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2021년 8월 11일, 오후 7시~9시
- 장소: 노들섬 식물도, ZOOM
- 발제: 신명진
- 토론: 김정화, 김창재
- 지원: 임한솔, 김수인
- 기록: 박정은
1부
신명진 < 도시 조각하기 > 발제. 클릭하면 발제문으로 이동
신명진 네. 어떻게 들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의 이야기보다도 사실은 오늘 토론자 두 분의 이야기를 너무 기대하고 있어서 서둘러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 선생님께서 준비해 오신 토론을 한 분씩 진행해 주실 건데요. 먼저 줌으로 접속해주고 계신 김정화 박사님께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정화 네. 먼저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베를린에서 심심하게 살고 있었는데 다이내믹하게 돌아가고 있는 한국에서, 또 재미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특히 이 두 번째 세미나에 참여하게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주제가 조경×조각이었는데 처음에는 초대에 저를 불러주시는 것은 환영이니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답변을 드리긴 했는데 발제문을 받고서는 아차 싶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신명진씨께서 잘 정리해 주셨고, 너무 재미있는 주제들이, 많은 얘기들이 담겨 있는데 과연 이 공공예술과, 특히 조경에서 바라보는 공공예술에 대해서 과연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좀 고민이 많이 됐던 건 사실이거든요. 혹시 제가 막스플랑크 예술사 연구소에 있어서 불러주셨나 생각을 해봤는데, 사실 이곳이 예술사 연구소이기는 하지만 제가 하는 연구가 조금 결이 다른 곳이라 그러시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마침 제가 베를린에서 거주한 지 5개월 차, 6개월 차에 접어들고 있는데 그나마 세미나 자리에 참여하면서 할 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지금 베를린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말씀을 드리는 토론 내용들은 상당히 자기중심적이고 사변적이고 경험적인 그런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토론문 작성한 것을 바탕으로 말씀을 드릴 건데, 여러분께서 대부분 다 서울에 계실 것이고 베를린에 와보신 분도 계시겠지만, 제가 몇 가지 사례로 말씀드리는 것을 직접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미지 몇 컷을 준비해왔습니다.
오늘 토론의 타이틀은 베를린에서 본 도시 조각하기입니다. 먼저 발제자께서 처음부터 명쾌하게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주셨어요. 솔 르윗(Sol Lewitt) 그리고 로리 올린(Laurie Olin)이라는 예술가와 조경가의 협업 사례를 통해서 발제자는 공공예술을 대상이 아니라 행위로 이해를 하고 있고 또 공공예술과 조경의 공통분모를 참여에서 찾고 있습니다. 또 참여의 가치는 상상력 촉발 또는 과정으로서의 가능성이라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발제자의 의견에 굉장히 동의하면서 저는 발제자가 특히 두 가지 키워드 ‘참여’, ‘과정’이라는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의 토론 그리고 이어지는 김창재 작가님의 토론 그리고 세미나에 함께하고 계시는 여러분께서 이 참여와 과정과 그리고 조경과 공공 예술의 어떤 접점에 대해서 앞으로 더 풍성한 논의를 이어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발제자의 발제문이 어떤 완결성을 갖기보다 많은 이야깃거리를 생산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는 이것을 바탕으로 몇 가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크게 세 가지 이야기를 할 건데요. 우선 첫 번째는 발제자가 중간에 얘기했었던, 공공예술의 장소적 가치를 논의하기 위해서 얘기했었던 정원이 있는데, 저는 특히 이 정원과 도시에서의 공공예술을 구분하면서 발제자가 강조하고 있는 참여나 과정으로서의 가능성은 정원보다는 도시에서 더 크다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는 지난 5개월간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 마주했었던 공공예술 사례를 통해서 발제자가 제안했었던 참여라는 문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와 그 가능성을 사례를 가지고 풀어보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오늘 주제의 시의성에 대한 질문과 함께, 공공예술이 사실 완전히 새로운 소재는 아니잖아요. 이것을 지금 오늘날 2021년 조경이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 이 시의성을 모색하려고 합니다.
먼저 첫 번째로 정원과 도시를 구별해 보겠습니다. 저는 이 정원 앞에 형용사를 극장으로서의 정원이라고 붙였고 도시 앞에 형용사를 붙여서 장소로서의 도시라고 해보았습니다. 발제자가 아까 조경과 공공예술의 접점을 쉬운 출발점으로 정원, 특히 픽처레스크 정원이나 센트럴 파크를 잠깐 언급했는데, 여기서 발제자는 정원 속에 있는 조각품이 주변 환경과 맞물릴 때 직업군이 가진 상상력을 촉발한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경관과 조각이 소통해야 한다는 얘기를 했죠. 그런데 이 부분은 동의합니다만, 오늘의 주제에서는 우리가 좀 더 정원보다는 도시에 집중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과연 정원이 발제자가 주장하는 공공예술의 가치. 즉 참여의 가능성을 내포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서 조경사학자 존 딕슨 헌트(John Dixon Hunt)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많은 정원, 특히 픽처레스크 정원은 상징이나 알레고리가 가득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경 책에서 한 꼭지를 극장이라는 단어를 붙이면서 서술을 하고 있는데, 그의 연구에 따르면 조각은 조각이 퍼포먼스 수행자이고 경관은 이를 뒷받침하는 무대이거나 재연 장치였던 거죠. 바꿔 말하면, 픽처레스크 정원 속에 있는 알레고리로 존재하는 고대 신화 속의 인물상 앞에서 사람은 관람자에 불과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행위자는 조각이고 우리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것인데요, 만약 참여를 강조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공공예술에서 참여의 기회를 열어두고 있는 곳은 우리의 정체성이나 생활이 얽혀 있는, 곧 우리 삶의 터전, 그리고 내 공동체의 기억이 집적된 공간인 바로 도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원이 아닌 내가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서야말로 내가 주체적인 참여자로 존재할 수 있고, 또한 이것이 곧 발제자가 주목하고 있는 공공예술이 공간성을 획득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닐까라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두 번째는 도시에서 조금 더 들어가서 베를린이란 사례를 보려고 합니다. 과연 공공예술을 통해서 도시에 참여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고 어떠한 가치를 지니는가. 이것이 핵심일 텐데, 발제자는 참여를 소통이나 관계성 같은 개념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궁극적으로 도시민이 대중 예술, 공공예술을 계기로 도시, 경관, 삶을 만들어가는 방법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조금 어렵게 얘기하자면 공간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펼쳤던 사회학자 오토 볼노(Otto Bollnow)는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공간에 대한 태도로 '거주하기'라는 개념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발제자가 제시하는 참여, 공공예술을 통한 도시에 대한 참여가 곧 오토 볼노가 말했던 '거주하기'에 도달하는 그런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베를린에 살고 있는 저의 경우에는 주변에 있는 공공예술을 통해서 어떻게 보면 제가 베를린에서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거주를 하는 사람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저의 베를린 거주를 이끄는 원동력 중의 하나가 공공예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베를린 사례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베를린은 잘 아시다시피 하나의 거대한 공공예술 작품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 배경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쉽게 얘기하자면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이 합쳐지면서 장벽이 무너진 90년대에 베를린이 이러한 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었는데, 당시 베를린을 기록한 사진집이 있습니다. 제목이 원더랜드(Berlin Wonderland)인데, 이처럼 베를린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어떤 활동이든 어떤 창조적 행위든 할 수 있는 무대, 장소가 되었던 곳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사람들 그리고 베를린 사람들, 무정부주의자들, 이민자들,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를 캔버스 삼아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는 창조적 폭동을 벌였는데요, 오늘 모든 공공예술을 소개할 수는 없고, 중요한 어떤 순으로 소개한다기보다는 저의 경험 속에서, 제 삶 속에서 포착했었던 세 가지의 공공예술 또는 공공예술적 조경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걸으면서 포착한 것들인데, 언급했었던 오토 볼노같은 경우에는 거주하기의 한 가지 방법으로 도보 여행을 제안하기도 했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예입니다. 베를린 원더랜드라는 별칭의 출발이 됐던 것인데요, 장벽을 활용한 것들입니다. 동서 베를린을 가르고 있던 장벽으로 독일어로는 마우어(Berliner Mauer)라고 불리는데 마우어라는 명칭이 붙은 장소 또는 공간 이런 곳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여기저기에 마우어라는 곳이 보이는데 제 주변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우선 출퇴근길에 트램을 따라서 가는데, 이 트램이 베를린 장벽 메모리얼을 따라 가고 있고요. 제가 시간이 있는 주말이면 부근의 마우어 파크(Mauer Park)를 잠깐 다녀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좀 더 많이 걸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 멀리까지 갈 때면 인발리든 파크(Invaliden Park)를 만나기도 하고요. 이곳에서 사람들이 장벽을 가지고 벌이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작업들을 볼 수 있었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장벽을 조금 수정하거나 또는 전복시키거나 파괴하거나 하면서 과거에 그 분단됐었던 베를린을 지워버리고 무효한 것으로 만들고 바꾸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장벽들을 가지고 베를린의 새로운 경관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베를린의 미래 지평을 여는 데 동참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화면에 보이시는 것은 인발리든 파크라고 하는 곳인데 90년대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바로 만들어졌었던 공원입니다. 디자이너를 찾아보니 지금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 조경학과에 계신 크리스토프 지로(Christoph Girot)의 작품이더라고요. 이곳에서 거대한 구조물, 콘크리트 덩어리가 곧 장벽을 나타내는데 이 장벽은 지금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이러면서 장벽을 만진다기보다는 주물럭거리면서 베를린의 역사도 바꿔버리고 싶은 생각들을 읽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가라앉는 구조물로 전복되는 사례도 있고, 다음 페이지로 넘겨보자면 제가 트램을 타고 출퇴근길에서 본다는 베를린 장벽 메모리얼입니다. 그 높은 장벽이 이어지던 공간인데 지금은 일부 남아 있고 가벼운 코르텐강 폴대들이 연속돼서 동서가 서로 투명하게 보이는 경관을 만들어낼 프레임으로, 그리고 동시에 기억할 수 있는 프레임으로 존재한다던가 혹은 나무가 심어져서 오픈 스페이스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콘크리트 장벽이 철봉 프레임과 수목으로 교체되었고요. 한 가지만 더 언급을 하자면, 마우어 파크라는 곳에 긴 공원의 장벽이 존재하는데 이곳에서는 매일 혹은 매 순간 지금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기존에 누군가 그렸던 메시지든 그림이든 경관이든 페인팅을 계속해서 덧대고 바꾸고 창조하는, 매일 새로운 벽화와 낙서가 올라오는 오픈 갤러리로 탈바꿈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말씀드릴 공공예술 프로젝트는 ‘걸림돌 블록’이라는 프로젝트입니다. 독일어로 ‘Stolpersteine(걸림돌)’으로 불린다고 하는데, 놋쇠로 만들어진 블록이고, 나치 시절에 체포됐던 사람들의 이름, 거주지, 생일 그리고 세상을 떠난 날짜 등을 기록한 군터 뎀니히(Gunter Demnig)라는 독일 작가의 프로젝트입니다. 사진 속에 있는 걸림돌이 굉장히 미묘하게 사고석 사이에 존재하는데, 제 집 앞에 있는 걸림돌입니다. 이 걸림돌은 앞서 마우어 사례처럼 굉장히 두드러지게, 어느 한 장소에 거대한 덩어리로 존재하는 그런 구조물은 아닌데, 10cm x 10cm 크기로 존재하고 희생자들이 살았던 집이나 실종된 장소에 자리 잡고 있어서 베를린 여기저기에서 보입니다. 발에 채입니다. 걸어가다가 문득. 현재 베를린에 한 8,500개 정도가 있다고 하고 베를린뿐 아니라 전 세계에도 존재한다고 하는데, 저의 경우에는 집 앞에 지하철역을 가는 길에 또는 슈퍼를 가는 길에, 커피 사러 가다가, 또는 연구소 가는 길에 종종 만나게 됩니다. 여기저기서 또는 시시때때로 예기치 않게 접하면서 이 발에 블록들이 채일 때마다 수시로 희생자들을 소환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죠. 이러한 것을 통해서 저는 일상성을 떠올릴 수 있었는데, 이것 말고도 이 프로젝트는 오늘의 주제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눈여겨볼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악티베스 무제움(Aktives Museum)이라는 시민단체의 역할입니다. 이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베를린에 약 8,500개가 있다고 하는데 한 개의 블록 제작 가격이 120유로에 이른다고 해요. 악티베스 무제움이라는 시민단체가 결성되어서 작가와 협업을 하면서 오늘까지 일이 이어지고 있다고 해요. 이러한 단체의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참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개념적인 참여가 아니라 실제 시스템으로서의 조직이 어찌 보면 이 공공예술 그리고 작품들이 도시를 만들어나가는, 경관과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참여를 작동하게끔 하는 기제가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세 번째, 마지막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앞에 있는 것들과 달리 이것은 어떻게 보면 정원입니다. 조경이기도 하고요. 이번에는 정원이라는 형태를 택한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말씀드릴 건데 이 작품은 베를린에서 한독 예술가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금 아트 프로젝트(keum art projects)라고 하는 독립 큐레이터의 작품입니다. 2019년에 만들어졌고 제목은 ‘제3의 자연(Das dritte Land)’이라고 해요. 아마도 여러분께서 검색을 해보시면 환경과 조경이나 라펜트를 통해서도 일부 재미난 사실들을 발견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합니다. 기존에 알려져 있기 때문에요. 저의 경우에는 이 사례를 몰랐다가 여기 와서 알게 됐는데, 제 연구소가 위치한 곳 바로 옆에 있어 거의 매일 보고 있습니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전혀 몰랐을 때 찍었던 사진입니다. 잔디밭 위에 이렇게 토사가 노출되어 있고, 이러한 상태를 보고는 잔디밭에 바위가 몇 개 딱 덩어리로 놓여 있는데 이걸 보고 저는 처음에 ‘공사용 재료인가’라고 생각을 했어요. 바로 옆에서 지금 20세기 박물관이 건설되고 있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아는 분께서 이게 ‘한반도의 자연을 표현한 예술 정원이다’라고 설명을 해 주셨어요. 그런데 과연 그런가 하면서 좀 차가운 시선을 보냈죠. 왜냐하면, 노출된 흙, 시들시들한 풀, 이런 것 앞에서, ‘정원의 본질은 돌봄인데 너무 내버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정원의 탈을 쓴 예술의 한계인가’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그런데 지난 5개월 동안 매일 마주하며 봄과 여름을 지내고 이 정원이 계속해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작품이 어떤 정원이라는 옷을 입은 이유를 확인했습니다. 백두대간을 뜻하는 바위 주변으로 남북한 식물 45종이 위치에 있는데, 어디가 남한이고 북한인지 저희가 구분할 수 없습니다. 이 계산된 경계를 조롱하듯이 식물들은 매우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경관을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보고, 제 기억 속에 경관들을 누적하며 어느덧 명확한 메시지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통일을 이룬 독일에서, 특히 베를린 장벽이랑 멀지 않은 곳에서 경계를 실험하는 순간들을 만드는 정원의 강력한 힘을 목격 한 것이죠. 그래서 인간이 만든 경계가 자연 속에서 무효하다는 생각과 믿음이 제 안에서 자리 잡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끝으로 정리를 해보자면 이 베를린에서 봤던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과거를 수정하고 접목하고, 또한 일상적으로 몸을 맞대고 역사를 상기시키도록 하고, 변하는 경관을 기억하도록 하고 메시지를 쌓도록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의 집합적 기억을 만들고, 도시 경관을 경험하거나 형성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참여의 루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공예술과 도시 또는 도시 사람들의 소통에 있어서 필수적 조건인 체험・참여의 조건인 기억이나 체험의 통로로서의 몸, 그리고 맥락으로서의 장소가 과연 동시대에도 유효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팬데믹, 디지털 시대 속에서 참여의 기제가 되는 몸과 장소가 언뜻 위기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인데요. 저희가 하루의 상당 시간을 인터넷 공간이라는 비장소에서 보내고 있고 실제로 물리적 공간에서는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있죠. 그렇지만 한편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인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미디어가 신체와 감각 기능을 확장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베를린에 있는 제가 줌(Zoom), 마이크, 카메라를 통해서 제 목소리, 제 표정, 생각들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말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면 몸의 확장, 신체 감각의 확장으로서의 미디어를 우리가 떠올릴 때 다음처럼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즉 공공예술이 미디어 형태를 띨 때 팬데믹과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참여의 통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을 조경에서 얘기를 해보자면 조경에서는 4차 산업혁명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빠른 속도로 많은 정책들을 내보이고 있고 많은 움직임들이 있죠. 특히 스마트 공원이라는 것이 그중에 두드러지는 사업인데, 공공 예술과 조경이 맞닿은 지점에서 발제자가 지목한 참여라는 키워드를 디지털 시대 스마트 공원에 접목할 수 있지 않을까. 스마트 공원이 더는 단순히 기술을 전시하거나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는 시설물의 집합체가 아니라, 어떤 감각 기관을 확장하는 미디어를 품으면, 즉 공공예술로 존재할 때 새로운 스마트 공원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조금 두서없는 생각을 해보면서 토론을 우선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명진 네. 기대는 했었습니다만, 기대 이상으로 엄청 풍부하고 깊이 있고 흥미로운 토론을 가져다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제가 바로 오픈 토론으로 넘어가기보다는 두 분의 토론을 함께 듣고 나서 넘어가는 게 맞을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으로 김창재 작가님의 토론 부분을 진행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창재 네. 안녕하세요. 미술 작가 김창재입니다. 저는 장소의 문제 그리고 도시 경관이 비판적으로 기능하는 것과 경험으로 전달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초대되어 무척 기쁜 마음으로 참석했습니다. 서로의 분야에서의 연구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처음에 신명진 선생님의 발제문을 받아보고 하나의 사례로 올해 제가 진행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바람산 연립’에 대해서 말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경과 공공예술의 접점으로 주목한 공동체와 참여는 미술에서도 중요한 과제가 되어 왔고 저 역시 일상의 정치와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 일시적인 공동체를 조직하는 것을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특히 이번 바람산 연립은 도시의 특정한 장소를 변화시키는 것을 다루기에 오늘 발제와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바람산 연립은 서울시와 문체부의 후원을 받아서 신촌 바람산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로 바람산에 위치한 공공시설 일대가 공공의 장소로 작동하고 여기서 지역 주민과 관공서 시설과 청년이 연립하는 것을 주제로 합니다. 연립은 주거지의 형태에서 따온 말인데요. 시민성을 표현하는데 이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발표를 위해 몇 장의 이미지와 노트를 준비했습니다.
풍산. 산의 이름은 대개 형태를 따르는데, 신촌에 위치한 바람산은 정해진 모양새가 없는 바람을 이름으로 한다. 그리고 바람산 정상에는 전망대와 풍차가 있다. 서대문구는 풍차를 바람산의 상징으로 삼았다. 이 풍차는 에너지를 생산하는 대신 정해진 시간 정해진 속도로 회전하기 위해 전력을 소비한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풍차는 기능을 위해 역동적이고 위협적인 반면, 에너지를 생산할 필요가 없고 안전하게 관리되어야하는 풍차는 무력하게 경험된다. 위협하는 것은 감성적으로 풍요로운 반면 안전한 것은 빈곤하고 위험하다.
바람산의 북서측 비탈에 위치한 것은 서쪽부터 바람산 어린이공원, 연세대 캠퍼스타운 에스큐브, 신촌문화발전소와 신촌동 자치회관으로 각각 정치, 일, 문화, 생활이라는 시민의 삶의 중요한 요소를 지원한다. 모두 지자체인 서대문구가 소유, 운영하고 있다. 도시정부는 적극적으로 공공의 환경을 바꿔나간다.
신촌동 자치회관과 신촌문화발전소 사이에 설치된 계단과 주민이 세운 다리-계단은 서로 마주하고 있다. 둘 다 필지와 필지를 넘나드는 시설로 편리함과 일종의 초월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전자는 신촌문화발전소의 건축양식과 같아 해당 건물이 지어질 때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유추되는 반면, 집과 도로를 연결하는 통로는 일부 끊어져 있어 불법이던 것이 부분 양성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지형이나 필지, 도시계획 등을 거쳐 생산된 장소는 고정되지 않고 이용자들의 삶을 통해 전유된다. 이 전유는 다시 공동의 장소 만들기의 조건이 된다.
대학 인근의 하숙촌인 바람산의 거주자 연령대는 20대가 대부분이지만, 오래 거주하고 지역에서 교류가 있는 사람들은 노인층이다. 노인들이 모이는 장소는 정해져 있다.
바람산 어린이공원은 문화광장으로 조성될 계획이다. 작업의 초기 아이디어는 이 공원이 광장으로 기능하기 위한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바람산의 환경은 누적된 필요로 만들어졌다기보다 전략적으로 기획되었다. 대부분의 도시재생사업지가 그러하듯 청년과 문화예술은 이를 위해 동원된다. 광장이 작동하기 위해 새롭게 유입될 사람들의 마음이 바람산에 엮일 필요가 있다.
바람산은 우연히 방문되는 장소가 아니다. 서대문구는 바람산을 명소로 만들기 위해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이동 편의를 높이고자 한다.
지자체의 기획과 욕망이 과시적으로 전시되는 바람산에서 공공의 장소를 비판적으로 구성하고 기능하게 만들 수 있는가. 이 과제는 개입하고 수정해야하는 공동의 과제다. 공모를 기획했다. 공모의 세부과제는 크게 둘로, 1) 안전한 보행 동선을 마련하는 것과 2) 바람산의 공공시설을 유기적으로 활용해 교류와 공동체 활동을 활성화하는 것이었다. 별도의 참가자격은 없었지만, 주민과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함께 하고자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보완했다. 공모는 공공시설의 위아래로 놓인 길까지 대상지로 한다. 주된 보행로로 활용되는 윗길은 교통이 혼재되어 불편하고 위험한 반면, 아랫길은 동선이 연결되어있지 않아 사적으로 점유되곤 한다.
각각의 쓰레기배출 공간으로 활용되던 신촌 문화 발전소와 캠퍼스타운 에스큐브 사이 공간은 전시를 매개로 일시적이지만 대안적으로 작동한다. 발전소와 에스큐브는 자치회관과 협의해 쓰레기를 자치회관에 배출하고 그곳은 전시 장소로 진입할 수 있게 개방되었다.
전시는 투어 형식으로 기획되어 현재의 풍경과 공모 당선작 10점을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 10인을 섭외해 각 제안에 반응하는 안내 역할의 작업을 요청했고, 이 모음집이 안내서로 배포된다.
6월 한 달간 설치된 현수막 작업은 전시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풍경을 비판적으로 수정한다. 도시환경을 구축하는 주체를 드러내고 단절되어 기능하지 못하던 장소를 엮어 작동하게 한다. 기능을 유지시키는 것은 목표해야 하지만 또 다른 문제다. 다른 상황과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창작자는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다. 자신의 것을 포함해 각 욕망을 무시할 수 없다. 성실하게 해소할 수도 없다. 이미 수많은 욕망이 과시적으로 우리의 생활 터전에서 전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조정의 기회로 삼고 싶었다. 작품은 특정한 경험과 기억을 반복하고 잉여 가치를 생산해 결국 무언가에 복종하게 될 것이다. 바람산 연립은 미래의 사건을 앞당겨 실행한 것뿐이라 쉬운 이야기를 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업은 이렇게 만들어진 장소는 힘 있는 장소로 그 자체가 상징될 테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신명진 네. 한 편의 시를 들은 느낌이어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더 많은 질문을 해야 될 것 같고요. 사실 저도 준비한 질문이 많지만 당장은 한 10분 정도의 시간으로 휴식을 먼저 가진 다음 정리를 하고 질문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2부
신명진 네. 안녕하세요. 3자 토론으로 2부를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두 분이 발표해 주신 내용이 너무 흥미로웠는데 먼저 작업하신 사이트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던 작가님께 먼저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그 후에 김정화 박사님께 부탁드리고 그 다음부터는 서로 질문 있으시면 같이 하시고 다른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 먼저 다른 바람산연립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는데 제가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이 작업이 하나의 작업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그 안에서도 되게 다양한 작업이 일어나고, 그 사이에 시너지가 굉장하다는 점이었거든요. 근데 특히 아까 말씀하신 것에서 ‘연립’이라는 단어가 와 닿았어요. 뭔가 저희가 많이 쓰는 게 공유. 협력. 협조. 콜라보. 이런 건데 연립이라는 단어에 꽂히시게 된 계기가 혹시 있으실까요.
김창재 네. 있었죠.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서 연립을 처음 생각했던 건 아니고 예전에 경제적인 자립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자립이라는 단어를 좀 생각을 하다가, 자립이 가능한가 아니면 내가 추구를 해야되는 게 독립이었던 건 아닌가 이런 고민을 하다가 이 자립이나 독립이나 둘 다 외로운 것 아닌가. 그래서 연립이라는 단어를 그때 생각을 했었어요. 보면서 연립이라는 말 자체가 이렇게 깊은 거구나. 그리고 요새 우리가 주거 형태에 대해서 말할 때도 빌라라는 말은 많이 쓰지만, 연립이란 말은 많이 안 쓰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 단어를 지금 쓰면 더 의미 있게 전달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우리가 익숙했던 단어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생각을 갖고 바람산에 연립이라는 단어를 붙이게 됐어요.
신명진 연립하면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연립주택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작품에 대해서 모르는 상태에서 봤을 때는 연립주택 도시재생인가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그게 아니라 정말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을 하신 느낌이더라고요. 굉장히 흥미롭게 봤고 또 한 가지 여쭤보고 싶었던 건 공모전을 하시게 된 거였어요. 공모전 하면 건축도 그렇고 미술 쪽도 그렇고 되게 애증의 단어잖아요. 그래서 하시게 된 경위도 궁금합니다.
김창재 네. 그 공모하는 과정을 이 프로그램으로 넣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바람산 연립이 가능하게 됐던 사업의 조건 중의 하나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 설명해 드릴 게 문체부와 서울시가 주최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라는 점이에요. 되게 특별한 사건인데 코로나가 계기가 돼서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지점에서 문체부와 서울시는 대대적으로 공공미술 사업을 벌여야겠다고 기금을 마련한 거죠. 그러면서 제약들이 동시에 발생하는데, 2월 정도에 사업이 시작돼서 6월 말까지 사업이 끝나야 된다. 그리고 정해진 금액이 있고, 정해진 금액 일부는 사업비로 써야 되고, 일부는 예를 들어서 인건비로 지출을 해야 된다. 절반 정도는 '문화 복지 사업' 개념으로 진행이 된 사업이다 보니까 그런 어려운 조건 중 하나가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공공미술로써 제가 이 프로젝트에서 원했던 거는 어떤 구체적인 장소를 전환하고 싶다는 기획인데 그 기간과 예산을 통해서 진행될 수가 없는 사업인 거죠.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이 장소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의견 제시를 하고 그거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장소를 전환시켜 나가야 되는 ‘무언가’라는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공모라는 방식을 통해서 좀 더 전문가, 비전문가, 어떤 일반인,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이 장소에 대해서 공인을 하게 만들고 연결될 수 있게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신명진 어떻게 보면 약간 전술 같기도 하네요.
김창재 네.
신명진 사실 이 지점에서 아마 김정화 박사님이 얘기해 주신 베를린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고 느꼈던 게 조경도 창작 행위의 일종이잖아요. 그래서 조경가가 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얽혀 있는 지자체도 너무 많고 사람들도 너무 많고 그러다 보니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게 된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김정화 박사님의 베를린 사례를 들으면서 베를린 경우에는 사실 장소 기억이 엄청 강력하잖아요. 그래서 그 장소 기억이 원동력으로 작동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장소에서 만약에 공적 기억과 완전히 다른, 어쩌면 사람들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작품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런 정도의 강력한 장소에서요. 먼저 박사님 답변 듣고, 혹시 작가님도 주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함께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정화 제가 이 토론문을 준비하면서 보니 다음번 오픈 스페이스 오픈 아트워크(OSOA)의 주제가 메모리얼이더라고요. 그래서 어찌 보면 베를린에서 공공예술 이야기하고 있는데 상당 부분이 메모리얼에 해당하는 얘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중간에 발제자께도 미리 말씀을 드렸고 다음번 메모리얼은 누가 발제하는가 많이 궁금해 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발제자께서 지금 어떤 도시에서의 그 공간성, 조각과 조각하기에서의 장소적 맥락을 주목하고 계시고 그런 면에서 베를린이 원더랜드라고 하는 그러한 개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제가 첫 번째, 두 번째 등 아까 말씀드렸던 마우어의 사례들이라든가 아니면 걸림돌 프로젝트 같은 경우는 모두 분단 또는 장벽 아니면 전쟁 아니면 유태인, 나치 이러한 커다란 역사와 관련 없이는 절대 얘기할 수 없는 사례들인 것 같아요. 대부분이 그런 것들인 것 같고요. 그렇지만 그것이 아닌 조금 소소하고 개인적인 의미로서, 가치로서 이 베를린 도시라는 무대가 존재하는 공공미술들은 없을까 한다면 사실 최근에 많은 새로운 것들이 보이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이 예술계에 깊이 발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유창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요. 근데 오늘 말씀드린 것은 모두 저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매우 지엽적인 얘기들이긴 합니다. 예를 들어서 자잘한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은 90년대 때의 그 강력한 동서 베를린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서의 기획들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새로운 것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 새로운 것들이 매우 거대한 역사의 반대편에 있는 어떤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하는 장소로서의 베를린보다는 제가 느낀 지금의 베를린에서의 여러 가지 예술 행위들 또는 그런 작품들은 또 다른 주제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또 다른 거대한 이슈들, 예를 들면 기후 변화라든가 생태라든가 어떤 환경 위기 이런 것들을 가지고 다시금 또 다른 프로젝트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거든요.
이것이 딱 맞는 사례인지 모르겠는데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계속되는 팬데믹 때문에 특히 지난해와 올해 같은 경우 작가들이 굉장히 활동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대부분 다 정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올해 초 팬데믹 중에서 한 개의 오픈된 전시가 하나 있었어요. 어찌 보면 공공예술일 수 있겠죠. 그게 뭐냐면 템펠호프(Tempelhof)는 조경을 전공하신다면 많이 들어보셨을 것 같아요. 공항이었다가 공원으로 바뀐 것이 템펠호프이죠. 그 템펠호프가 지어질 때 옆에 빗물 유수지로 같이 만들어졌던 공간이 있는데, 템펠호프의 원 기능이 끝나면서 그 공간도 문화 공간으로 바뀌었거든요. 플로팅 유니버시티(Floating University)라고 하는 명칭을 가진 문화 공간인데 이곳에서 올봄 6월에 전시가 있었습니다. 전시 제목이 영어로 터레스트리얼 어셈블라지(Terrestrial Assemblage)라고 해서 어려운 제목을 갖고 있는데 핵심을 얘기하자면 글로벌 환경 문제에 있어서 새로운 이야기들, 그 경계에서 어떤 지역에서뿐 아니라 조금 큰 시각에서 새로운 얘기들을 하는 전시였어요. 그런데 이게 새로웠던 것은 화이트 큐브 안에서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공원 옆에서 있었던 것이고 거기에 물이 있거든요. 유수지였기 때문에. 유수지 위에 전시들이 이렇게 똑똑똑 이렇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 환경이라고 하는 이 주제를 이 유수지 위에 이렇게 배치해놓고 전시 메시지를 읽으려면 물 위를 걸어가서 하나하나 감상해야 하는 공간 구성이 시각적으로 작품을 보고 또는 팸플릿에서 글을 읽고 하는 것뿐 아니라 직접 몸으로 물을 가르고 부츠를 신고, 장화를 신고 가르고 지나가면서 또는 뗏목을 타고 지나가면서 비가 오면 더 높은 그 물길을 걸어가고, 개구리가 많은 날이면 개구리 소리 들으면서 지나가고, 이렇게 숲 풀을 헤치며 지나가고 이런 동선 구조가 꼭 메시지와 더불어서 새로운 경험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형태가 재미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얘기하면서 말이 바깥으로 나가고 있는데, 다시 돌아와서 얘기해 보자면 발제자께서 얘기해 주셨던 거대한 역사 대 어떤 개인의 기억에 대한 얘기보다는 지금 또 다른 2021년 팬데믹이란 상황 속에서는 어찌 보면 굉장히 거대한 거죠, 글로벌 환경 위기라는 문제가. 그렇지만 저희가 매일 목격하고 있잖아요. 그리스나 터키의 산불이나, 독일 같은 경우는 홍수나 이런 문제들이 있었고, 이게 직접적으로 와 닿는 것이기 때문에, 거대하지만, 현실적인 또 다른 이슈들을 가지고 공공예술의 프로젝트들이 일어나고 있고, 그 형태가 글이나 그림뿐 아니라, 구조물 형태뿐 아니라 직접 몸으로 그 속으로 들어가는 형태의 전시 기획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특징적으로 눈여겨볼 만한 지점이었습니다.
신명진 흥미롭네요. 사실 어떻게 보면 녹색당으로 유명한 독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후변화와 관련된 예술 작품이 많을 거라고 상상은 하는데요, 이런 작품들이 말씀하신 대로 굉장히 특이한 공간들에 모이잖아요. 보통 그래서 잘 보기 어려운 거 같고 미디어에 잘 소개가 되지도 않는 것 같아요. 작가님 역시도 사실 환경이 갖고 있는 이야기 또 환경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는 작업을 하셨잖아요. 그러면서 한국에서 주로 이야기되는 것이 무엇인가. 또는 이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공공예술을 통해서 일반인들이. 그런 거에 대해서 혹시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실까요.
김창재 음. 아니요. 전반적으로 한국에서의 공공미술의 경향이나 이야기들을 주로 다루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은 안 해본 것 같아요. 다만 이번에 제가 진행했던 바람산 연립 프로젝트가 속한 큰 운영단이 자체적으로 웹사이트를 가지고 있고 거기서 각 지자체마다 진행한 공공 프로젝트가 아카이브되고 있어 관심 있게 보려고 하는 데 사실 공공미술이라는 전형적인 그런 곳들은 크게 흥미로운 지점들을 많이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고요. 오히려 공공미술이라고 말은 안 하면서 공공성이나 이 도시에서의 삶이나 어떤 저의에서 일어나는 정치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분야들의 미술 작품들이 오히려 제가 봤을 때는 공공 미술적이고 공공미술답고 저의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의 경계 같은 것들을 조금 쳐내는 것 같다라는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리고 최근에 그런 작품들을 우연히 전시나 최근에는 광주비엔날레 이런 것들을 가면서 되게 흥미로운 작업으로 공공성을 다루는 작업으로 보기도 하는데 아까 질문 주셨던 것 중에 약간 흥미로운 사례 중 하나가 될 것 같은 게 한 호주 국적의 작가인지는 모르겠으나 호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 위주의 설치 작업인데 대략적으로 작업에서 다루는 얘기는 이런 식이에요. 호주라는 광활한 땅덩어리. 중간 지역에 있는 사막 지역에는 되게 사람들이 원치 않는 땅들, 그렇게 생산성이 높지 않은 그런 땅들이 있는데 최근까지도 약간 노예처럼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나 봐요. 그래서 거기서 농장을 운영하고 어떤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인권의 범주의 바깥 지점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그 농장주가 어느 시점에서 그 농장이 생산성이 떨어지다 보니까 더 이상 운영을 안 하겠다 하고 그 안에서 있던 사람들은 자유민이 된 거죠. 그 사람들 중에 한 분을 따라다니면서 어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작업을 했는데 이분이 땅에 대한 기억 땅에 대한 향수나 아니면 바라는 것 때문에 이제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을 하면서 그 그림을 통해서 뭔가 자기네 이야기를 하는 그 지점들이 있었는데 이 작업에 대해 소개하기 위해 얘기를 꺼낸 건 아니고요. 이 작업의 캡션이 저는 되게 흥미로웠어요. 그 캡션에 보면 ‘호주 거주민 또는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영상 작업은 감정이 상할 수 있으니까 보는 것을 조심해 볼 것을 권합니다.’ 정확한 워딩을 기억을 하지 못하는데요, 결국에 미술 작품이 정치를 다루려는 문제에 있어서는 결국에 모든 사람들이 그거를 감상을 할 때 편안할 수는 없는 거죠. 왜냐하면, 자신의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나 어떤 신념이나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전달을 해야 되기 때문에요. 저는 그래서 미술 작품, 공공성을 다루든 안 다루든 했을 때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아니었구나. 그런 감각을 느끼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신명진 해주시는 말씀 들으니까 제가 이번 발제에서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안 쓴 게 하나 있어요. 바로 이제 리차드 세라(Richard Serra)의 ‘틸티드 아크(Tilted Arc; 기울어진 호)’ 얘기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왜냐면 공공예술 작품이 시민들의 원하는 것과 정면으로 부딪혔던 사례였고 근데 그거를 이야기하면 너무 많은 걸 이야기해야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포기는 했는데 저는 그런 의미에서 사실 오히려 제가 준비했던 질문으로 넘어가기 좋을 것 같아요. 박사님이 언급해 주셨던 디지털 시대, 미디어 아트, 그리고 스마트 공원 그러니까 저희가 어떻게 보면 땅이라는 한계를 가진 인간들인 건데 디지털 세계는 왠지 땅이 무한할 것 같은 그런 마음.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사실 스마트 공원 하면 기능적인 것, 효율적인 것, 효용적인 것 위주로 이야기가 많이 됐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박사님이 말씀해 주신 공공예술과 스마트 공원의 조화, 디지털 아트의 가능성, 사람들에게 정말 열릴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게 굉장히 흥미로운 화두인 것 같습니다.
두 분께 공통으로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게 만약에 미디어 아트, 그러니까 공공예술로서의 미디어아트가 스마트 공원 또는 스마트 도시와 결합된다면 어떤 것들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냥 상상해본다면? 그걸 여쭤보고 싶습니다. 먼저 준비되시는 분이 얘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창재 네. 떠오르는 이야기를 한 가지 하도록 할게요. 미디어도 충분히 비판적으로 다뤄질 수 있는 매체가 될 거라고는 생각을 해요. 그런 사례로 어디서 글로 전달받은 어떤 작업인데 보통 우리가 도시를 거닐거나 어떤 장소를 갔을 때 이 장소가 어떤 관계망을 갖고 형성이 됐거나, 누가 소유를 하거나, 누가 어떤 욕망을 가지고 만들어 놓는지, 배경에 대한 이야기들을 알 수가 없잖아요. 사회적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 미술의 과제이기도 한데 제가 봤던 작업 중 하나는 그 장소 자체도 뭔가 일반적인 장르 일반적인 도시환경인 것 같은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 증강 현실(AR) 같은 거죠. 그걸 통해서 대상지를 바라보면 그 안에 배경적으로 권력 관계라든지 장소에 대한 문제점들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감각할 수 있게 했던 사례들이 있었다고 해요. 제가 정확한 그 작가 이름이나 작업 이름을 지금 기억하고 있지 않은데 이런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는 사례들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신명진 박사님은 생각나시는 게 있으실까요
김정화 네. 제가 특정 사례를 생각하고 그러한 내용을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을 해보면 여러분이 쉽게 떠올리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글을 썼을 때 조금 더 개념적으로 접근을 했지만, 실제 사례를 그런 것들을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느냐 하자면 있죠. 학교에서 계속 배우는 그 밀레니엄 파크(Millenium Park) 있잖아요.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의 몇 가지 특징적인 공간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거대한 구조물 덩어리로 거기에 시카고의 여러 다양한 인종들이 사람들의 얼굴이 나오고 얼굴에서 물줄기가 나오잖아요. 그것이 어떻게 보면 제가 언급했었던 디지털 시대에 감각의 확장, 몸의 확장으로서의 어떤 머신(machine)이 아니라 소통의 매개체로서의 공원의 형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보면 일찍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구조물이 지금도 있나요. 강남역에 가면 저 위에 교보문고까지 쭉 미디어 기둥들이 있잖아요. 정보를 검색하거나 지도를 보거나, 광고가 나오는데, 그것은 말 그대로 머신인 것 같아요. 기술 자랑하고 정보검색 하는 그런 기둥에 불과하니까요. 근데 그것이 시카고에 있는 밀레니엄 공원에 있는 그러한 존재의 형태라면, 사람들의 얼굴이 나오면서 물로 발사되면서 내 몸에 부딪히고 그 화면 자체가 사람의 얼굴이고, 그렇게 되면 그것이 여러 다트(dot)들의 합이고 잔상이지만 그것을 인지할 때는 정말 사람이 내 앞에서 물을 내뿜는 것 같은 느낌을 주잖아요.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단순히 머신이 아니라 서로 소통이나 어떤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그런 감각적인 예술 형태의 스마트 공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명진 네. 저희가 질의응답은 맨 마지막에 하려고 했는데 방금 말씀하신 것과 연관된 질문이 있어서 제가 읽어드리면 답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정화 박사님, 마지막에 조경에서 감각기관을 확장시키는 미디어의 가능성을 살짝 이야기 해주셨는데요, 인터랙티브 디자인과 같은 센서를 이용한 디자인 기술이 공공예술과 조경의 관계를 허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어요! 혹시 이런 경험, 감각과 관련된 기술은 앞으로 조경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먼저 방금 말씀드린 질문에 대한 답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정화 네. 제가 많은 말을 했더니 또 질문이 많네요. 먼저 질문해 주신 김수인씨 감사드립니다. ‘인터렉티브 디자인과 같은 센서가 조경에서 공공 예술과 조경의 관계를 허물 수도 있겠다.’ 다 같이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은데요. 저도 우선 이 토론을 준비하면서 그러한 떠오르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좀 글로 적어봤습니다만, 이렇게 정리된, 논리적으로 여러분께 설명해 드릴 그런 답변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또 다른 사례를 가지고, 제 경험을 가지고 얘기를 하자면, 아까 토론 시간에 잠깐 발제자께서 질문 주셨던 어떤 개인 기업과 거대한 장소 기억 사이에서의 대립이나 문제에 대해서 제가 이런저런 두서없는 답변을 하다가 베를린의 올 봄에 ‘터레스트리얼 어샘블라지라는 전시가 있었다,’ ‘물 위를 걸었다’ 이런 얘기를 드렸잖아요. 여러 가지 작품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 중 한 작품이 뭐였냐면, 제가 작가분이나 작품 명칭은 지금 다 잊었지만 간단하게 묘사하자면, 물하고 그 늪이 이어지는 경계 부분에 작품이 위치해 있었는데 무슨 상자 안에 거대한 달걀 같은 덩어리가 있었고, 계속해서 소리를 내고 있었고, 이것이 조금씩 소리를 낼 때마다 울림이 있는 구조물이었거든요. 그래서 계속해서 집중하게 됐는데, 알고 보니까 이 장치가 제가 가까이 갈 때의 어떤 거리(distance)나 아니면 다가갈 때의 어떤 움직임, 이게 물가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파동이나 여러 그 주변에 있는 또 다른 물체하고 그 작품의 어떤 관계 속에서 계산을 통해서 파동의 크기나 빈도 이런 것들이 조절되는 작품이었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것을 모르고 제가 움직이는구나 싶어서 궁금해서 다가갔다가, 멀어졌다가, 왔다 갔다 하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계속해서 바뀌는 움직임들이 뭐랄까. 아직 말로는 설명을 못 하겠지만, 우리 조경에서 다룰 때 우리가 식물이나 순간만, 고정된 경관만 다루는 게 아니라, 그 당시의 어떤 느낌이나 소리라든가 그런 것도 다루잖아요. 그런 면에서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지금 말씀드린 이런 단순한 하나의 사례가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이런 생각에 대한 어떤 단서, 자극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다음에 또 박소영 씨께서 질문 주셨는데 이것도 답변해볼까요.
신명진 네. 한 번에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죠.
김정화 네 감사합니다, 박소영씨. 같이 읽어볼게요.
['극장으로서 정원 vs. 장소로서의 도시'에 대해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살면서 근 몇 년간 서울에서 정원을 많이 접하다보니 '도시의 정원' 혹은 정원의 도시성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느껴집니다. 정원박람회나 플랜테리어, 최근 상업경관에 많이 나타나는 중정 등은 도시의 정원의 특성을 가진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바로 지금 정원도 도시에 포섭되고 있고, 시민-소비자에 의해 새롭게 생성되고 경험되고 있는 것 같아요(사실 인스타그래머블하게, 극장처럼 소비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역동적인 장소로서 '도시'에서 정원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조금 헷갈리는 게 김정화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제3의 자연' 사례를 들어보면 정원에서 조각이 아닌 식물이 의미를 전달하는 행위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도시 정원에서 식물이나 비인간-생물/비생물이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행위자로서 등장할 가능성도 엿보이는데요. 이게 앞서 말씀해주신 '극장으로서 정원'과는 좀 상충되는 것 같아서요. 부족한 저에게 설명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처음에 제3의 자연 프로젝트를 접했을 때, 뭐랄까, 엉성해서 크게 공감을 하지 못했던 것도 있어요. 저는 이것이 2019년에 만들어지고 방치됐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지금 2021년인데 2019년에 화려하게 성대하게 오픈하고 프레스 컨퍼런스하고, 조수미 소프라노도 와서 노래를 부르셨더라고요. 그런 성대한 오프닝이 있었는데, 그때 잠깐 무대로서만 존재하고 지금 2년이 지난 시점에 방치돼서 오늘에 다다른 게 아닐까, 역시 작가들은 정원을 설치물로만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처음엔 이것을 좀 지지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알게 된 한 큐레이터분이 바로 이 작품을 하셨거든요. 그런데 그 분이 지금도 주기적으로 가서 직접 물도 주시고, 풀도 뽑으시고, 계속해서 이 식물들이 처음 계획과 달리 변화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카이빙 작업도 꾸준히 하고 계시고, 보식도 하시더라고요. 조만간 아마 이것이 어떤 출판물로도 나올 것 같은데, 제가 처음에 마주했었던 것은 그 순간이었던 거죠.
3월에 아무것도 없었을 때의 그 순간. 그리고 엉성했었던 순간. 만약에 그 순간에만 제가 정원을 접했다면 저도 마찬가지로 이것을 극장으로서의 정원 또는 인스타그램의 뒷배경으로, 연출로서의 정원으로만 생각했을 텐데,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매일매일 접하면서 이 움직임을 제 머릿속에 기록하고 그 힘들을 파악하고 접했기 때문에, 이것이 극장이 아니라 정말 움직이는 어떤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달하고 있는, 증명해내고 있는 공공예술이 아닐까 생각을 했었고요. 박소영 씨께서는 식물이 행위자가 아니냐고 하셨는데, 만약에 제가 그렇게 끄덕끄덕만 한다면 식물이 그저 이런 행위자에 머무를 텐데, 만약에 제가 이것에서 메시지를 전달받고 자연 속에서의 경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것을 또 다른 행위로 제 삶 또는 활동 속에서 실천한다면, 그것이 저의 또 다른 퍼포먼스로서의 역할이 아닐까 싶고, 큐레이터 역시 이것을 계속해서 기록하면서 계속해서 지속적인 메시지를 보낸다면, 그리고 사진도 찍고 한다면, 그것도 큐레이터로서 예술가들의 지속적인 퍼포먼스이지 않을까.
이것이 단순히 설치, 무대 이것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가 지금 지향하고 있는 그런 형태의 공공예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명진 네. 감사합니다. 질문도 사실 제가 정원 부분을 많이 넘기고 간 부분이 없지 않아 있어요. 그 부분에 너무 포커스를 두면 다른 이야기를 할 수가 없을 것 같았거든요. 질문이 오히려 되게 상세하게 주신 것 같아서 혹시라도 정원 부분에 대해서 보충 설명이 필요했다거나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분들께는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두 분께 드리고 싶었던 공통 질문이 있었어요. 약간의 배경을 드리자면 이번에 OSOA 2회에 대해 ‘환경과 조경’과 같은 조경 미디어의 소셜 네트워크에서 홍보를 감사하게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 분께서 여기에 대해서 이제 댓글을 남기면서 조경이 조소과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냐. 이런 의미의 글을 적어주셨어요.
저는 이번 발제를 통해서. 예전에는 조경과 공공예술이 굉장히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고 시너지 효과도 냈었고 때로 경쟁도 했었고 그러면서 굉장히 흥미로운 발전을 해왔다는 이야기를 좀 전달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코멘트 주셨던 분이 혹시 오늘 세미나를 보셨다면 오해가 풀렸을지 또는 더 큰 의견이 있으실지 궁금한데요. 일단 두 분께 공통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게 어쩌면 구태의연한 질문일 수도 있어요. 이런 업역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굉장히 예민하면서도 풀리지 않는 숙제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장소나 경관을 바탕으로 작업을 하는 한 부딪침, 겹침 또는 콜라보 이런 다양한 방식으로 만남이 일어날 텐데요. 이번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저희가 느꼈던 것 중 하나가 (기존부터) 관심을 가졌었는데,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경관을 바라봐도 이렇게 다르게 볼 수 있구나-라는 데서 굉장히 생소함을 느끼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굉장히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이 하나의 경관 속에서, 또 장소 속에서 함께 작동하거나 또는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 혹시 의견이 있으시면 함께 공유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창재 네. 제가 간단하게 먼저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아까 조소과에서 자기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 아니냐 이런 표현을 했는데 되게 흥미로운 표현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침범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하고요. 근데 다만 제가 미술 작가로서 만약에 제가 조경을 하는 것이, 조경으로 도시 경관을 수정을 하는 것이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작업이라서 그걸 앞으로 만약에 하게 된다면 그걸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되게 큰 관심사는 아닐 거라고 생각을 해요. 무슨 말이냐면 결국 어떤 경관 자체가 미술적이거나 아니면 전달하는 방식에 의해서, 경험되는 방식에 의해서 그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다라는 게 제 스스로의 설득이 돼서 그걸 하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그 실험을 진행을 하고 만약에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진행을 하는 게 더 적합하게 할 수 있는 답이 있다 하면은 또 다른 방식으로 넘어갈 것 같거든요. 반대로 조경과가 어떤 예술 작업을 통해서 조경적인 자신의 관심사를 전달하는 것이 좋다라고 생각을 해서 할 수도 있는데 과연 그게 창작자의 목표일 것인가라는 지점에서 저는 충분히 그렇게 하셔도 되는 지점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하고. 다만 이 창작자들이 목표하는 것은 조금 다른 데 있지 않을까 그래서 다른 관심사 쪽으로, 다른 영역 쪽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진 네 감사합니다. 김정화 박사님 의견 주실 수 있을까요.
김정화 네. 방금 김창재 작가님께서 ‘침범할 수 있으면 침범하는 게 좋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매우 신선하게 들리더라고요. 아까 그 댓글을 말씀해 주셨잖아요, 저는 이러한 여러 가지 공공예술과 조경의 콜라보 또는 곱하기 아니면 혼란이 바운더리 긋기가 아니라 판 만들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이 판에는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고, 리더가 누가 될 수 있는지는 모르죠. 리더나 아니면 판을 주도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 성격이 조금씩 바뀔 수 있고 목표가 바뀔 수는 있지만, 이것이 깨끗한 제품처럼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의도치 않은 그런 결과들이 있을 수도 있고, 그래서 저는 이러한 접하는 것, 만나는 것, 이런 경계를 명확하게 하는 게 아니라 혼자 할 수 없는 것들을 더 재미나게, 다이내믹하게, 그리고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그러한 만남의 장이 아닐까 생각을 하고요. 공공예술 곱하기 조경이. 그리고 그랬을 때 여러 번 말씀드린 ‘제3의 자연’ 사례처럼 ‘이것은 설치 예술인가 혹은 정원인가,’ 계속해서 왔다 갔다 질문하고. 이것을 큐레이터가 직접 주도하긴 했다 하더라도 바운더리 긋기가 아니라 판 만들기이고. 오히려 경계를 지으면 지을수록 재미없거나 한계가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우리는 이런 것들을 더 시도하고 추구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하고, 오늘의 세미나가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내용을 던지면서 더 많은 가능성들을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신명진 감사합니다. 그 사이에 마지막 질문이 하나 올라왔는데요. 이 답변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로 들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만약 조경이 정치적, 역사적 메시지를 가진다면 어떠한 힘과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두 분이 모두 적극적인 의견을 주실 것 같은데 혹시 작가님 생각나시는 게 혹시 있으신가요.
김창재 저는 오히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제 의견을 드리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왜냐하면, 발제자님과 김정화 선생님의 발표를 들었을 때 정원, 공원이라는 장소를 오히려 배경이 되는 공간으로 말씀을 더 많이 하시는 것 같아서 과연 정원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오히려 정원 자체가, 공원 자체가 구체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공간으로 성립할 수 있는가 그러면서 반대의 한 사례로 말씀해 주셨던 하이라인 사례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자면 구체적으로 도시, 철도망이었던 유휴공간 같은 것들을 어떻게 전환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계속적으로, 정치적으로 메시지가 재연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또 처음에 말씀해 주셨던 픽처레스크 공원 같은 사례가 과연 우리한테 어떤 경험이나 어떤 이야기들을 계속 정치적으로 재현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중립적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근데 그게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요. 그래서 과연 이 질문에 대해서는 저는 배경이라는 자체가 어떻게 기능해야 될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발표를 들으면서 또 들었던 생각 중 하나가 공원 자체를 갤러리라든지 어떤 극장과 유사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해보게 됐어요. 극장이나 미술관 갤러리 같은 공간도 과거에는 화이트 큐브, 아무 영향력을 끼치지 않은 그 안에 들어가는 작품을 오롯이 읽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환상에서 지금은 미술관도 그렇고 되게 구체적인 아젠다를 제시하면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어떤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공간들이 되게 많아졌거든요. 근데 그렇게 유사한 방식으로 정원이 기능할 수 있을까. 비슷한 사례로는 이제 함부르크에서 있었던 파크 픽션 같은 경우가 지속적으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도시재생 사업에 대해서 반대를 하면서 자신의 공간, 공원을 마련하는 어떤 정치적인 메시지,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어떤 공동체적인 사건을 말하고 그렇게 기능하는 것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그런 사례는 있었죠. 그 정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드리면서 생각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네요.
신명진 감사합니다. 작가님이 계시니까 사례가 정말 풍부해지는 것 같아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박사님께서도 의견을 주실 수 있으실까요.
김정화 네. 박정연 씨의 이 질문이 굉장히 크게 와 닿는데, 무거운 질문인 것 같아요. 단순하게 답변하기는 어렵겠지만, 오히려 단순하게 답변을 하는 게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우선 저는 여기서 이 질문을 조금 수정하면, ‘조경이’를 ‘조경 작품이’라고 했을 때 질문이 달라지는 것 같거든요. ‘조경 작품이 정치적 역사적 메시지를 가진다.’라는 질문하고 ‘조경이 정치적 역사적 메시지를 가진다.’라는 질문은 굉장히 다른 것 같아요. 만약에 이것을 ‘조경 작품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작품 하나는 어떤 개인 또는 어떤 도시 어떤 단체의 성과물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어떠한 힘, 영향력은 그때그때 단체나 개인이나 아니면 작가의 내세우고 싶은 그런 메시지에 따라서 충분히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것을 만약에 ‘조경 작품이’ 아니라 ‘조경이’ 정치적 역사적 메시지를 가진다면 어떠한 영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어떤 답변이라기보다, 떠오르는 생각은, 최근 미국의 스케이프(SCAPE)라는 굉장히 유명한 조경회사가 있던데, 그 스케이프가 오이스터(굴 껍데기)라고 하는 어떤 소재를 가지고 미국의 어느 강변을 재설계해서, 굉장히 환경적으로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쉬운 그런 구조로 재설계하는 그런 프로젝트로 CNN과 인터뷰하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그 사례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닐까 싶은데 지금처럼 당장 기후변화나 이런 문제가 대두됐을 때, 구체적인 조경 작품을 통해서 이렇게 속수무책이거나 굉장히 우울감에 빠지는 상태가 아니라, 이러한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실천하면서 우리가 조금씩이라도 공동으로 대응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향해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설득하고 같이 으쌰으쌰하는 그런 기운을 만드는 데 영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신명진 네. 굉장히 거대한 질문이잖아요, 그래서 답변을 하는 데 있어서 그런 거 같아요. 답변하면서도 계속 저의 생각이 바뀌는 경우도 많고 그러면서 아 맞다 이것도 있었지, 아 맞다 이것도 있었지 하면서 저한테도 도움이 많이 되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김창재 조금만 더 추가를 해볼 수 있을까요. 저도 약간 질문을 수정하면 조금 더 흥미로운 얘기가 나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메시지를 가지는 것 이전에 정치적이고 역사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 장소가 그 메시지를 재현하지 않을까라고 생각돼요. 메시지를 갖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힘이 있어야 되는, 힘과 영향력을 통해서 그 장소를 구성해 나가야 되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조금 더 과제처럼 볼 수 있는 질문이 아닐까라고 생각이 듭니다.
신명진 조경가들이 열심히 해야겠다는, 그런 말씀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안에 담을 수 없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 아쉽지만 저희도 이제 마무리를 할 시간이 와서 괜찮으시다면 두 분 토론자께 오늘 참여했었던 소감 한 줄씩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먼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김창재 새로운 분야,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자리는 긴장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혹시라도 말실수를 하면 어쩔까. 모르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어떻게 대처를 해야 되나.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해야 되는데 조경이라는 말 자체와 조경과의 과제라는 지점들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것 같아요. 좀 더 공동의 과제로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자리가 앞으로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신명진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정화 네. 너무 즐거웠어요. 개인적으로 김창재 작가님께 질문이 많은데 다음에 직접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고, 발제자분의 긴, 신선한 발제문이 저의 생각을, 정리는 안 됐지만, 만드는 데 많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감사드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박정연 씨의 질문을 작가님께서 조금 수정하며 하셨던 말씀이 이렇게 다가오더라고요. 질문을 수정하면서 힘을 만든다기보다 이미 힘이 있는 지점을 얘기하셨던 것 같은데, 제가 이해하기로는 발제자분이 여기서 얘기했었던, 어떤 장소 같은 그런 것들이 심심하고 이런 거 외에도 뭔가 끌고 있는 장소들 있잖아요. 힘이 이미 모아져 있고, 가능성이 축적되어 있고. 그런 부분들이 작가들뿐 아니라 조경가들에게도 계속 다가오는 것 같아요. 최근의 많은 새로운 프로젝트들은 이미 잠재력이나 역동적인 것들이 내재되어 있는 사이트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한 번 더 생각하면서 그것을 또 공공예술과 좀 엮어본다면 조경가들에게 새로운 실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명진 네. 마무리 말씀까지 제가 기대했던 대로 훌륭하게 잘 마무리해주셔서 두 분께 정말 감사하고요. 오늘 준비된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조경과 예술의 관계를 모색해 보는 저희 OSOA 세미나는 12월까지 매월 둘째 주 수요일에 열리게 됩니다. 다음 달인 9월 8일에는 조경과 메모리얼을 주제로 지금 AURI에 계신 손은신 박사님께서 발제해 주실 예정입니다. 끝으로, 저희 프로젝트의 목표는 새로운 관계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다양한 시각과 시도들이 생겨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참여를 꼭 부탁드리고요. 오늘 세미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