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2021년 9월 8일, 오후 7시~9시
- 장소: ZOOM
- 발제: 손은신

- 토론: 권영란, 양근애
- 지원: 박영석, 신명진, 임한솔
‌- 기록: 박정은


1부

손은신‌‌   < 기억 표현하기 > 발제. 클릭하면 발제문으로 이동

손은신   저는 발제를 마치고요. 이제 두 분의 토론을 들으면 좋을 것 같아요. 양 교수님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고 그 다음에 권영란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양근애   네. 이번에 주신 발제문에서 저는 ‘표현’이라는 말에 집중을 해보고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연구하는 분야는 표현보다는 실은 재현에 가깝기 때문에 표현과 재현 사이의 간극 이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첫 번째로 기억과 역사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는데요. 말씀해 주신 예시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이미 역사화 작업이 끝난 것들이 있어서 우리가 조금 편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기억의 영역을 통과해야만 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이 둘의 관계를 어떻게 가지고 가야 할지 고민이 됐습니다. 일단 기억이라는 것은 과거를 소재지로 하지만 지금 여기라는 맥락에서 소환되는 회상의 메커니즘이기도 해서 늘 현재와 함께 이야기가 되죠. 또 기억의 주체는 개인이지만 기억의 사회적인 용법은 집단적인 성격을 띱니다. 개인의 기억이 사회적인 틀 속에서 형성된다고 한 알박스(Halwachs)의 말은 우리에게 꽤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손은신 선생님께서도 기억이 개인의 것이지만 왜 집단 기억이기도 한가에 대해 짚어주셨죠. 알박스는 역사가 진실을 담아내지 못할 때 개인의 기억이 사회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보고 역사의 한계를 사유할 수 있는 저항적 기억으로서 집단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홀로코스트의 역사 기록 작업이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해서 대항할 수 있는 집단 기억을 강조한 것이죠.

또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를 언급해 주셔서 므네모시네의 딸이면서 역사의 여신이라고 일컬어지는 클리오의 이름이 가진 뜻에 명성도 있지만, 서술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역사는 어떤 과거를 기억할 것이냐. 어떻게 기억할 것이고 누가 기록할 것이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발제를 해 주신 내용에서는 메모리얼을 조경과 예술의 접점에 있는 대상으로 놓고 도시 공간에서 표현되는 기억의 의미를 살피고 계십니다. 이 글을 통해 저는 역사와 길항하는 집단 기억, 그리고 아스만(Assmann)이 이야기한 문화적 기억, 그리고 기억의 주체로서 서술자의 위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기억이야말로 사회적이며 또 문화적이기 때문입니다.

역사 서술이 역사가라는 서술자의 권위와 그의 시좌에 의존한다면, 메모리얼은 설계자가 후경화되고, 즉 설계자가 당연히 누구인지 노출되지만 그것보다는 만들어진 그 공간을 훨씬 더 강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념비에서 공간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최근 동향을 짚어주셔서 공부가 됐는데요. 기념비라는 오브제가 아니라 체험 공간으로서의 메모리얼은 방문자의 개별적인 경험이 재구성되는 기억이 된다는 점에서 역사와는 달라지죠. 역사는 기억의 죽음을 전제로 서술된다고 코젤렉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했는데요. ‘사건의 역사화’를 경계하면서 문화적 기억으로 지속시키는 일은 추상적인 역사 바깥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경험의 주체를 사유할 틈을 열어줍니다. 그러나 메모리얼 역시 기억과 망각의 전쟁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최근 메모리얼은 역사나 역사학을 어떻게 성찰하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발제해 주신 내용이 공간 중심이었는데, 저는 ‘시간’의 문제를 던져보려고 합니다. 아스만은 역사적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경험 기억과 경험하지 않았지만 추모 공간이라든가 기념, 의례, 예술, 여러 가지 사료 등 매체 또는 이미지에 의한 기억을 문화적 기억으로 구분했는데요. 어떤 사건 이후, 즉 직접 경험을 하지 않은 세대들은 문화적 기억을 가지고 있겠죠. 아스만에 따르면 경험적 기억은 역사적인 기억이기 때문에 활성적이지 않고 저장된 기억이지만, 문화적 기억은 기능 기억이고 활성 기억이어서 세대를 이어서 학습됩니다. 그래서 우리 세대가 겪지 않은 전쟁이랄까 어떤 역사적 사건 같은 것들도 사실은 문화적 기억을 통해서 이어지는 거죠. 역사적 기억이 현재와 미래로부터 과거를 분리한다면 문화적 기억은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습니다. 문화적 기억은 의식화된 표현과 시대 정신을 통해 변화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기억을 역사의 반대편에 놓고 있는 것은 아니고요. 이 두 가지가 서로 맞대고 있는, 서로 지탱시키고 있는 그런 측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가령 5.18은 역사이면서 문화적 기억이기도 하죠. 홀로코스트 연구자인 마리안 허쉬(Marianne Hirsch)는 ‘포스트메모리’라는 개념을 들어서 사건을 경험하지 않은 이후 세대의 기억에 대한 개념화를 시도합니다. 그래서 포스트메모리 세대에게 5.18은 역사로 학습되고 또 경험 세대의 트라우마에 의해서 추체험되는 기억입니다. 영화 ‘김군’이 대표적인데요. 그래서 발제해 주신 내용, 즉 공간에 대한 사유는 시간과 함께 논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역사화된 과거는 이미 30년 이상이 지나갔고, 지금 세대의 경험이나 기억과 무관한, 부모 세대 또는 이전 세대가 겪었을 경험 기억 속에 녹아 있는 어떤 사회적 트라우마 같은 것들을 추체험하게 된 현 세대에게 역사화된 기억의 문제는 또 어떻게 이야기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고요. 또 현재 진행형인 과거는 어떻게 다르게 기억되는가, 예를 들어 5.18과 세월호는 공통적인 지점이 많고 기억의 문제라든가 재현의 문제에서 할 얘기가 많지만, 세월호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재현의 대상으로는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는 점, 이런 문제들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또 “메모리얼은 시간성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경유했을 때 또 다른 질문을 찾아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상적으로 만들어진 기억의 공간에서 과거에 사건은 시간적 거리두기에 의해서 해석이 되죠. 그리고 방문자가 거기에 머무르는 시간 동안은 이 기억을 그냥 고여있는 기억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기입이 되고, 그 다음을 살아가는 미래로 열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상과 기억의 공존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신 대목이 현재 일상 속에 기입된 과거의 시간, 그리고 함께 살아갈 미래의 시간에 대한 사유이기도 하다고 보았습니다. 세월호를 기억하겠다는 말은 세월호를 잘 보존하고 아카이빙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월호를 과거의 시간이 아닌 현재 속에 들여놓고 그 사건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의지와 행동의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메모리얼 공간에서 느끼는 감정 혹은 정동적 사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됐는데요. 메모리얼 공간에서 우리는 과거와 연루되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피식민의 경험,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전쟁과 사회적 재난으로 이어지는 역사는 현재를 사는 개인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메모리얼이 제공하는 체험은 연루되었다는 감각을 통해서 감정을 유발시킵니다. 누스바움(Nussbaum)은 감정이 동물적 에너지나 충동이 아니라 ‘상념의 지형학적 융기’라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그에 따르면, 감정이란 우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또는 가치를 지각하는 아주 지적인 활동입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건이지만 문화적 기억은 개인적인 체험 속에 재구성되며 전승됩니다. 예컨대 어떤 공간에 갔을 때 ‘우리가 이 많은 생명들을 함부로 죽음에 이르게 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슬픔이라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그 감정은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지적으로 사유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감정의 영역을 넘어서 무의식과 잠재성 영역에서 작동하는 정동(affect)의 항해운동을 상상해 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특정한 공간에서 특정한 상황에 직면해서 지각되는 감정의 강렬도는 돌이킬 수 없는 마주침으로 다시 사건을 발생시킬 힘을 내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발제를 들으면서 우리가 기억과 망각의 끊임없는 전쟁 속에서 과거를 기억하고자 하는 이유, 또 메모리얼이라는 것이 일상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서 이러한 욕망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기념하고 추모하고 기억할 것인가와 그에 따른 결과물은 종종 공공적이며 정치적인 판단 앞에서 심문을 받습니다. 상처와 수치를 기록하고 상실과 고통을 재현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어딜까. 이 질문이 또 먼 길을 가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감정의 연대 문제, 공감의 정치, 공공성이나 정체성에 관한 생각들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통해서 메모리얼의 시공간적 상상력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손은신   네. 감사합니다. 그러면 바로 권영란 선생님 토론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권영란   네, 저는 건축공간연구원 권영란이라고 합니다. 손은신 박사님께서 오늘 기억을 메모리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셨다면 저는 그렇게 표현이 되기 전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 사례를 통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먼저 오늘 이야기는 20세기 후반 유럽에서부터 시작을 해보려고 하는데요. 1차, 2차 세계대전에 대한 기억을 후세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해요. 그 고민의 결론으로는 무형의 기억을 유산이라는 헤리티지 형태로, 즉 유형의 어떤 것으로 변형을 해서 상속을 하는 것이 공동체 기억을 온전히 후세에 상속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결론내렸다고 합니다. 밑에 보시는 사진처럼 폴란드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이런 고민의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올해 저희 연구원에서 진행했던 네거티브 헤리티지 보전 활용을 위한 의사결정 체계 기초 연구에서는 이런 부정적인 기억들을 유산의 형태로 남길 때 발생하는 갈등 상황에 대해서 분석하고 정책적인 시사점을 내는 것이 목적이었는데요. 제가 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살펴봤던 몇 가지 사례들, 그중에서도 메모리얼과 관련된 사례들을 소개해 드리면서 불편한 기억을 남기는 과정에서 우리가 과연 어떤 지점을 중요하게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 사례 유형은 여기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단죄비라고 하는 건데요. 손은신 박사님 발제 내용에서 메모리얼이 기념비에서, 즉 수직적인 형태에서 공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내용이 재미있었어요. 다만 최근에 과거에 세워진 기념비의 역할을 절단하는 새로운 유형의 수직적인 기념비가 세워지고 있는 현상을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사례를 가지고 왔는데요. 우선 단죄비 같은 경우에는 과거의 기념비, 즉 동상이나 비석을 세워서 그 사람의 공덕이라든지 어떤 행동 자체를 기리기에 충분하다고 평가되었던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현재는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진을 보시면 김백일이라는 사람을 기리는 동상 옆에 똑같은 높이의 단죄비를 세웠고 이 사람의 친일 행적을 자세히 적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원래 수직으로 세워져 있던 친일 인사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비석을 뽑아서 다시 눕히고 그 앞에 단죄문을 설치해서 이 사람들의 친일 행적에 대해 꼬집은 사례도 있습니다. 그리고 동상이나 비석뿐만 아니라 친일 행적이나 노동 수탈과 관련된 공간들에도 세 번째 사진처럼 기념비를 세우기도 하는데요. 광주에 있는 전남방직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단죄비 사례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이런 동상이나 건축물을 단순히 철거하는 게 아니라 그대로 두고 그 바로 옆에 단죄비를 같이 병치시켰다는 점인데요. 이런 단죄비는 이 사람들의 죄를 묻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과거 기념비를 세웠을 당시에 우리가 역사에 좀 무관심하지 않았나하는 행동들을 반성하게 하는 역할, 그리고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후세에 전달하는 역할, 이런 것들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해석을 하고 있어서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앞에서 말씀하셨듯이 메모리얼의 형태가 수직에서 수평적으로 변해왔듯이 이제 단죄비의 형태 또한 이런 형태가 과연 이상적일까에 대해서는 고민해 봐야 할 과제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네거티브 건축 유산이 메모리얼 공간으로 활용되는 경우를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먼저 제주도에 위치한 이승만 별장은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이후에 방치되고 있었는데 제주시에서 이곳을 이승만 기념관으로 활용하려고 했습니다. 계획하는 과정에서 ㈜제주축산개발과 협의를 한 후 사업 추진을 위해 20억이라는 예산을 신청했는데 당연하게도 4.3 사건 관련 당사자들과 유가족들이 반대를 했죠. 그리고 결국엔 도민 정서에 어긋난다는 판단하에 기념관 활용에 실패했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보전․활용한 사례인데 이 사례는 올해 6월에 착공을 했고 2023년에 개관을 목표로 한다고 합니다. 민주인권기념관은 2005년에 민주화운동 기념 사업회에서 경찰청에 남영동 대공분실을 민주인권 교육센터로 활용하자고 먼저 제안하여 시작되었다는 점이 앞선 그 이승만 별장이랑 조금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가장 큰 차이점은 사업 추진주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승만 별장 같은 경우에는 제주시에서 사업을 추진했다면 민주인권기념관 같은 경우에는 이와 관련된 민주화 운동의 이해 당사자들이 먼저 추진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차이점은 메모리얼에서 기념하고 추모하는 대상, 그리고 그 대상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승만 별장의 경우에는 특정한 인물, 이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기념하는 성격이 강했고요. 물론 종합 정비 계획의 과업지시서를 잘 살펴보면 이승만 대통령이랑 4.3 사건 관계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내용도 한 줄 정도는 있어요. 그런데 사업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았을 때 제주시에서 제시한 주요한 논리는 우리 제주시에는 국가 원수와 관련된 건축물이 이거 하나밖에 없다, 보전을 꼭 해야 된다는 의견이 강해서 오히려 사업 추진에 실패를 했던 것 같아요. 남영동 대공분실의 경우에는 독재 정권의 폭력과 같은 불편한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공간이긴 하지만 이제 민주주의나 인권이라는 보다 더 보편적인 가치를 기념하는 공간으로 그 가치를 바꿨다는 점이 두 번째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리고 특히 남영동 대공분실이 중요한 사례인 이유는 원래 기존에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이랑 인권이라는 개념을 이렇게 같이 엮는 게 조금 터부시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인권이라는 가치를 끌어오면서 당시 독재 정권 시 실제로 있었던 여러 인권 문제들을 같이 끌어올 수 있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남영동 대공분실 같은 경우에는 건축물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이 공간을 보전하고 사람들이 방문하면서 과거의 폭력을 반성하고 민주주의의 인권이나 가치를 미래세대에 전달하는 매체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승만 별장에서 계속 제기되었던 논리랑은 조금 다른 방식의 보전․활용 방식인 것 같습니다.

제가 준비한 토론은 여기까지이고, 오늘 전달드리고 싶은 메시지를 마지막 슬라이드에 적어보았습니다. 같이 읽어보자면,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부정적인 역사적 기억이 유산의 형태로 보전되는 과정에 앞서 역사적 사건에 직면하고 이를 해결하거나 동시대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과정이 분명히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단죄비를 세우기에 앞서 친일 인사를 조사하고 친일 잔재를 구분하는 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일어났던 참혹한 사건들을 파헤치고 과거를 반성하는 일, 후세에 전해줄 메시지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발굴하는 일처럼 말이다. 네, 여기까지입니다.

손은신   네. 감사합니다. 두 분 시간을 너무 잘 맞춰주셔서 딱 8시에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두 분을 모시면서 우리 세 명이 함께 토론할 내용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다들 좀 안 좋은 기억, 그러니까 부정적인 기억에 대해서 연구를 했던 경험이 있는 분들인 것 같아요. 제가 다룬 메모리얼의 기억도 사실 아픈 기억, 참사, 재난, 홀로코스트 이런 기억에 대한 메모리얼 공간 연구를 했고 양근애 교수님께서도 지금 주신 토론문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세월호 관련된 연극 등에 대해서 오랫동안 연구를 많이 하셨고 권영란 선생님께서도 네거티브, 토론문 이름에서도 잘 드러나죠, 우리가 이 역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이런 네거티브 관점이 들어간 현상에 대해서 연구를 하셨고요. 그래서 메모리얼과 연극과 헤리티지를 대상으로 어떤 부정적인 기억들이 지금 현재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어떻게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오늘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아요. 저희가 후반부 자유 토론에서 나누려고 하는 질문을 PPT로 만들어보았는데, 두 가지 큰 꼭지가 있어요. 물론 이 두 질문만 이야기할 건 아니고 중간중간 다른 자잘한 질문들도 많이 이야기하겠지만, 크게는 이렇게 2가지 정도의 질문으로 정리될 것 같습니다. 먼저 아까 말씀해주셨던 시간과 관련된 문제. 특히 과거에 일어난 사건과 이 사건을 지금 읽어내는 현재의 우리가 느끼는 간극, 포스트 메모리라든가 단죄비의 사례 또한 그런 부분이 있는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시간과 관련된 부분을 먼저 이야기하고요, 그 다음 두 번째는 제가 오늘 기억 표현이라는 세미나 주제를 생각하면서 고민한 것인데요. 기억이라는 것이 표현되는 순간 이를 만드는, 표현하는 사람이 생기고 또 이 표현된 것을 경험하는 사람이 생기는데 이 주체의 차이가 항상 저는 궁금한 부분이었어서 여쭤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창작자나 설계자의 의도대로 기억을 읽고 경험하는가?”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가?” 이 두 가지 질문을 먼저 띄워놓고 조금 더 소통하면서 토론을 진행해볼까 합니다. 잠시 쉬고 오겠습니다.




2부


손은신   지금부터는 저희끼리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질문도 받고, 자유롭게 얘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쉬는 시간에 제가 한 가지 받은 질문이 있어서 이 질문을 먼저 드리면서 시작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질문은 제가 양 교수님께 사전에 토론내용을 보내면서 가볍게 여는 질문에 써두었던 그 질문과 비슷한데요. 연극 분야를 전공하시고 계속 연구를 하셨는데 오늘 오신 패널분들 중에는 조경 전공 등이 많아서 저희에게 연극 분야쪽을 조금 가르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똑같이 기억이라는 주제를 표현하지만, 연극으로 표현하는 것과 도시의 메모리얼로 표현하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질문 주신 분은 조경에서 메모리얼이라는 공간이 반영구적이고 좀 하드한 공간이라면 연극은 퍼포먼스이고 다소 소프트한 표현 방식이 아닐까. 연극과 메모리얼에 기능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있는지 아니면 조금 차이점이 있는 부분이 있는지가 궁금하다는 질문을 주셨는데요. 사실 저는 연극을 본 경험이 많이 없어서 드라마나 영화 같은 매체가 더 익숙하거든요. 그래서 영상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연극 무대를 가서 보는 것이 또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저희에게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양근애   일단 제가 토론문의 정동 부분에 쓴 ‘항해운동’이라는 대목은 브라이언 마수미가 쓴 책에서 따온 것인데요. 제가 그 대목을 쓰면서 생각한 건 사실 연극은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메모리얼 공간이라고 해야 될까요. 어떤 건축물이나 어떤 공간에 들어가서 그 안에서 뭔가를 마주하게 됐을 때 제가 느꼈던 감각이거든요. 연극의 경우는 아까도 표현과 재현의 차이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재현된 이야기, 즉 드라마 속에서 펼쳐지거나 관객과의 약속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기도 해서 그 강렬도가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보다는 가령 제가 안산에 갔을 때 나지막한 연립 주택들 그리고 단원고 교문, 조그마한 기억 저장소, 전시 공간 이런 곳을 봤을 때 느꼈던 감각이었거든요. 그러니까 그것을 말로 다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그 순간에 이 일과 나는 연루되어 있다는 생각이 거의 직관적으로 들었던 것을 설명하려 했던 것이고요. 저는 그러한 경험들이 결국은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 중에 사회적 재난이라든지 불행한 역사들도 우리 삶의 일부이고, 그러니까 삶과 죽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듯이 이것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느끼게 해 준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 대목을 쓴 것이고, 연극 같은 경우, 예를 들면 5.18 같은 경우에 5.18 관련된 다큐멘터리가 엄청 많고 또 관련된 여러 가지 예술 작업이 많지만 영화화 되는 데는 30년이 걸렸다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이렇게 영화로 만들어지는 데 꽤 오래 걸렸고 그것도 소설 원작으로 한 것이 영화가 된 것이고 극화된 영화에 대해서도 한동안 좀 말이 많았죠. 왜냐하면, 허구적인 스토리가 있는 영화로 옮겨왔을 때 사라지는 진짜의, 그날의 진실에 대한 감각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드라마로 재현하는 것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아무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5.18은 어쨌든 지금은 극화를 하고 재현의 방식으로 드라마를 만들기도 하지만, 세월호는 아직 할 수 없는 거죠. 이런 맥락에서 제가 시간에 대한 이야기도 드리게 된 것 같아요. 세월호에 대해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기억을 관객 개개인에게 묻고 우리가 이 기억을 어떤 방식으로 같이 이어나갈 것인지를 되묻는 연극이, 또 전통적인 방식으로 재현하는 드라마보다는 어떤 퍼포먼스 같은 것들이 더 많이 시도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질문을 주셔서 생각해 본 사례가 있는데 작년에 공연했던 ‘왕서개 이야기’라는 연극입니다. 이 연극은 작가와 창작진들이 중국의 무순전범관리소에 방문을 해서 2018년에 먼저 ‘무순6년’이라는 작품을 공연하고 그 다음으로 작년에는 ‘왕서개 이야기’라는 공연을 했는데요. 거의 900명에 달하는 숫자의 전범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자백서를 받고 공연도 하고 그 안에서 어떤 예술적인 활동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 이야기를 해 주시는 과정에서 전쟁의 상흔을, 그러니까 정말 끔찍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다 복원했다는 내용을 이야기해 주셨는데, 저는 실제로 본 것이 아니라 그걸 듣기만 해도 소름이 쫙 끼치더라고요. 그런 경우들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의 역사는 아니지만 결국은 우리의 역사도 그것과 연루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베트남 전쟁이라든가 아니면 거제도 포로 수용소라든가 역사를 공부하고 그것을 또 새로운 이야기로 만드는 이런 작업들이 꽤 많이 이루어지고 있죠. 아마도 그런 시도들은 우리가 그 기억을 다 다룰 수는 없겠지만 어떤 실감을 무대 위에 재현하기 위해서 하는 노력들이 아닐까 싶고, 그런 점에서는 메모리얼과 겹쳐지는 부분도 있고 또 꽤 달라지는 지점도 있고 그런 것 같습니다.

손은신   네. 저도 답변을 들으면서 또 궁금한 점이 생겼는데 그러면 영화나 다큐멘터리 방송처럼 TV나 영상으로 보는 작품들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연극 무대는 먼저 움직이고 있다는 있는 것으로 보면 될까요. 영상 작품들이 만들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연극 무대에서는 더 빨리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면 될까요?

양근애   이야기라는 형식 안에 들어오면 어떤 것들은 삭제되고 어떤 특정 것들에 더 집중하게 되잖아요. 이야기 속에서 재현될 때는 원본에서 조금 더 멀어지기도 하니까요. 역사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 지점도 그런 것들이 아닐까 싶고요.

손은신   혹시 영상으로 남기 때문에 어떤 부담감이 있거나 그런 것은 없을까요?

양근애   예를 들면 세월호와 관련된 영화들 중에 대다수는 다큐멘터리 영화예요. 최근에 나온 ‘당신의 4월’ 같은 경우는 당사자를 다룬 것은 아니지만, 사실 저는 이 당사자라는 개념도 좀 확장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요. 유가족이라든가 생존자, 당시 단원고 선생님들만이 당사자가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서 똑같이 죄책감을 겪고 괴로워했던 사람들도 저는 넓게 보면 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당신의 4월’에서는 유가족들이 세월호 진상규명 관련 집회를 진행할 때 통인동에서 커피 공방을 운영하셨던 분들이라든가 당시 선생님들이라든가 이런 분들까지도 모두 당사자로 호명하고 있는 다큐였습니다. 그런데 상업 영화로 ‘생일’이라는 영화가 그 전에 있었어요. 전도연과 설경구가 주연한 그 영화는 드라마(drama), 그러니까 극 영화로 만들어진 사례인데요. 그런데 이 영화는 실제 세월호 치유공간에서 가졌던 한 생일 모임을 바탕으로 했고 거의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실은 저 사람이 전도연이라는 걸 누구나 다 알고, 설경구라는 걸 누구나 다 알아서 너무나 연기 잘하는 배우지만 우리가 거기에 몰입되지 않는 거예요. 왜냐하면, 세월호 사건이 아직 완전히 다 해결되지 않았다고 본다면 이 사건이 지금 현재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큰데 어떤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이 기억을 소화하기가 꽤 까다로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영화가 굉장히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영화가 우리의 내적인 부분이 아니라 바깥에서 뭔가를 계속 가지고 온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손은신   이 부분이 굉장히 흥미롭네요. 제 생각에는 영상은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는 방식이고, 좀 더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이잖아요. 그냥 공간에 우리가 갔을 때는 영상처럼 어떤 사건이나 기억의 장면을 직접 보여주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사건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뭔가 그런 추모 공간인 것 같은 느낌은 있는데 정확히 어떤 사건인지 잘 몰라서 사실 임팩트를 그렇게 크게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오히려 저는 연극이나 영화같은 경우에는 훨씬 더 어떤 사건에 대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보는 사람의 기억에 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오히려 배우인 걸 다 아니까 몰입이 안 된다는 것이, 그러니까 진실성이나 진정성에 포커스를 맞춰본다면 오히려 정말 실제 장소에서 그런 임팩트를 조금 더 느낄 수도 있겠다는 반전이 있네요.

양근애   저만 해도 5.18이라는 사건을 뒤늦게 대학 가서 알게 돼서 너무 충격받았었어요. 그전에는 제대로 배울 수가 없었거든요. 대학 때 광주에 가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다들 5.18 기념관인가요, 그쪽으로 막 몰려가는데 저는 기념관 뒤에 있는 무명인들의 묘로 가게 됐고, 그때 굉장히 놀랐어요. 그때 제가 느꼈던 그 강렬함이 이렇게 말로 설명은 잘 안 되지만 어쩌면 저를 굉장히 많이 바꿔놓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제가 잘 모르는 사례긴 하지만, 가령 미국에서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 같은 경우 어떤 수직적인 조형물이 아니라 땅 아래로 파서 만든 벽에 희생자들의 이름이 쭉 써 있고 거울처럼 자기 자신이 벽에 딱 비쳤을 때 느끼는 그런 충격 같은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사건이 사실 우리나라 역사도 아니고 이들은 이미 죽은 사람이고, 과거의 아픈 역사를 반복하면 안 된다는 정도는 우리가 누구나 다 상식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들이 하나하나 다 고유성을 가진 인간이고 그 벽에 반사되는 나의 모습이 저 속에 함께 있는 구성원 중에 하나일 수도 있다는 자각이 드는 순간, 저는 그 사람은 다시는 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고 무언가를 알게 된 이후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연극이 그런 경험을 주기도 하죠. 그런데 저는 특히나 세월호 이후에 연극은 그런 재현 방식에 대해서 물음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면서 연극들을 요즘 많이 보게 되고요. 그러니까 잘 만들어진 가짜가 더한 진실이 될 수는 있겠지만 잘 만들어진 가짜가 있고, 반면에 진짜, 그러니까 실제로 기억해야 하는 집단 기억 속에 놓이는 어떤 사태가 있다고 할 때, 그것을 분별하는 시야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손은신   네. 생각했던 것과 또 다른 관점을 얘기를 해 주셔서 되게 재미있네요. 그다음에 잠깐 넘어가서 권영란 선생님께도 조금 다른 맥락에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문화재라는 대상은 법에 정해져 있잖아요. 어떤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대상을 우리가 문화재로 등록을 하고 지정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어느 정도 가치 평가가 완료되고 이것이 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인데, 네거티브 헤리티지라는 단어를 다시 살펴보다 보니까 헤리티지이지만 우리는 이 대상을 ‘부정적인 것 같아’ 또는 ‘이런 갈등이 있는 것 같아’라고 생각한다는 게 의미가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현재 우리가 이 대상을 볼 때 감정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부분이요. 이러한 네거티브 헤리티지의 개념과 최근 연구의 동향 등을 먼저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권영란   일단 제일 대표적인 연구자인 메스켈(Meskell)은 이렇게 정의를 하는데요. 네거티브 헤리티지를 어떤 부정적인 집단의 기억이 저장되는 대상, 여기서 헤리티지는 건축물이 될 수도 있고 장소가 될 수도 있고 다른 기록물이 될 수도 있고 동상이 될 수도 있고 그렇겠죠. 이렇게 어떤 대상물에 부정적인 기억이 저장되는 경우를 네거티브 헤리티지라고 부르고요. 저는 비슷한 여러 용어 중에 네거티브 헤리티지라는 용어가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용어라고 보았어요. 그래서 제 연구에서는 정책적으로 헤리티지가 활용이 될 때 이런 부정적인 사건이나 기억들에 의해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라고 조금 더 범위를 좁혀서 정의를 한 바가 있고요. 최근 연구 경향을 조금 설명해 드리자면, 우선 뒤의 헤리티지라는 단어보다는 앞에 네거티브 외에 불화라든지 다른 용어가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요. 불화 문화유산, 불화 헤리티지, 기피 문화유산, 불편 문화유산 이런 식으로 그 문화유산이 대중들과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느낌을 받게 하는지에 조금 더 집중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해외 연구의 경우에는 예를 하나 들자면 분쟁 문화유산이라는 용어가 있는데요. 이런 용어의 경우에는 아직 정책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은 어떤 역사적인 사건, 우리나라로 예를 들면 일제 강점기의 위안부 문제 같은, 이런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은 채로 그 관련 대상물이 문화유산이 됐을 때 분쟁 문화유산이라고 부르자는, 그러니까 문화유산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것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손은신   그러면 예를 들어서 아까 말씀해 주셨던 이승만 별장 같은 경우는 네거티브해서, 그러니까 무언가 정치적으로 합의가 안 돼서 문화재로 지정이 안 된 것이라면, 지금도 계속 지정이 못 되고 있나요?

권영란   아니요. 제가 방금 설명드린 연구 경향은 해외에서 이렇게 논의가 되고 있다는 것이고, 국내 같은 경우에는 조금 더 다른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이승만 대통령 별장 같은 경우에는 이미 과거에 등록문화재로 등록이 됐었어요. 우리나라 문화재 보호법, 등록문화재 제도를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어떤 대상을 문화재로 지정하고 등록을 하자는 논의가 시작되고 등록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불편한 기억이나 역사적인 사건에 관련된 이해 당사자들이 관여를 할 수 있는 스텝 자체가 별로 없어요. 일단 전문가들이 가서 조사를 하고 문화재위원분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이걸 문화재로 등록을 할까 싶으면 그때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예고를 하게 되거든요. 그때 보고 약간 의견을 달 수 있는 정도예요. 그 외에는 관련된 이해 당사자들이 ‘이것이 문화재가, 문화유산이 되기에는 뭔가 아직은 아닌데’라고 의견을 달 수 있는 단계가 많이 없어서, 이승만 대통령 별장의 경우에는 등록문화재로 먼저 등록이 됐는데 그 후에 이 곳을 이승만 기념관으로, 그러니까 이승만을 조금 더 기념하는 그런 공간으로 사용하겠다는 발표가 났을 때 그런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손은신   제가 그냥 생각했을 때 문화재는 어쩌면 메모리얼이나 연극이랑은 달리 제도가 있으니까, 제도는 가장 딱딱하고 가장 변화가 늦게 일어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문화재로 지정이 먼저 되고 그 후에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또 그런 갈등이 일어난다고 문화재가 취소되는 건 아니군요. 그런 사례는 없는 거군요.

권영란   예를 들어 경기도에 서이면사무소라고 있는데요. 이곳처럼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려고 하다가 안된 경우는 있어요. 그런데 이 경우에는, 부동산 문제는 일단 들어내고 말씀을 드리자면 이곳도 전통 건축의 형태인데 근대기에 업무 공간으로 사용되면서 나름대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보아 등록문화재 추진을 하려고 했었는데요. 아까 제가 말씀드린 지정 전의 예고 단계가 되어야, 그리고 이렇게 문화재로 등록 하려고 한다는 내용이 기사화됐을 때에야 사람들이 많이 알 수 있게 되잖아요. 그때 반발이 일어나서 아직까지 등록문화재로 등록 추진이 안 된 걸로 알고 있어요.

손은신   재미있네요. 여론이 반대해도 제도가 우선 지정할 수 있는 거군요. 그러면 이어서 제가 두 가지 질문을 사전에 올려드렸었는데 그 질문에 대해서 이제 이야기를 조금 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요. 먼저 아까 올렸던 것 중에 시간 관련된 부분, 잠깐 얘기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양 교수님 토론문에도 있었던 포스트 메모리 같은 개념, 그러니까 우리처럼 어떤 것을 경험 안 한 세대, 이후 세대의 기억, 그다음에 권영란 선생님 토론문 사례에서도 단죄비 같은 것, 진짜 이상하죠. 앞에 것을 안 없애고 오히려 그 옆에 놓으면서 의미를 더 강화하는 방식, 이런 개념과 방식들이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관련 연구를 하면서 보았던 독일의 사례가 생각나는데요. 많은 전쟁 중에서도 1, 2차 세계대전이 너무 끔찍했고, 특히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 같은 기억은 너무 끔찍해서 그들은 그 전쟁이 끝난 직후에 이 내용을 어떤 예술의 형식으로 표현하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해서 그때 당시에는 예술로 표현을 하지 않았고, 아도르노(Adorno) 같은 사람은 홀로코스트를 ‘예술로 표현하는 것은 야만적이다’ 이렇게 얘기를 할 정도였는데요. 80년대, 90년대 정도, 그러니까 독일에서도 2차 세계대전 전쟁 이후에 태어난 포스트 메모리 세대들이 성인이 되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1980년대, 90년대가 되면서 오히려 2차 세계대전에 대한 기억들을 꺼내기 시작하고 이거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에 대한 많은 고민들을 하기 시작하면서 관련된 영화나 연극 작품들도 많이 나왔거든요. 이런 시간의 차이, 거리감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제가 보았던 1, 2차 세계대전 연구를 주로 하시는 역사학자 한 분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1980-90년대에는 옛날의 그런 기억을 떠올리고 영화나 여러 매체에서 다뤄지는 붐(boom)이 일어났고 이것을 일종의 ‘기억의 붐’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면서 왜 기억의 붐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몇 가지 이유를 짚는데요. 그 이유 중에 한 가지 재미있는 게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부모 세대는 직접 경험했던 일을 자식에게 ‘이런 일이 있었어’하고 잘 들려주지 않는데 반해,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녀 손자를 봐주면서 자기 어릴 때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조부모 세대로부터 들었던 옛날의 이야기에 손자 세대가 굉장히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런 기억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그 시대와 관련된 작품들이 많이 나오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전쟁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우리 할아버지가 옛날에 이런 일을 겪었대’라고 하면서 전쟁 관련된 소설이나 영화가 시작되는 이런 구성, 타이타닉도 이런 비슷한 구성이죠.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하고 어떤 할머니가 갑자기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그런 구성으로 나타난다는 얘기를 하던 것이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지금 제가 얘기한 시간의 간극이 두 분이 말씀하신 내용에 들어맞는지는 모르겠어요.

사실 저는 이런 부정적인 기억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을 때, 아니면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 이 거리감이 과거의 기억에 미치는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사례를 보셨거나 아니면 의견을 주시면 주실 수 있는 내용이 있는지 두분께도 여쭤보고 싶어요. 권영란 선생님께 먼저 여쭤볼게요.

권영란   저는 이렇게 시간적인 거리 두기가 부정적인 기억을 다룰 때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저도 관련 연구를 진행하면서 한국외대에 계신 이현경 교수님께서 들려주신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나는데요.

교수님은 불편 문화유산 관련된 연구를 하시고 지금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계시는데, 학생들에게 가장 처음 불편 문화유산에 대해 설명을 할 때 이혼한 할머니의 결혼 반지에 빗대어서 네거티브 헤리티지, 불편 문화유산을 설명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무엇이냐면 이혼한 할머니가 할아버지랑 엄청 많이 싸우고 깊은 갈등 관계가 있어서 이혼을 하게 됐을 때 결혼반지를 빼서 서랍 속에 깊숙이 넣어뒀는데 언젠가는 시간이 흐르고 이 반지를 꺼낼 수 있을 때쯤, 그러니까 과거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쯤이 분명히 생기고, 그때가 바로 어떤 부정적인 기억과 관련된 대상물을 문화유산으로 할 수 있는 그런 시기와 같다고 설명하시더라고요. 어떤 불편한 기억이라든지 역사적으로 참혹한 사건들이 조금은 약간 멀게 느껴질 수 있는 시간, 물론 각각의 할아버지들마다 필요한 시간의 길이가 다르듯이 각 사건들마다 다르겠죠. 그 얘기를 해 주시는데 저는 엄청 공감이 됐었던 것 같아요.

손은신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네. 정말 맞는 것 같아요. 이혼의 상처가 얘기를 꺼낼 수 있을만큼 조금이나마 괜찮아질 수 있는 애도의 시간을 갖는 것.

권영란   이현경 교수님은 열을 약간 식힐 수 있는 시간이라고 표현하시더라고요.


손은신   네, 맞는 것 같습니다. 양 교수님은 어떠신가요. 이렇게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에 대한 감정이 달라지거나 하는 이런 내용에 관해서요.

양근애   저도 사실은 근대 연구자여서 관심이 있는 내용이네요. 예컨대 90년대에 총독부 건물 폭파할 때 그때는 제가 어려서 그 광경을 못 봤지만 사실 연구하면서는 그 건물이 그렇게 없어진 것이 저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의 시각이었다면, 그것이야말로 헤리티지고 불편 문화유산인데 그것을 아예 없애면 안 된다고 주장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는 당연히 없애야 된다고 생각해서 대대적으로 어떤 퍼포먼스까지 했던 거죠. 그래서 그 장면을 중계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올해 어떤 기사에서, 총독부 건물만 철거했고 지반 안정화 때문에 말뚝은 그대로 놔뒀다는 내용을 봤어요. 사실 말뚝이야말로 민족의 정기를 차단한다는 총독부 건물의 기능이었는데도요. 그러니까 저는 역사의 흔적을 계속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앞서 제도나 정책 관련된 이야기도 해주셨지만, 역사화 작업이 끝난 다음에 어떤 흔적을 보고 우리가 논쟁할 수 있는 권리 같은 것,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실 장소의 흔적은 어떤 유형화된 유산이 되기 때문에 이로 인한 문제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남겨진 흔적이 가져오는 부작용 같은 것들도 있기 때문에 쉽게 남기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근데 세월호 사건의 경우에는 안전공원을 만든다고 할 때 반대 여론이 있었고, 최근에도 갑자기 서울시가 기억 공간을 철거한다고 했는데 관련 절차가 일단 잘못됐다고 봐요. 결국 광화문 재조성 이슈 때문에 기억 공간을 철거하게 됐지만 그렇더라도 그런 방식으로, 그러니까 전혀 협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통보하고 철거하고 이런 과정에서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기억의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먼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왜 이 흔적이 필요한지 의견을 나누고, 기억을 상기하면서 얻게 되는 힘든 감정들도 있겠지만, 후대에도 계속 역사로 남겨 두고 전승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득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유지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손은신   네, 총독부 얘기를 하시니까 저도 예전에 총독부 주제로 논문을 쓴 적이 있어서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철거 이전 신문 기사를 한 10년 치를 봤었는데요. 그때는 당연히 부숴야한다가 굉장히 지배적인 여론이었고 부수면 안 된다고 주장한 건축가 사무소에 일이 끊겼다는 얘기도 있고, 철거에 굉장히 돈이 많이 든다는데 국민들이 얼마씩 내서라도 철거해야 된다, 굉장히 여론이 이런 방향이었는데, 지금 총독부 건물 철거한지 20년, 30년 가까이 지났는데 사실 진짜 많이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공간의 경우에는 이런 사례들을 알고 있는데 혹시 영화나 드라마에도 이런 사례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그러니까 과거에는 예전에는 어떤 영화에서 항상 굉장히 부정적으로 다루어지던 인물, 그러니까 장희빈이나 극악무도하게 형제들을 죽였던 이방원이나 이런 역사적인 인물들도 최근에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각색을 해서 조금 스토리를 다르게, 어떤 입체적인 인물로 보여주기도 하잖아요. 근대기의 사건과 관련한 인물에 대해 이렇게 다르게 보는 시각이 있는지, 연극이나 아니면 분야를 조금 넓혀서 영화나 드라마 쪽에서 이런 경우가 있는지가 좀 궁금합니다.

양근애   물론 해석이 달라질 수 있겠죠. 역사를 해석하는 문제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무엇이 제대로 된 고증이냐 이렇게 반문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제가 볼 때는 영화나 드라마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메모리얼 공간과는 조금 다른 차원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실 조형물이나 기념비는 좀 행정적인 처리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저는 메모리얼처럼 공간으로 조성하는 건 또 다르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이건 연극을 보러 간 극장에서 내가 느끼는 감각과도 연관되어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극장문을 나서면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만, 그 공간에 있는 순간만큼은 그 공간에서 얻는 여러 가지 생각들, 그게 과거에 누군가 학살당한 기록들이든 아니면 아주 좋은 기념의 순간이든 극장 안에 있는 동안은 거기에 내맡겨지는 거잖아요. 저는 그런 경험들이 되게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극장 안에 있을 때는, 그 이야기가 만들어진 이야기든 아니면 퍼포먼스든 간에 그 안에서 겪는 체험이 내 안에서 또 다른 기억을 만들어내잖아요. 그 경험이 만들어낸 잔상이나 그때 남은 잔여 기억이 다시 새로운 문화적 기억을 형성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세월호 사건에 특히 주목했던 이유가 그 이전의 참사와는 다르게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각 분야에서 이 사건을 기록하려고 했다는 것. 연극인들도 직접 진도에 가서 거기서 있었던 일들을 다 세세하게 기록하기도 했고요. 당대에 공식적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후대가 기록하는 역사가 있죠. 그런데 세월호 같은 경우에는 후대에 이 사건을 어떤 문구로 기록할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그런 내용들까지 지금 집단 기억으로 형성되어 버렸거든요. 저는 이런 경우 기억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고, 만약 메모리얼 공간이 조성된다면 저는 그곳이 이런 집단 기억을 담는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그 공간이라는 것은 공식 역사의 담론과 다른 어떤 부분을 지적하고 건드리고 있다고 봐요. 토론문에서는 제가 그냥 감정이나 정동의 영역이라고 썼지만, 사실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어떤 것들이 그 공간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겠죠. 어쩌면 공간에서의 경험은 역사서를 보는 것보다 영화를 보는 것과 더 비슷할 것 같아요. 역사서를 보면 더 정확한 역사들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잖아요. 한 인간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어떤 이야기를 보면서 ‘저때 저런 고뇌를 했겠구나’, ‘저 선택에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구나’라고 많은 것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메모리얼도 어떤 의지를 가지고 그곳에 가서 예를 들어 ‘어떤 전쟁의 기억이라는 것이 나의 역사이기도 하고 공동체, 국가, 나라 이런 것들에 전승되어 온 그런 유산이구나’라는 걸 확인하는 작업이라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손은신   네, 자연스럽게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는 고리를 놔주신 것 같아요. 그런데 메모리얼 공원을 만드는 과정과 만드는 주체랑, 또 이렇게 극을 써나가고 만들어 나가는 주체, 또 문화재를 문화재로 지정해 나가는 절차와 과정에 있는 주체들이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먼저 만드는 주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만드는 주체가 있고 경험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실 이 둘이 완전히 분리되는 건 아니겠지만 일단은 주체가 두 유형으로 나뉜다고 보고, 공간과 극과 문화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메모리얼 공원은 대체로 설계 공모를 통해서 당선이 되는데요, 그 전에 이미 설계 지침서가 나오게 되고 이 설계 지침서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세월호 안전공원의 경우에는 이미 추모공원을 만드는 문제로 논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오랫동안 공청회를 했고, 그 내용이 설계 지침에도 꽤 반영이 되어 있어요. 그런데 메모리얼 공원이 아니더라도 대체로 일반적으로 공모에 당선된 후에 실시설계하시는 분들의 실제 시공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모에 냈을 때는 이런 안이 아니었는데 많이 바뀌었다거나, 공청회 등이 끝나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이 추가되면서 기존 설계안에서 공간이 변하는 부분들도 많이 있다고 해요. 그런 사례들을 이야기로 풀어내려면 사실 1시간, 2시간으로는 부족하다고도 하고요. 이렇게 공모에 당선된 이후에도 설계안이 많이 바뀌면서 결국 공간을 완성해 나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에 발주가 되고 공모에 당선되거나 설계를 수주해서 설계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실제로 그 기억이 무엇인지를 읽어내는 과정이 있고, 논쟁이 되는 경우에 설계자 분들이 여러 공청회와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나가면서 결국 메모리얼 공원을 만들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연극 분야에서는 예를 들어 어떤 분들이 대본을 쓰시는지, 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어떤 주체들이 개입해서 만들어지는지 궁금합니다.

양근애   그런데 관람객이, 꼭 만든 사람의 의도대로 경험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설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은데요. 설계 공모에서 기획한 의도가 있더라도 나중에 관람객이나 방문객이 의도된 대로 체험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 같아요. 연극도 사실 마찬가지인데, 연출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이나 작가의 의도가 있겠지만, 극을 본 관객들은 사람마다 다 다른 의미를 가져가거든요. 그리고 서로 다른 의미를 가져가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영화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는 대중 혹은 관객을 공통으로 묶어서 생각하고 싶어하지만 사실 집단화가 안 되는 경우도 있고 집단이 혼용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개인이 느끼는 바나 이해하는 정도는 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각자의 경험치나 살아온 환경, 여러 가지 정체성의 맥락. 이런 배경들 때문에 다 다르게 읽히는 것이고 오히려 그렇게 다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예컨대 세월호 기억 교실에 간 경험을 적은 어떤 인터뷰를 봤는데요. 그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자기랑 똑같은 이름을 책상에서 발견한 거죠. 그러면 그 사람에게 이 일은 너무나 특별한 일이 되는 거예요. 네 몫까지 내가 살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 체험을 해보지 않으면 ‘왜 천안함은 추모하지 않고 세월호만 추모하지?’같은 정치적인 의견이 제기될 때 금방 휩쓸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공간을 체험해보면 그 사건을 다르게 느낄 수 있다고 믿고 싶은 것 같아요. 세월호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를 수도 있지만 서울에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그런 공간을 가보고 죽은 생명에 대한 애도의 감정이라든가 자기가 겪은 주변인의 죽음을 떠올릴 수도 있겠죠. 그래서 그 마음에 대해 이해를 한다는 것. 그러니까 세월호 희생자들이 나와 가까운 관계의 사람도 아니고 실제 동네 이웃은 아니지만, 그 사람과 심적으로 감응하는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메모리얼의 기능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단적으로 말하자면 보통 메모리얼 파크 하면 납골당처럼 가족들이나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공간이 가장 많이 검색되잖아요. 근데 사실 가족이 묻힌 납골당과 희생자 추모공간이 서로 전혀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나랑 연결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아니지만, 그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애도할 수도 있고요. 조금 더 나아가자면, 사회적인 의미로 확장시켜 보았을 때 공동체가 앞으로 또 다른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한 논의가 그 공간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그런 마음들이 없다면 이런 메모리얼 공원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그저 정치적인, 정책적 차원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났으니 추모공원을 만든다고 하는, 단순히 그런 방식은 아닐 거라고 저는 믿고 있는데, 실제로는 어떨지 잘 모르겠네요.

손은신   말씀하신 대로 두 가지 측면이 다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기억이 사회적으로 중요하고 추모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진 분들도 있는 반면, ‘나는 안 그렇게 생각하는데, 뭘 만들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고, 이럴 경우에 충돌이 일어나는 부분들이 상당히 있는 것 같아요. 메모리얼은 대체로 가까운 과거의 기억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네거티브 헤리티지의 경우는 더 과거의 역사이기도 하네요. 보다 더 예전의, 시간이 지난 역사여도 마치 이승만 별장 사례에서 제주시와 4.3 유족이 부딪치듯이, 이런 부딪침과 간극이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권영란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오늘 이야기해주신 키워드 자체가 그런 것 같은데, 네거티브 헤리티지라는 말 자체가 이미 ‘부정적이다’, ‘헤리티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네요.


권영란   그렇기는 한데, 문화재가 메모리얼 파크라든지 연극과 조금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아요. 네거티브 헤리티지는 분명하게 그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 있는 어떤 대상물이 있고, 그 대상물에서 어떤 부정적인 행위가 이루어졌다거나 하는 것이 꽤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잖아요. 그렇지만 후세의 사람들이, 열이 한 김 식고 난 후에 그 곳을 방문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또 다를 것 같아요. 제가 사례에서 설명해 드렸던 민주인권기념관에서, 과거의 행적을 꼬집고 그때는 바로잡지 못했던 것을 이제 반성을 하고 민주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후대에 어떻게 전달을 할까 고민에까지 이르는 그 과정과 단계를 그 곳에 방문한 모든 사람들이 겪을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닐 것 같거든요. 그리고 제가 연구를 하면서 네거티브 헤리티지에서 꽤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했던 점이, 네거티브 헤리티지의 유형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다 네거티브하게 인식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또 중요한 지점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군함도를 보면, 한국인들은 여기 계셨던 분들이 일제강점기에 노동을 착취당하는 그런 모습, 영화 장면을 떠올릴 수도 있고 그렇게 분개를 하겠지만, 일본은 또 그렇지 않잖아요. 일본은 군함도를 산업화를 상징하는 자랑으로 여기기도 하고 산업 유산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을 추진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몇몇 사람들에게는 어떤 것이 포지티브 헤리티지로 인식이 될 수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네거티브한 헤리티지조차 아니고 그냥 네거티브한 건축물이다라고 보는 굉장히 대립적인 의견이 있을 수도 있더라고요. 이렇게 다양한 의견들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고, 또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지는 것이 오히려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양근애   이런 다양한 해석이야말로 시간의 문제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의 유명한 친일파라면 달랐겠지만, 근현대기의 인물 중에는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도 있어서 그와 관련된 유산이 만들어지거나 헤리티지라고 명명하는 것이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게 아닐까 싶거든요.

권영란   네. 그리고 어떤 사람의 행적이나 행위가 명확하게 잘못이 있다는 것이 후대에 평가가 되거나, 심지어 재판을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이런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 후에 열이 한 김 식고 난 뒤 나중에 논의가 되는게 맞을 것 같은데, 최근에 등록문화재를 추진하려는 시도들을 보면 일부 섣부른 판단이 아닌가 하는 경우가 몇몇 있는 것도 같아요.

양근애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포스트 메모리’의 개념도 실제로 경험한 사건이나 어떤 역사의 장면을 그대로 복원하려고 하는 것과는 사실 거리가 먼 것 같아요. 요즘에는 ‘포스트 메모리’에 해당하는 소설들도 아주 많지만, 이 개념은 사실 어떤 과거의 기억이 자기의 일상 안에 어떻게 일부가 되어 들어와 있는가의 문제가 아닐까 싶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젊은 세대인 20대 초반 대학생들에게 5.18은 너무 먼 과거의 이야기일 수 있는데, 80년대에 태어난 감독이 만든 < 김군 >이라는 영화를 보면 그 시선이 이전과는 사뭇 달랐거든요. 그 사건 자체나 희생당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김군이라는 인물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마주하는 새로운 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저는 문화적 기억이 계속 중첩되고 있는 이런 과정을 좀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결국 모든 기억들이 포스트 메모리가 될 텐데, 우리가 그 중에 어떤 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붙잡아서 사라지지 않게 계속 공간을 마련해 둘 것인가 그런 문제로 이어질 것도 같고요. 거리 두기의 문제가 시간의 문제도 있겠지만 가끔 그런 것도 있잖아요, 외국인들이 한국 체험하러 온 프로그램에서 전쟁기념관에 가서 자기네들끼리 추모하고 애도하는 장면을 보고 시청자들이 깜짝 놀라잖아요. 매일 그저 지나다니는 공간이었고, 전쟁 기념관에 가볼 생각도 안 해본 사람들에게 ‘맞아 저곳이 있었지. 저기가 전쟁 기념관이야.’라는 생각을 환기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공간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다면, 한 번의 방문과 경험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방문하고, 다시 방문할 때마다 새롭게 얻어지는 것이 있을 것이고, 어떤 순간은 그냥 원래 알고 있던 정보들의 재확인일 수 있지만 어떤 순간은 갑자기 감정이 솟아오르고 감수성이 고양되는 그런 순간들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손은신   네. 맞는 것 같습니다. 어떤 매체로 표현되든간에 저희한테 감정적으로 다가오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또 이런 순간들이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논쟁적인 부분들도 언젠가 또 이야기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가 될 수도 있는 것 같고요. 표현하는 방식은 굉장히 다르지만 이런 같은 주제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네요. 이제 시간이 다 되어서 아쉽지만, 한 가지 질문 들어온 것만 간단히 이야기를 한 후 인사를 드리고 마칠까 하는데요.

[메모리얼이라는 대상은 기억을 재현하고 반영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래서 메모리얼이 기억과 관련된 격렬한 토론장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요. 아니면 이미 기억에 대한 논의가 끝난 것들이 메모리얼이 되나요?]

라고 아까 질문을 주셨었는데, 방금 저희가 토론한 내용이 사실 이 질문에 대해 ‘아니다’라는 대답이 될 것 같습니다. 논의가 끝난 기억만이 메모리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기억에 대한 논의는 계속 일어나고 또 변화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제도를 통해 먼저 ‘이것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어’라고 헤리티지로 정해지고 나서 나중에 논쟁이 일어나기도 하는 갈등도 계속 있는 것 같고요. 사실 저는 ‘갈등이 있는 부분이 사실 진짜 매력적인 포인트인 것 같다’라는 그런 코멘트를 받았던 적도 있거든요. 기억이 대립한다는 것이 이런 대상의 진짜 매력인 것 같다는 거죠. 좋지 않은 기억을 표현하는 방식. 아까 토론하면서 나눠주신 설계자나 작가의 의도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의견들. 부정적인 기억의 이런 부분들이 어쩌면 이런 메모리얼 공간, 헤리티지, 연극, 등 모든 분야에서 오히려 굉장히 매력적인 부분이 될 수 있는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고, 저는 이런 기억에는 이런 매력이 있으니 많은 분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이야기하기에 좋은 주제인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제 이야기는 마치겠습니다.

두 분께 마지막 인사말을 짧게 듣고, 다음 회차의 세미나를 간단히 설명드리고 마칠까 합니다. 권영란 선생님 먼저 부탁드려요.

권영란   네. 오늘 이렇게 의미 있는 자리에 토론자로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손은신   네. 양 교수님께도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양근애   네. 저도 두 분 오늘 처음 뵈었는데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 마련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한편으로는 연극 말고 다른 분야도 열심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이유가 있겠죠. 오늘 다시 그걸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손은신   네. 굉장히 감사합니다. 오늘 이렇게 세미나를 마칠 수 있게 되어서 굉장히 기쁘고요. 마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음 회차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다음 세미나는 10월 13일에 조경과 전시라는 주제로 진행되고요. 발제는 서울대 건축학과 박사과정에 계시고, 많은 전시 작업도 하셨던 유영이 선생님께서 발제를 해 주십니다. 다음달 10월 13일 수요일, 오늘과 같은 시간 7시에 진행되니 많이들 참여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오늘의 세미나에 대해서 다시 되짚어보는 오픈 피드백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9월 17일 다음 주 금요일 오후 7시에 온라인으로 진행되는데요, 오늘처럼 홈페이지의 팝업창 통해 링크 접속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세미나에 대해서 한번 더 피드백을 하면서 다음 세미나에서는 이런 것이 더 보완되면 좋겠다던가 그런 내용을 편하게 이야기하는 자리니,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함께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오늘의 세미나는 이렇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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