일부에게는 산업화를 대표하는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일 수 있으나, 많은 사람들에게 강제 노역과 수많은 희생자에 대한 불편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네거티브 헤리티지 가치판단의 복잡성은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 ‘부정적인 역사적 기억을 어떻게 후세에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귀결된다. 이번 토론에서는 부정적인 기억이 유산의 형태로 재구성될 때, 특히 메모리얼이라는 방법론으로 가시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여러 사회적 이슈들을 사례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새로운 유형의 모뉴먼트, 斷罪碑
메모리얼이 기념비(monument)에서 공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발제자의 의견에 충분히 공감한다. 더불어 최근 기념비의 역할을 절단하는 단죄비가 늘어나는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3년 정선 친일파 이범익(전 강원도지사)의 공적비(功績碑) 옆에 단죄비가 세워진 것을 시작으로, 전주 덕진공원에 설치된 김해강 시비(詩碑), 친일파 박준금이 운영한 화암동굴(舊 천포금광), 광주 이근호 선정비(善政碑), 윤웅렬 공적비, 홍난유 비석 전면에 이들의 친일 행적을 밝히는 단죄비가 세워져 있다. 심지어 친일파 김백일의 동상 옆에는 동상과 같은 높이인 3m의 단죄비를 세워 상징성을 더했다.
단죄비 건립은 기념비를 세워 공덕을 기리기 충분했던 인물에 대한 평가가 현재 시점에서 전복된 것을 의미한다. 다만 주목할 점은 이들의 기념비를 단순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적을 기념하는 대상물과 그들의 죄를 묻기 위한 단죄비를 병치시켰다는 점이다. 과거에 세워진 기념비와 나란히 세워진, 동일한 인물의 죄를 묻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은 것을 기념하기 위한, 또 다른 형태의 기념비는 이들의 친일 행적을 더욱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행동으로 후세에 전달한다.
최근에는 동상, 비석과 같은 기념물뿐만 아니라 특정 장소에 단죄비를 설치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올해 초 목포문화연대는 구 목포 일본영사관(사적 제289호),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전남도 기념물 제174호)에 단죄비 설치를 추진하였으나, 문화재청과 전라남도에서 이를 불허한 바 있다. 지난달 광주에서는 광복절을 기념하여 전남방직의 전신인 가네보 방적의 노동 수탈과 김용주의 친일반민족행위를 적시한 단죄비를 세운 사례도 있다.
단죄비 건립 사례는 부정적인 역사적 사건과 밀접하게 관련된 대상물이나 공간이 기념비적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경우, 다시 말해 ‘유산’으로서 지위를 부여받게 되는 경우 해당 유산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이를 후세에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다만 메모리얼의 형태가 수직적인 기념비에서 수평적인 공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듯이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과거의 죄를 반성하는 표현방식 또한, 단죄비의 형태가 가장 이상적인 방법인지에 대한 문제는 앞으로 고민해보아야 할 과제일 것이다.
네거티브 건축유산, 메모리얼로 활용하기
등록문화재 제도의 도입은 문화재를 동결보존의 대상이 아닌 보전과 활용의 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특히 근대문화유산의 다양한 보전·활용 사례는 도시의 중요한 역사문화자원이자 관광자원으로 소개되기도 하지만, 논란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네거티브 건축유산을 메모리얼로 보전·활용하는 경우 중요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찾아보자.
첫 번째 사례는 제주 이승만 별장이다. 1958년 건립된 이 별장은 2004년 국가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문화재 등록 이후 수년간 방치되어온 별장을 정비·활용하기 위해 2010년 제주시는 ‘제주 이승만 별장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였으며, 다음 해 별장 소유주인 ㈜제주축산개발과 ‘이승만 기념관’으로 활용하는 것을 협의하였다. 이후 제주시는 “이승만 별장은 제주에서 유일한 국가원수 관련 건축물로서, 현재 방치된 건물을 정비하여 역사문화탐방지로 활용하고자 한다.”[3]고 발표하였다. 별장 재정비 용역을 바탕으로 별장 보수·보강 및 기반시설 정비 예산 10억 원, 기념관 조성 및 기반시설 정비 예산 10억 원의 사업비 투입을 계획하였다. 하지만, 이승만 기념관 건립에 대한 제주 4·3 유족과 유관 단체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4·3학살의 책임자인 당시 최고 권력자이기 때문에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는 것은 희생자와 유족에게 또 한 번의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이다”[4]라는 입장을 발표하였고, 도민 정서에 어긋나는 기념관 건립 사업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였다. 그 결과 사업 추진의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 이승만 기념관 건립 사업은 추진 실패에 머무르게 되었다.
두 번째 사례는 과거 정권의 고문 시설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보전·활용한 민주인권기념관이다. 민주인권기념관은 한국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 민주주의의 성취를 위해 희생한 희생자들을 기리며, 국가 폭력의 역사를 기억하고, 민주주의 연구와 교육을 위해 건립되었다.[5] 민주인권기념관의 특징은 과거 독재정권의 청산과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동시에, 민주화운동 정신을 후세에 계승하는 장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또 다른 특징은 민주화에 대한 탄압과 인권 유린의 상징적인 장소였던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기억과 역사적 사실에 반대되는 보편적인 가치 개념으로 치환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남영동 대공분실은 역사적 비극과 불편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이지만, 이 사실을 미래 후손들에게 전달하는 매체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유산으로서 가치 또한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6]
두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네거티브 헤리티지를 보전·활용하기 위한 첫 단계가 해당 유산과 관련된 이해 당사자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민주인권기념관의 경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을 ‘민주인권교육센터’로 활용할 수 있도록 활용계획을 건물의 소유주인 경찰청에 제안하였지만, 제주 이승만 별장은 제주시에서 주도하였기 때문에 4·3사건 당사자로부터 사업 추진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시사점은 네거티브 헤리티지가 메모리얼로 활용되는 경우 무엇을 기념하고 누구를 추모할 것인지에 대한 메모리얼의 대상과 평가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승만 별장은 명칭 그대로 국가 원수를 기념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지만, 舊남영동 대공분실은 과거 정권의 폭력성을 드러내고,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인물을 기리는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나아가 민주인권기념관은 민주와 인권 양자의 개념을 결합하여 기존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에서 다룰 수 없었던, 민간인 간첩 조작사건, 형제복지원, 삼청교육대 등 또 다른 국가 폭력의 사건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유관 사업에 연관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계기를 만들었다.[7]
마치며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부정적인 역사적 기억이 유산의 형태로 보전되는 과정에 앞서, 역사적 사건에 직면하고 이를 해결, 동시대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과정이 분명히 필요하다는 점이다. 단죄비를 세우기에 앞서, 친일인사를 조사하고, 친일잔재를 구분하는 일. 남영동 대공분실에 일어났던 참혹한 사건들을 파헤치고, 과거를 반성하는 일. 후세에 전해줄 메시지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발굴하는 일처럼 말이다.
[1] Huyssen, Andreas. 1995. Twilight memories : marking time in a culture of amnesia. Routledge.
[2] 이현경. 2020. 과정으로서의 유산과 그 유산의 해석. 「세계유산의 새로운 해석과 전망」. (사)이코모스 한국위원회.
[3] 경향신문. 이승만 별장 관광자원화. 2010년 5월 2일자.
[4] 뉴시스. 이승만 기념관 건립 ‘논란’…4·3단체 “납득 못해”. 2011년 3월 2일자.
[5] 민주인권기념관 홈페이지(https://dhrm.or.kr/) 및 6·10민주항쟁 31주년 대통령 기념사 참고.
[6] 권영란·염철호. 2021. 네거티브 헤리티지 보전·활용을 위한 의사결정체계 기초 연구. 건축공간연구원.
[7] 이영제. 2019,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건립과 의의. 「민주주의의 이슈와 전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억 표현하기: 메모리얼〉에 대한 토론문 #2
기억, 시간, 마주침
양근애 / 연극평론가,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기억과 역사의 길항
‘기억’은 과거를 소재지로 하지만 지금-여기의 맥락 위에서 소환되는 회상의 기제라는 점에서 현재와 연결되어 있다. 또한 기억의 주체는 개인이지만 기억의 사회적 용법은 집단적 성격을 띤다. 개인의 기억이 사회적 틀(social framework)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1] Halbwachs는 역사가 진실을 담아내지 못할 때 개인의 기억이 사회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보고 역사의 한계를 사유할 수 있는 저항적 기억으로서 ‘집단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므네모시네의 딸이면서 역사의 여신인 클리오(Clio)가 ‘서술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은 의미심장하다. 역사는 ‘어떤 과거를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기억 표현하기: 메모리얼」은 메모리얼을 조경과 예술의 접점에 있는 대상으로 놓고 도시 공간에 표현되는 기억의 의미를 살피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역사와 길항하는 집단기억과 ‘문화적 기억’[2] 그리고 기억의 주체로서 서술자의 위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기억이야말로 사회적이며 문화적이기 때문이다.
역사 서술이 역사가라는 서술자의 권위와 그의 시좌(視座)에 의존한다면, 메모리얼은 설계자가 후경화 되고 유형화 된 공간이 가시화 된다. 「기억 표현하기: 메모리얼」는 기념비에서 공간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메모리얼의 최근 동향을 짚어내고 있다. 기념비라는 오브제가 아니라 체험 공간으로서의 메모리얼은 방문자의 개별적인 경험이 재구성되는 기억이 된다는 점에서 역사와 다르다. 역사는 기억의 죽음을 전제로 서술된다. ‘사건’의 역사화를 경계하고 문화적 기억으로 지속시키는 일은 추상적인 역사 바깥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경험의 주체를 사유할 틈을 열어준다. 그러나 메모리얼 역시 기억과 망각의 전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상기해볼 때, 최근 메모리얼은 역사/역사학을 어떻게 성찰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포스트메모리’ 세대와 시간
Assmann은 기억을 역사적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경험적 기억’과 추모 공간, 기념과 의례, 예술, 사료 등 매체를 통해 얻은 정보나 이미지에 의한 기억을 ‘문화적 기억’으로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경험적 기억은 역사적 기억이기 때문에 비활성적인 저장기억이지만, 문화적 기억은 기능기억이자 활성적 기억으로 세대를 이어 학습된다. 역사적 기억이 현재와 미래로부터 과거를 분리한다면, 문화적 기억은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는다. 문화적 기억은 의식화된 표현과 시대 정신을 통해 변화된다.
상술하였듯 기억은 역사와 상보적인 관계이며 서로를 지탱시킨다. 가령, 5.18은 역사이면서 문화적 기억이다. 홀로코스트 연구자인 Marianne Hirsch는 역사적 사건을 경험하지 않은 ‘이후 세대’의 기억을 ‘포스트메모리’[3]로 불렀다. ‘포스트메모리’ 세대에게 5.18은 역사로 학습되고 경험 세대의 트라우마에 의해 추체험되는 기억이다. 「기억 표현하기: 메모리얼」이 촉발시킨 공간에 대한 사유는 ‘시간’의 문제와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 역사화 된 과거와 현재 진행형인 과거는 어떻게 다르게 기억되는가, 혹은 메모리얼은 시간성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경유했을 때 찾아지는 길이 있을 것이다. 상상적으로 만들어진 기억의 공간에서 과거의 사건은 시간적 거리두기에 의해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문자에게 허여된 시간은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 ‘일상과 기억의 공존’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대목은 현재의 일상 속에 기입된 과거의 시간, 그리고 함께 살아갈 미래의 시간에 대한 사유이기도 하다. 세월호를 기억하겠다는 말은, 세월호를 과거의 시간이 아니라 현재 속에 들여놓고 그 사건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의지와 행동의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감정과 정동의 융기와 공동체의 상상
메모리얼 공간에서 우리는 과거와 ‘연루’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피식민의 경험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전쟁과 사회적 재난으로 이어지는 역사는 현재를 사는 개인과 무관하지 않다. 메모리얼이 제공하는 ‘체험’은 ‘연루’되었다는 감각을 통해 감정을 유발시킨다. Martha Nussbaum은 감정이 동물적 에너지나 충동이 아니라 ‘상념의 지형학적 융기’라는 점을 간파한다. 그에 따르면, 감정이란 소중함/가치의 지각에 대한 지적 반응이다.[4]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건이지만 문화적 기억은 개인적인 체험 속에서 재구성 되며 전승된다. 이 과정에서 감정의 영역을 넘어 무의식과 잠재성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정동(affect)의 ‘항해운동’[5]을 상상해보아도 좋을 것이다. 특정한 공간에서 특정한 상황에 직면하여 지각되는 감정의 ‘강렬도’는 돌이킬 수 없는 ‘마주침’으로 다시 사건을 발생시킬 힘을 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기억 표현하기: 메모리얼」은 우리가 기억과 망각의 끊임없는 전쟁 속에서 과거를 기억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 메모리얼은 일상 속에서, 또 자연과 더불어 그러한 욕망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를 질문한다. 무엇을 기념하고 추모하고 기억할 것인가와 그에 따른 결과물은 종종 공공적이며 정치적인 판단 앞에서 심문 받는다. 상처와 수치를 기록하고 상실과 고통을 재현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일까. 감정의 연대와 공감의 정치를 강조한 사유들을 통해 메모리얼의 시공간적 상상력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1] M. Halbwachs, The Collective Memory, Haper&Row Publishers, 1980, pp. 22~40.
[2] 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채연숙 역, 『기억의 공간』, 그린비, 2012.
[3] Marianne Hirsch, The Generation of Postmemory: Writing and Visual Culture After the Holocaust, Columbia University Press: New York, 2012.
[4] 마사 누스바움, 조형준 역, 『감정의 격동』, 새물결, 2015.
[5] 브라이언 마수미, 조성훈 역,『정동정치』, 갈무리,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