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 함께 실천하기 >에 대한 토론문 #1
규칙과 위반의 기획, 그리고 놀이 워크숍의 공간화
문정석 / 로컬프로젝트건축사사무소 소장
예술적 상호 작용을 통한 공공공간 조성의 시도들
예술적 상호작용. 이 풍부한 추상으로 가득한 말을 ‘인간이 지각하는 세계와 인간 사이의 상호 역동성과 그 표현’정도의 설명으로 다소나마 구상적 세계로 가져와본다면,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를 거쳐 표출되는 의미를 가진 행동 또한 해당 범주 안에 넉넉히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전제 아래, 사건과 행위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통해 공간을 언어적 특성으로 이해하고 그 구축성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현대건축의 기류 안에서 파리 라빌레뜨 공원의 설계자로 알려진 베르나르 츄미(Bernard Tschumi)가 그의 책 ‘건축과 해체(Architecture and Disjunction)’에서 ‘행위가 없다면 건축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벤트와 프로그램이 없다면 건축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공간과 함께 실천, 경험, 감각과 상호작용 등에 관심을 둔 이런 접근은 흥미 있고 지적인 아이디어의 원천이기도 하다. 역사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 의해서도 모종의 전략의도를 가진 실천적 행동이 일상을 전복하기위한 방법으로 제시되었는데, 그는 ‘발화행위로서의 걷기’를 기존의 도시질서를 뒤집는 새로운 텍스트로서의 가능성으로 보았다. 사실, 다분히 추상적 개념에 가까운 이런 아이디어가 실제로 실천가능한 수준으로 도구화 되어 프로젝트로 전환된 사례들은 도시계획 및 디자인 분야에서 라울 분쇼텐(Raoul Bunschoten)의 도시 디자인 팀인 ‘Chora’가 ‘Urban Flotsam’등의 출판물을 통해 제시한 ‘사람들의 행위와 사건들에 의한 역동적 모델링의 가능성(EOTM process)’에서 구체적 방식과 프로젝트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시도들을 소개함으로써 놀이, 예술적 상호 작용을 포함한 공간적 실천을 통해 새로운 공간의 가능성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이 단지 특이한 억지나 연결논리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형식화된 세계 안에서 전복의 효과적 전략이자 도구로 여전히 유효하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mom편한 놀이터’프로젝트의 가능성과 한계
mom편한 놀이터 프로젝트는 아이들과 대상공간에서 예술적 놀이를 진행하고(놀이 워크숍) 그 관찰의 결과를 역동적 모델링의 과정을 통해 개념화하여 놀이터 계획에 반영하는 프로젝트이다. 놀이의 행동방식은 참여자들 사이에 합의된 규칙을 통해 구성되지만, 각자 역할과 공간상황, 관계 맥락 등의 변수에 의해 매번 규칙에서 벗어난 행위가 발생하며 이를 통해 비로소 놀이의 유희가 완성된다. 이 과정에서 관찰자는 놀이 워크숍 참여자들의 역할 수행을 통한 연극적 행동, 규칙에 따른 행동과 위반, 전략적/본능적 판단을 통한 공간활용과 상호작용 등을 분석하여 공간을 입체적으로 매핑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공간적 실천의 기획과 실행을 통해 기존의 공간 만들기 담론에서 배제되어온 것들을 발견하고 이를 공간을 덮고 있는 또 하나의 켜와 피부로 구체화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해당 프로젝트는 예산과 시간이 명확히 규정된 실제 사업으로서 가능성과 한계 또한 상당부분 이런 사업적 한계에 기인하는데, 실제로 놀이 워크숍에 대한 관찰, 재해석, 공간화 과정이 실제 구축의 과정과 성글게 연결되어 논리적 인과관계가 잘 보이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다만, 사업적 한계에 대해 구체적인 문제점을 논하는 것은 다소 소모적이어서, 여전히 이런 방식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더 다양한 기획과 실천을 통해 지평의 확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공공 공간 조성에서 예술적 기획과 활동의 가치
‘관계의 디자인’은 갈등과 충돌을 없애지 않고 공적공간으로 불러내 당사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 그런 방식을 통해 합의된 디자인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합의를 얻기 위해 1차적으로 이해관계의 직접 주고받기(trade-off)를 시도할 수 있지만 이런 산술적 방식은 이해관계자들의 직접 충돌과 갈등을 매개할 장치의 부재로 인해 종종 관계나 합의의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만약 상황극과 같은 워크숍이 가능하다면 극의 예술적 장치, 매개적 관계형성을 통해 참여자가 개인적 이해관계를 넘어 의도된 특정 상황에 동참하는 방식으로 기존 trade-off방식의 소모적 한계를 뛰어넘어 공공의 감정과 이해를 구축하는데 유효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프로젝트에서 시도한 놀이 워크숍과 공간화를 통한 ‘놀이로서 관계의 디자인’ 만들기 역시 아이들과 진행자 사이에서 역할의 참여에 따른 공통의 감정 – 예술적 상황에 동참하고 있다는 연대의식, 공간의 집단적 또는 개별적 이해와 활용, 규칙과 위반을 통한 놀이의 역동성 만들기 -이 없었다면 구축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참고자료
Architecture and Disjunction: Bernard Tschumi, 1996, MIT Press
Urban Flotsam: Raoul Bunschoten/Chora, 2010, 010 Publishers
〈도시, 함께 실천하기〉에 대한 토론문 #2
놀이가 창조하는 공간성
송재영 / 극단 조각바람 프로젝트 대표
놀이의 유상성(有償性)
놀이는 어떤 대가나 보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종일 그네를 타고, 철봉에 매달리고, 놀이기구 위에서 머문 시간 동안 놀이의 행위자인 ‘나’는 무엇을 만들어냈을까. 그런 것은 없다. 그저 내 몸은 지치고 옷은 처음 놀이를 시작했을 때와 달리 더러워졌고 신발도 닳게 되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놀이는 ‘노동’에 비하면 쓸모없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런데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정해진 기간 안에 공공 공간을 변화시켜야 하는 과업에서 ‘놀이’가 중심이 되는 워크숍으로 공간을 새롭게 조망한다는 계획은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
카이와(Caillois)는 놀이의 무상성(無償性)이 놀이가 갖고 있는 본래의 가치를 가장 많이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1] 위처럼 행위를 통해 어떤 것을 만들어 내거나 도출해야 한다는 결과 중심적 관점과 사고는 놀이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네를 추진하기 위해 다양하게 분산하는 힘과 균형, 철봉에 매달리는 동안 발생하는 몸의 지속성과 끈기, 기구 위에서 내려다보는 새로운 시선과 발견은 수많은 상징과 은유를 만들어낸다. 이를 이해하는 세 명의 연극놀이 리더(이하 리더)[2]는 놀이터라는 공공 공간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였고, 이들은 공간의 주사용자가 어린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두었다.
무엇보다 리더들은 어린이들이 놀이의 전문가라는 점을 바탕에 두고 다양한 놀이의 속성 가운데 행위의 예술성에 주목했다. 몸을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감각적 상태, 행동하면서 발견되는 사고의 지점, 활동이 끝나고 느꼈던 경험을 공유하는 대화의 과정을 순환하면서 과정 자체에 주목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실행하였다. 전체의 과정에서 워크숍에 참여하는 어린이들은 놀이 안에서 자유롭게 공간을 탐색하고 재인식하며 공간이 품은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였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공간을 해석해보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놀이터를 창조하며 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었다. 다시 질문해보자, 진정 놀이는 어떤 대가나 보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할 수 있는가.
해체, 재구성, 창조
‘mom편한 놀이터’ 프로젝트는 리더들에게도 도전 그 자체였다. 실제 답사를 통해 살펴본 놀이터의 모습이 처참했기 때문이다. 최초 공간을 설계하는 과정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아이들이 노는 곳 옆에 놓인 벤치에서 흡연을 하는 모습, 널브러진 술병과 쓰레기들이 방치된 모습을 그리진 않았을 것이다. 놀이터라는 공간은 주된 사용자가 어린이라고 생각하지만 말 그대로 공공 공간이기에 유아, 청소년, 노인 등 다양한 연령층이 각자의 목표와 욕구에 맞게 공간을 쓰고 있었다. 리더들은 놀이터를 최초 설계했을 때를 상상하며 현재의 위치, 주변의 환경, 이용자들의 행태를 사전 답사를 통해 면밀히 살펴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참여자들과 놀이터를 새롭게 구성하기 위한 방법과 디자인들을 고안하기 위해 놀이터의 다양한 공간을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대상지마다 새롭게 계획하고 실행하였다. 이는 필수적이었는데 놀이터 마다 구조와 형태가 다르게 자리 잡고 있었고, 대상 놀이터들마다 독특하고 고유한 주변 환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인식은 현재의 놀이터를 해체하고 재구성을 통한 창조의 방식이 주가 되는 프로그램의 뼈대를 만들어주었다. 프로그램 안에서 참여자들은 기존의 잘 알고 있는 놀이에서부터 공간 중심의 새로운 놀이를 경험하면서 워크숍이 거듭될수록 놀이터를 새롭게 재탄생시켰다. 놀이가 끝나고 본격적인 놀이터 디자인 과정에서 기존 놀이기구나 조합놀이대 외에 벤치, 나무, 수도꼭지, 조형물 등을 재배치하고, 짚라인, 수족관, 끝도 없이 계속되는 미끄럼틀, 와이파이존, 쓰레기통의 필요성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것들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참여한 어린이들은 하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함께 놀면서 끝없이 상상하고 실험하며 계속해서 놀이터를 변모시켰다. 마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최선의 아이디어를 찾아 의견을 끝없이 덧대는 예술가의 모습이었다.
한계, 그 너머에
유감스럽게도 사업 진행 당시 기획자와 연구자들이 주최 측에 여러 차례 제안한 바처럼 대상지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이들이 실제 설계와 시공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유의미하다고 보았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이는 참여형 워크숍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맹점을 잘 보여준다. ‘설계자’와 ‘실행자’의 분리는 유기적 연계과정을 증발시켰고, 어린이들의 목소리는 놀이터의 신설계 또는 재설계에서 유리되고 말았다. 때문에 우리가 강조했던 ‘과정’이 사업에 유관된 각자의 필요에 의해 방치되면서 놀이를 통해 공간을 새롭게 창조하려 했던 시도는 한계가 정해지고, 참여한 어린이들은 창조자에서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는 공간 조성을 위한 참여형 워크숍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뚜렷한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계라는 벽은 그 너머를 엿보게 한다. 실패가 다음을 준비하게 하게 하듯 놀이워크숍은 마른 사막에 첫 물줄기를 대는 작업이었다. ‘놀이’의 예술성은 공간을 새롭게 조망하게 하는 가능성으로 점철되어 있다. 놀이가 하나의 예술이라고 할 때, 놀이를 통해 무엇을 살펴보고 싶은 지, 놀이 속에서 어떤 도전과 실험을 이어가고자 하는 지, 놀이가 갖고 있는 예술적 측면이 현실에 뿌리내리도록 어떤 노력이 필요한 지를 살펴보는 것이 다음에 이어질 예술이 결합된 참여형 워크숍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mom편한 놀이터’ 프로그램에서 실제 어린이 작가가 놀이터를 디자인했다면 어떤 모습의 공간이 탄생되었을까. 놀이터를 시공하는 과정에 어린이 자문단이 참여했다면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기도 한다.
놀이와 조경이 예술성이라고 하는 공통의 분모를 바탕에 두고 시작한 작업은 무모했지만 용감했고, 실험적이면서도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는 점은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첫걸음을 응원할 필요가 있다. 첫 걸음은 그 다음 걸음을 예견하게 하기 때문이다.
[1] 로제 카이와(Roger Caillois), 『놀이와 인간』, 문예출판사(1994), 10쪽.
[2] ‘연극적 놀이(Dramatic Play)’를 중심으로 연극놀이의 참여자들을 공동의 연극 세계로 안내하고, 함께 창조하는 역할을 하는 예술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